오래 전부터 기업들의 자사주는 다양한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소각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기도 하고 임직원 보상에 쓰이기도 한다. 기업 M&A 대가로 지급할 수도 있다. 다만 자사주 활용이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도 한다.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이 되거나 경영권 분쟁 시 우호지분 확보용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았다. THE CFO는 기업이 보유 중인 자사주가 어떤 형태로 동원될 수 있는지 활용 사례를 유형별로 나눠 짚어본다.
카카오의 자사주는 교환사채(EB)를 매개로 상당 수 처분됐다. EB는 사채권자 의사에 따라 기초자산으로 설정된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카카오 입장에서 돈을 빌리면 나중에 카카오 자사주로 갚는 구조다. 카카오 주식의 성장성을 믿는 투자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조달책이다.
통상 EB는 저리로 발행되는 만큼 카카오가 보유 자사주를 기반으로 값싸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이 됐다. 여기에 더해 카카오M(구 로엔엔터테인먼트) 흡수합병 시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떠안은 자사주 처분 의무를 상당 부분 해결하는 도구로도 쓰였다.
다만 계획과는 다른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두 번째 EB 발행을 통해 잔여 자사주 처분 의무를 해소하려 했으나 주가 하락으로 이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카카오는 최근 세 번째 EB를 발행했다. 사업확장용 유동성 확보 이면엔 자사주 정리의 목적도 있을 것이란 시선이 많다.
◇첫번째 발행 '성공적', 부채 장기화·유동성 확보·자사주 처분의무 해소
카카오가 EB를 처음 활용한 시점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멜론 운영사인 로엔엔터테인먼트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을 때였다. 인수가액은 1조8743억원. 2015년 말 별도 기준으로 카카오가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5525억원에 불과했다.
결국 카카오는 현금과 신주발행을 통한 주식스왑, 브릿지론을 통해 인수대금을 충당했다. 거래는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나 인수 후 재무구조가 악화했다. 부채 만기구조가 짧아졌고 조달비용 부담은 무거웠다. 카카오는 이를 완화할 목적으로 외부 조달 수단을 적극 활용했다. 사모채와 공모채, 전환사채를 잇달아 발행했다. 추가 유동성이 필요했던 카카오가 눈을 돌린 쪽이 바로 EB였다.
EB는 발행사가 지정한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지정 주식은 일반적으로 자사주나 계열사 주식 등이 된다. 투자자들은 추후 주가가 교환가액을 넘어서면 주식을 받아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고 만약 주가가 교환가액만큼 오르지 않더라도 이자와 더불어 원금을 챙길 수 있는 만큼 여러모로 이득이 많다.
발행자 입장에서도 좋다. 투자자들이 나중에 사채를 자사주로 교환하면 EB 발행기업은 상환 부담을 덜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사주를 시장에 매각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까지 얻는다. 자사주의 가치만큼의 금전적 이득이 발생한다는 점에서다. 더불어 자본총계가 늘어나는 만큼 부채비율이 낮아지는 효과도 있다. EB 기초자산이 시장에서 교환가치가 있는 주식으로만 평가받는다면 발행자·투자자 모두 윈윈 거래다.
카카오는 2016년 5월 2억달러(2300억원) 규모의 해외 EB 발행을 성공시켰다. EB 만기는 5년으로 2021년까지 부채를 장기화하는 효과를 봤다. 중간에 기초자산이 바뀌는 일이 있었다. 당초 교환대상은 로엔(카카오M) 주식이었으나 2018년 9월 카카오M이 카카오에 흡수합병되면서 카카오 자사주로 변동됐다. 결론적으로 이를 계기로 해당 EB는 투자자들에게도 카카오에게도 이득을 남긴 거래가 됐다.
수년 동안 박스권을 횡보하던 카카오 주가는 2020년 초 15만원에서 갑자기 5월에 27만원까지 올랐다. 코로나19 이후 언택트 수혜주로 부각된 데다 그즈음부터 흑자전환 기조를 이어간 덕분이었다.
