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은 공매도 세력의 공격을 받은 대표적 기업이다. 공매도 세력은 셀트리온 주식을 놓고 공매도로 숏 포지션을 강하게 가져가서 주가를 하락시키곤 했다.
표적의 대상이 된 셀트리온은 주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공매도 세력과 맞서 싸우며 주가부양을 위해 매해 어김없이 진행시킨 작업이 바로 '자기주식 매입'이다. 회사가 개입해 유통주식수를 거둬들이며 주주 환원을 실행했고 동시에 회사의 건재함을 알렸다.
셀트리온의 자기주식 매입 카드는 최근엔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었는데 단기간 주가 부양에 성공해 합병 반대 주주들의 마음을 돌렸다. 자사주 매입 뿐 아니라 소각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들이민 게 주효했다는 평이다.
◇2010년대 자사주 매입, ‘공매도와의 전쟁’ 과거 셀트리온의 자사주 매입은 공매도 세력의 공격과 관련이 깊다. 공매도란 ‘없는 걸 판다’는 뜻으로 '빌려온 대량의 주식을 비싼 가격에 먼저 팔고 가격이 하락하면 재매수해서 상환하는' 수법이다. 주로 초단기 매매차익을 노리는 데 사용된다.
셀트리온은 공매도의 공격에 시달린 대표적 기업이다. 셀트리온 주가의 고평가 논란, 실적 불확실성, 회계 투명성 의혹 등으로 공매도 세력의 주요 타깃이 돼왔다. 워낙 제약바이오 업종이 임상 성공 및 실패 등 루머들이 많기도 하고 그에 따른 주가 변동성이 큰 만큼 공매도 작전의 대상이 되는 일이 많다.
셀트리온은 주가 부양을 위해 '자기주식 매입' 카드를 썼다. 주가가 오르면 공매도 세력은 비싼 값에 매수해 주식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손실을 본다.
셀트리온은 2011년 10월 353억원어치(100만주)의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다. 2012년 5월엔 185억원(50만주) 규모의 자사주를, 2013년엔 750억원(150만주)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였다. 당시 셀트리온은 ‘최근 공매도에 따른 주가불안을 해소하고 저평가된 주식의 가치를 높여 주주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자기주식 매입’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에도 457억원(50만주) 규모의 자사주 취득을 결정했고 2018~2019년엔 980억원, 총 45만주의 자사주를 사들였다. 이쯤 셀트리온은 자사주 매입 뿐 아니라 무상증자, 현금배당, 주식배당, 액면 병합 등 주가 부양 조치라고 불리는 모든 병기를 썼다.
2013년엔 서정진 회장이 셀트리온 모든 보유 지분을 다국적 제약사에 모두 매각하고 경영권을 포기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불법 주가조작세력들의 집중 매도공세에 대주주로서 적극 대처해왔으나, 관계기관이나 당국에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회사 매각이라는 특단의 조치 취하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이후 무산되긴 했지만 공매도에 대한 셀트리온의 괴로움이 극적으로 표출된 장면으로 두고두고 회자됐다.
셀트리온은 공매도와의 전쟁 과정에서 자사주 매입에 수천억 원대 자금을 소진했다. 기업 투자에 써야 할 수천억원의 돈을 자사주 매입에 쓰면서 체력이 낭비됐고 재무구조는 악화했다. 내부적으로 바이오시밀러(복제약) 개발에 전념해야 하는 시점에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 부양에 나서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얘기도 많았다.
◇최근 매입·소각, '주가부양시켜 주식매수청구권 줄여라' 정부는 작년 11월부터 공매도를 금지시켰다. 올해 6월엔 금지가 해제될 예정이었는데 내년 3월까지로 연장됐다. 이는 서 회장의 오랜 숙명인 ‘셀트리온 합병’에 순풍을 불어넣은 계기가 됐다.
서 회장은 오래 전부터 2030년 10조원대 매출과 함께 글로벌기업 도약이라는 큰 그림을 그렸다. 이를 놓고 업계에선 ‘2030 비전’ 성공 여부는 셀트리온 그룹 상장 3사(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셀트리온제약) 합병이 키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됐었다.
