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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활용 스토리

신한지주 유증 그 이후…값비싼 지배구조 안정의 대가

[우군확보②]회사 아닌 회장의 전략적 파트너…주가회복에 '거금·장시간' 소요

김현정 기자  2024-08-19 15:59:08

편집자주

오래 전부터 기업들의 자사주는 다양한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소각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기도 하고 임직원 보상에 쓰이기도 한다. 기업 M&A 대가로 지급할 수도 있다. 다만 자사주 활용이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도 한다.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이 되거나 경영권 분쟁 시 우호지분 확보용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았다. THE CFO는 기업이 보유 중인 자사주가 어떤 형태로 동원될 수 있는지 활용 사례를 유형별로 나눠 짚어본다.
은행이나 금융지주사는 오너가 없고 소유가 분산된 구조다. 그러다보니 CEO에게 엄청난 권한이 집중되곤 한다. 신한금융지주의 자사주 활용 사례는 이같은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 단면을 보여준다.

신한지주는 2020년 조단위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해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아시아(현 EQT프라이빗아시아) 등 글로벌 사모펀드에 지분율 7.6%를 할애했다. 다만 유상증자의 시점과 명분이 투자자들을 납득시키기에 충분치 못했고 시장은 이를 당시의 신한지주 지배구조 강화를 위한 작업으로 바라봤다. 회장 우호지분 확대를 통한 경영안정성 확보가 자본유치의 배경이라는 시선이었다.

신한지주는 이후 4년가량 유상증자에 대한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적극적인 자사주 매입과 소각 행보에도 기업가치가 제값을 평가받지 못했고 주가 역시 오랜 기간 횡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어피너티와 베어링PEA는 올 들어 모두 지분을 매각하며 신한지주와의 인연을 정리 중인 모습이다.

◇'코로나19' 손실흡수용 자본유치의 이면

2020년 9월 4일 신한지주는 이사회를 열고 홍콩계 사모펀드인 어피너티와 베어링PEA에게 각각 6050억원, 5532억원 씩을 조달받는 1조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당시 신한지주는 오렌지라이프생명(현 신한라이프생명) 잔여지분 인수에 자사주를 모두 소진했고 해당 자본유치를 위해 약 4000만주가량의 신주를 발행했다. 유상증자 완료 이후 어피너티는 4%, 베어링PEA는 3.6%의 신한지주 지분율을 확보하게 됐다.

당시 신한지주는 해당 유상증자를 통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한 손실흡수 능력을 강화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룹 중장기 성장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자본여력을 확보하게 됐으며 글로벌 사모펀드사들과의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향후 글로벌 및 자본시장 분야에서 다양한 제휴 및 공동 투자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이를 사업적 목적의 자본유치로 바라보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자금 사용처가 불분명했고 금액과 시기 등 대부분 증자 명분이 약하다는 이유에서 시장의 의구심이 컸었다. 오히려 이를 당시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바라보는 관측이 우세했다.

전임 회장인 조용병 회장은 당시 채용비리 의혹에 대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으로 2020년 3월 조 회장의 연임을 놓고 주주총회서 아슬아슬한 장면이 연출됐었다. 국민연금과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의 반대 의사 표명을 시작으로 주주들의 반대표가 만만찮게 나온 것. 찬성과 반대표는 56대 44로 귀결됐다. 단 6%만 반대를 던졌어도 조 전 회장의 연임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었다.

업계는 조 전 회장 체제에서 경영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호지분 확보의 필요성이 컸다고 바라봤다. 한 신한금융 관계자는 “당시엔 안정적 지배구조를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신한지주는 이듬해 3월 어피너티와 베어링PEA 측 사외이사 2명을 추가해 이사회를 꾸렸고 조 전 회장은 안정적인 체제 속에서 경영을 이어가다 작년 초 임기를 마무리했다.


◇유증 이후, 주가 '어두운 터널' 속 횡보....회복에 4조원, 4년 소요

신한지주 주가는 2020년 유상증자 이후 내리막 길을 걸었다. 증자 과정 발행주식총수가 증가하면서 기존 주주들의 주식가치가 희석됐고 주주들의 실망은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늘어난 유통주식수 대부분을 사모펀드가 보유함에 따라 오버행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도 커졌다. 언젠가는 시장에 풀릴 물량이라는 시선이었다.

대부분 금융지주사 주가는 코로나19 사태 공포가 확산된 2020년 3월 말 최저점을 찍고 반등했지만 신한지주 주가는 대규모 유상증자 이후 다시 하락해 이렇다 할 반등을 보여주지 못했다. 안 그래도 횡보 중인 주가에 유상증자로 더 찬물을 끼얹은 형국이라는 평이 많았다. 특히 외국인 주주 이탈이 컸다.

신한지주는 시장에서 적정 평가를 받고 주가를 회복시키기 위해 2022년과 2023년 연이어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을 단행했다. 2022년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인 후 소각했다. 2023년엔 4859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소각했다.

올 3월엔 15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소각했으며 7월엔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통해 2027년까지 5000만주를 소각할 것이란 계획을 발표했다. 자그마치 3조원가량의 규모다. 신한지주는 이를 통해 신한지주의 주식 수를 과거 유상증자 이전 수준으로 돌려놓기로 했다. 떨어진 주가 회복을 위해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만 수년가량 동안 4조원가량의 거금이 드는 셈이다.


올 들어 신한지주 주주로 있었던 글로벌 사모펀드들은 차례차례 신한지주 지분 정리에 들어갔다. 진옥동 회장 체제를 맞아 전임 CEO 시절 맺었던 사모펀드들이 동맹을 해지하는 모습이다. 유상증자 참여 당시 체결한한 전략적 파트너십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고 올 들어 범정부 차원의 밸류업프로그램 덕분에 금융주들의 주가가 일제히 올라 엑시트의 좋은 기회기도 했다.

올 1~2월 어피너티가 지분 1050만주를 매각하면서 지분율을 기존 4%에서 1.97%로 축소했다. 베어링PEA 역시 올 3월 블록딜을 통해 신한지주 지분율을 1.8%로 줄였다. 두 곳 모두 지분율이 2%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약정에 따라 사외이사 추천권을 상실했다. 다만 기존 사모펀드 추천 사외이사들은 아직 신한지주 이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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