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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활용 스토리

샘표, 경영권 분쟁 '해결사' 자사주…지주전환 디딤돌로

[지배력 강화②]대규모 매입 통해 사모펀드 공세 방어, 지주사 전환 시 오너 지배력 제고

김현정 기자  2024-08-12 08:34:28

편집자주

오래 전부터 기업들의 자사주는 다양한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소각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기도 하고 임직원 보상에 쓰이기도 한다. 기업 M&A 대가로 지급할 수도 있다. 다만 자사주 활용이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도 한다.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이 되거나 경영권 분쟁 시 우호지분 확보용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았다. THE CFO는 기업이 보유 중인 자사주가 어떤 형태로 동원될 수 있는지 활용 사례를 유형별로 나눠 짚어본다.
샘표 오너일가에 자사주는 그야말로 지배력 강화의 만능키로 쓰였다. 사모펀드와의 경영권 분쟁 당시는 자사주 대량 매집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었다. 당시 마르스1호 펀드가 보유한 샘표 지분의 80%를 사들이는 한편 시장에서의 추가 매입으로 거대 물량의 의결권을 제한시켰다.

두 번째 활용법은 지주사 전환 당시 발휘됐다.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사들인 자사주를 고스란히 간직, 인적분할 시 '자사주의 마법'을 통해 큰 지출 없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자기주식 비중이 총 주식량의 30%가 넘으면서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은 샘표가 유일했다.

㈜샘표는 최근 2년 전부터 추가 자사주 매입에 들어갔다. 박진선 사장의 아들인 박용학 상무의 지분 승계가 주요 과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잔여 자사주의 활용 방정식에 이목이 쏠린다.

◇대량매집으로 경영권 방어, 재무구조 악화 부작용

샘표 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이복형제였던 고(故) 박승복 회장과 고(故) 박승재 전 사장 세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승복 전 회장은 사업 확장을 꿈꿨고 박승재 전 사장은 양조간장 사업 한 길을 파려했다. 경영상 갈등은 1997년 3세 승계 과정에서 정점을 찍었다. 당시 박승복 회장은 아들인 박진선 대표에게 CEO 자리를 물려주고 박승재 전 사장을 해임시켰다.

지분 분쟁을 벌이던 박승재 전 사장은 2006년 동복형제들과 합심해 24.1%의 지분을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이 운용하는 사모펀드 '마르스 1호'에 넘겼다. 이로써 경영권 분쟁은 박승복 전 회장 및 박진선 사장 대 마르스1호로 재점화했다.

마르스 1호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선언하며 주총 때마다 박진선 사장 측과 표 대결을 벌였다. 샘표식품 지분을 추가로 매입하며 위협 수위도 계속 높였다. 해마다 사외이사와 검사인 선임을 제안하는 등 경영 참여를 시도했지만 경영진의 반대에 부딪혀 부결됐다. 2011년 3월에는 서울중앙지법에 샘표식품 이사진 7명을 상대로 위법행위 유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도 하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2011년 기준 마르스 1호의 보유지분은 32.98%에 이르렀다. 박진선 사장 측은 본인 지분 16.46%와 특수관계인 지분 및 백기사 역할의 풀무원홀딩스의 5.01%를 합해 34.01%를 보유했다. 마르스 1호와 불과 1.03%포인트로 차이가 크지 않았고 이는 샘표 오너 일가에 불안감으로 항상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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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표 오너 일가가 경영권 분쟁 종식을 위해 꺼내든 카드는 바로 '자사주 매입'이었다. 박진선 대표 측이 직접 인수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2012년 3월 샘표가 주체가 돼 공개 매수를 통해 마르스1호의 지분 120만주(80%가량)을 사들였다. 프리미엄이 얹혀졌고 총 300억원이 들었다.

샘표는 이어 같은 해 5월부터 7월 사이에 34억원을 투입, 자사주 15만주를 시장에서 추가 매입했다. 샘표의 자체 유보금과 차입금으로 자사주를 사들이는데 총 334억원이 들어갔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다.