2020년 5월 조기교환 청구가 빗발쳤고 만기보다 1년 앞서 EB 전액이 정산됐다. EB 담보 주식은 총 179만5076주였는데 이 가운데 174만3558주(97%)의 자사주가 보통주로 교환됐다. EB 교환가액이 주당 12만8128원이었던 만큼 EB 투자자들은 2배 훌쩍 뛰어넘는 수익을 낼 수 있었다. 4년 넘게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주가 상승으로 카카오 입장에서도 거액의 EB 상환 부담을 해소했다. 뿐만 아니었다. 2023년 9월까지 처분 의무가 있는 자사주의 상당 부분을 일거에 정리했다는 데 성과가 컸다. 카카오는 2018년 9월 카카오M을 흡수합병하면서 카카오M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취득한 자사주를 자본시장법에 따라 5년 이내에 처분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카카오의 보유 자사주는 423만3492주였는데 EB 투자자들의 교환권 행사로 상당수를 단번에 처분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사실상 '실패'...세 번째 발행 역시 자사주 정리 목적?
첫 번째 EB 상환을 성공적으로 끝낸 카카오는 EB 정산이 끝난 뒤 정확히 5개월 만에 또다시 두 번째 EB를 발행했다. 3억달러(3395억원) 규모로 만기는 2년6개월인 2023년 4월까지였다. 자사주 처분 의무 시한을 맞춘 것으로 분석됐었다.
과거 EB 발행에서의 좋은 기억과는 달리 두 번째에선 전혀 다른 상황이 연출됐다. 액면분할 후 17만원대를 찍었던 카카오 주가는 증시버블 붕괴와 더불어 2022년부터 언택트 수혜가 빠지면서 급락했다. 설상가상으로 2022년 10월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행사기간 마감을 앞두고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에 따른 서비스 장애 이슈가 불거졌다. 카카오 주가는 5만원대까지 추락했다.
주가가 EB 교환가격(9만5359원)보다 한참 낮았던 만큼 이번엔 투자자들의 조기 상환 요구가 빗발쳤다. EB 발행액의 90%에 달하는 2억6830만달러(약 3800억원)가 조기상환됐다. 원·달러 환율 상승과 맞물려 현금 유출액은 2020년 10월에 조달한 규모(3395억원)를 뛰어넘었다. 미래 주식 시장의 위축을 예상치 못하고 EB를 발행했던 게 실책으로 남았다.
주식으로 교환된 물량은 10만6763주로 102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자사주를 대거 정리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은 셈이다.
카카오는 자사주 처분시한이 거의 다 돼서 2023년 5월 189만주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시장에 블록딜로 처분할 수도 있었으나 소각을 선택했다. 당시 주가가 하락세였던 만큼 추가 물량으로 주가에 더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있었다.
카카오의 세 번째 EB 발행은 올 4월이다. 2억 달러(한화 약 3000억원) 규모의 해외 EB를 발행했다. 자기주식 459만9111주가 교환대상이 된다. 현재 카카오가 보유 중인 자사주(466만5954주)의 99%인 만큼 사실상 자기주식 전부를 정리하는 셈이다.
카카오는 사업확장을 위한 선제적 자금조달이라고 설명했다. 플랫폼, 인공지능(AI), 콘텐츠 강화를 위한 인수합병(M&A), 합작법인(JV) 설립 등의 기회를 지속적으로 탐색 중이다. 특히 AI·서비스와 관련된 GPU 및 서버 구매로 올해와 내년에 걸쳐 1000억원의 지출이 예정돼있다.
다만 최근 자사주 보유 기업들의 EB 발행이 쇄도하는 만큼 카카오의 행보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않다. 금융위원회는 자사주 제도 개선 방안의 후속 조치로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예고했다. 개정안 자체에 자사주 소각을 유도하려는 취지가 깔려있다는 평이다.
3분기 시행을 앞두고 자사주를 교환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의 EB 발행이 급증하는 것을 놓고 이들을 개정안 회피라고 보는 지적이 많다. 올 들어 최근까지 발행된 EB 발행액은 작년 수치의 3.7배를 넘어선다. 카카오도 이번 EB 발행으로 자사주를 교환하게 되면 소각과는 달리 EB 발행액만큼의 현금지출을 줄이는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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