셀트리온은 2023년 8월 이사회 결의를 시작으로 셀트리온헬스케어 합병을 위한 본격적인 절차에 들어갔다. 서 회장은 “거대 자본을 가진 글로벌 빅파마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합병을 통해 힘을 한데 모으는 것이 최선”이라며 합병을 독려했다.
셀트리온 합병에서의 가장 큰 걸림돌은 ‘합병을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이었다. 셀트리온(63.9%)과 셀트리온헬스케어(55%) 소액주주 지분율이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에 주식매수청구권이 대거 행사된다면 셀트리온의 재무부담이 굉장히 커질 상황이었다. 서 회장은 당시 기업어음 발행 등을 통해 1조원의 주식매수청구권용 자금을 준비해뒀다.
문제는 양사 모두 당시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를 밑돈다는 점이었다. 주주들이 청구권을 행사해 차익실현을 하는 편이 유리할 수 있었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기한까지 셀트리온 주가 흐름이 합병의 성공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된 이유였다.
셀트리온은 적극적인 주가 부양에 나서며 주식매수청구 행사 규모를 줄이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먼저 자사주 매입 카드를 강하게 내밀었다. 2023년 셀트리온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574만주. 예년 대비 10배에 이르는 수량이었다.
서 회장도 자사주를 사들였다. 서 회장은 주매청 행사 전 기자간담회를 열고 “셀트리온 그룹 주가가 저평가돼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셀트리온 제품과 경영 역량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나 역시 자사주를 지속해서 구매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구매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셀트리온은 여기에 더해 ‘자사주 소각’까지 결정했다. 합병 이후 자기주식에 배정되는 합병 신주를 전부 소각키로 했다. 셀트리온이 자사주를 소각한 건 2008년 우회상장을 위해 오알캠을 합병하며 취득한 자사주를 2010년 전량 소각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셀트리온은 2011년부터 꾸준히 매입한 자사주를 쌓아만 뒀지 단 한 차례도 소각한 적이 없다. 사실상 자사주를 소각까지 해야 진정한 주주환원의 의미를 이룰 수 있다. 매입한 자사주는 재매각 혹은 우군세력과 지분교환, M&A 대가 등으로 언제든 다시 시장에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14년 만의 셀트리온의 자사주 소각은 곧 ‘합병에 대한 간절함’으로 풀이됐다.
셀트리온의 자사주 매입과 소각 결정에 힘입어 양사 주가는 점차 상승했다. 때마침 실적도 주가 부양을 뒷받침했다. 셀트리온의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성분명 인플릭시맙)의 피하주사(SC) 제형 ‘짐펜트라’의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 획득 소식에 이어 작년 3분기 누적 매출 1조677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한 게 호재로 작용했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기한은 작년 11월 13일이었다. 해당일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주가는 행사 기준가를 4% 넘게 웃돌았다. 임시주총 이후 20일가량 동안 주가가 부지런히 오른 덕분이었다.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합병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금액은 양사 합계 총 79억원에 불과했다. 회사가 설정한 주식매수청구권 규모 한도인 1조원을 크게 밑돌았다.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는 합병의 최종 관문을 통과하고선 작년 12월 28일 통합법인으로 출범했다. 셀트리온은 약속대로 통합법인 출범 직후인 올해 1월 231만주, 약 4955억원 규모의 자기주식을 소각했다. 더불어 올해 4월엔 약 2000억원의 자기주식을 추가로 소각했다. 두 차례에 걸친 자기주식 소각 규모는 올 들어 자기주식을 소각한 국내 상장사 가운데 가장 컸다.
셀트리온은 합병 이후에도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한 자기주식 매입을 지속하고 있다. 올 들어 3월과 4월 각각 75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한 뒤 6월에도 750억원 규모(41만주)의 자기주식 추가 취득을 결정했다.
한편 한국형 빅파마 ‘통합 셀트리온’의 2단계 절차였던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과의 합병은 수포로 돌아갔다. 현재 주가가 고평가된 셀트리온제약과 합병하면 셀트리온 주주가치가 훼손된다는 셀트리온 주주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합병비율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고평가된 셀트리온제약 주가만큼 셀트리온 주가가 상승해야 한다. 이를 위해 셀트리온이 앞으로도 자기주식 매입 및 소각을 꾸준히 진행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