실제 당시 샘표식품은 매출성장이 정체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자사주를 매입해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하기도 했다. 자사주 매입 직전인 2011년 말 기준 차입금은 210억원 정도였는데 이후 2013년 말 기준엔 512억원으로 2.4배가량 증가했다. 차입금 의존도는 8.9%에서 20.5%로 크게 늘었다.

다만 오너 가의 자금 부담은 없었다. 회사가 자사주를 매입하면 그 즉시 의결권이 묶이게 된다. 자사주 매입 이후 샘표식품의 자사주 비중은 발행주식총수의 30.4%나 됐다. 상당수의 지분이 의결권을 잃게 되면서 경영권이 방어되는 한편 자사주를 제외한 박진선 사장 측의 의결권 지분율은 49%로 올랐다.

◇인적분할 속 '핵심 키'…지배력 굳히기

샘표식품의 자사주 매입은 경영권 방어 목적에서만 보면 성공적이었으나 오너십 강화 측면에서 보면 아직 부족했다. 자사주 매입이 끝난 직후인 2012년 말 박진선 사장의 지분은 16.5%, 박진선 사장의 아들인 박용학 상무의 지분은 2.4%에 불과했다.

이에 샘표는 2~3년 준비 과정을 거쳐 지주사 전환을 추진했고 2016년 지주사 체제 전환을 선포했다. 샘표식품을 투자회사 샘표와 사업회사 샘표식품으로 인적분할한 후, 샘표를 중심으로 지주사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골자였다. 이 과정에서 적대적 M&A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자사주는 '만능키'로 변신했다.

박진선 사장은 2012년 자사주를 대량 보유하게 되자 소각 등 다양한 선택을 염두에 뒀다. 일부는 임직원 상여금으로, 일부는 전략적투자자(SI)와 지분을 제휴하는 방안도 열어놓았다. 하지만 해당 자사주를 수년간 고스란히 남겨뒀고 결국 이를 인적분할 때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했다.


샘표식품 자사주는 분할 과정을 거치면서 지주사 ㈜샘표와 사업회사 샘표식품 자사주로 나뉘었다. 해당 지분은 모두 지주사인 ㈜샘표로 승계됐다. 그 결과 ㈜샘표는 자연스럽게 샘표식품 지분 30.4%를 가진 최대주주로 등극하게 됐다. ㈜샘표는 자사주 덕분에 자연스레 샘표식품 지분을 30% 넘게 확보하면서 큰 비용 지출없이 자회사 관련 지주사 요건을 충족하게 됐다. 의결권이 없던 자기주식에 의결권이 부여되는 마법이 일어난 셈이다.

박진선 사장과 박용학 상무는 후속 작업인 현물출자 유상증자에 참여해 당시 보유 중이었던 샘표식품 85만주와 ㈜샘표 신주 74만주를 바꿨다. 박 사장 부자의 그룹 지주사 ㈜샘표 지분율은 기존 30%에서 46.9%로 제고됐다.

인적분할 당시 ㈜샘표가 소유하게 된 자사주는 소각되지 않아 현재도 남아있다. 다만 이어서 진행된 현물출자 유증으로 발행주식총수 비중이 30.4%에서 22.8%로 줄었다.

㈜샘표는 한동안 해당 자사주 비중을 유지하다 2022년 10월부터 추가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현재 ㈜샘표 자사주 보유비중은 발행주식총수의 29.9%가량이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제한된다는 점에서 결국 향후 오너 일가가 최대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다. 의결권 기준 실질 지배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현재 박용학 상무의 지분 승계 작업이 남은 과제이기도 하다. 박 상무의 지분은 1998년 0.17%에 그쳤지만 할아버지인 고 박승복 회장의 지분 증여를 통해 2000년 6월 기준 1.29%, 2003년 6월 기준 2.36%로 늘었다. 이후 2016년 지주체제 전환 연장선상으로 단행한 현물출자에 참여하면서 지분율이 4.83%가 됐다. 현재는 6.58%를 보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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