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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활용 스토리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신호탄' 된 주식교환

[우군확보①]자기주식 의결권 15년만에 부활, 영풍과 분쟁에 활용

김현정 기자  2024-08-19 07:20:33

편집자주

오래 전부터 기업들의 자사주는 다양한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소각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기도 하고 임직원 보상에 쓰이기도 한다. 기업 M&A 대가로 지급할 수도 있다. 다만 자사주 활용이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도 한다.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이 되거나 경영권 분쟁 시 우호지분 확보용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았다. THE CFO는 기업이 보유 중인 자사주가 어떤 형태로 동원될 수 있는지 활용 사례를 유형별로 나눠 짚어본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하지만 제3자에게 넘긴다면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제3자가 우호세력일 경우 이는 '우호지분'이 된다. 경영권 분쟁을 겪는 기업들이 우군을 확보할 때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고려아연은 영풍과의 지분 다툼에서 15년 묵은 자사주를 활용해 승기를 잡았다. ㈜한화, LG화학, 트라피구라 등과는 자사주 교환 및 처분을, 한화임팩트 미국법인과 현대자동차 등과는 신주발행을 통한 유상증자를 단행해 지분으로 얽힌 끈끈한 동맹 관계를 만들었다. 사업적 제휴를 통한 경쟁력 확보도 덤이다.

최근 고려아연은 우호지분 확보와 동시에 주주가치 제고에 힘쓰는 모습이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기간 65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했고 이미 1000억원어치는 소각했다. 고려아연의 주주친화적 행보는 개인 주주들의 '우호지분화'로 나타날 수 있다는 평이다.

◇15년간 잠자던 의결권을 깨우다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처음 매입했던 건 2004년 일이다. 당시 고려아연이 에어미디어와 BRZ 등 부실 계열사에 대한 자금지원을 결정하면서 주주들이 뿔이 난 상황이었다. 비난이 거세지고 주가가 크게 하락하자 고려아연은 해당 결정을 철회함과 동시에 주주가치 제고의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이 가운데 하나가 자사주 매입이었다.

고려아연은 이후 3년여간 자사주 추가 매입과 재테크 목적의 처분 등을 몇차례 반복하고선 2007년 이후부터는 잔여 자사주를 그대로 뒀다. 119만5760주(6.02%)의 자사주는 15년 동안 고려아연 내 머물렀다.

잠자던 고려아연의 의결권이 되살아난 건 2022년의 일이다. 고려아연은 그 해 11월 24일부터 28일까지 보유 중이던 자사주를 일제히 처분했다. 총 7868억원어치였다. LG화학과 ㈜한화에 각각 39만주(2576억원), 24만주가량(1568억원)을 자사주 교환 방식으로 처분했다. 이들과 전략적 사업제휴 관계를 강화·유지한다고 설명했다.

31만여주(2025억원)는 트라피구라(Trafigura Group)가 100% 소유한 Urion Holdings(Malta) Limited에 매각했다.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 구축을 위한 매각이었다. 26만주가량은 모건스탠리와 한국투자증권에 중장기 투자자 유치 목적으로 매각했다. 각각 653억원, 1045억원 규모였다. 고려아연은 자사주를 넘기고 해당 지분율 만큼 현금을 받았다. 이렇게 트라피구라와 모건스탠리, 한국투자증권도 고려아연의 주주가 됐다.

이 밖에도 고려아연은 2022년 8월 한화임팩트 미국법인(한화H2에너지USA)을 대상으로 신주 99만주가량을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2023년 8월엔 현대차그룹에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모두 사업제휴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은 2022년 초부터 미래 성장전략 '트로이카 드라이브(Troika Drive)' 기치 아래 △신재생에너지 및 수소사업 △2차전지 소재 △재활용/순환경제 등 신사업 분야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했다. 실제 LG화학과 ㈜한화, 트라피구라, 한화H2에너지USA, 현대차그룹 등이 해당 사업과 연관성이 있는 만큼 사업적 목적의 제휴라는 고려아연의 설명도 타당하다.


다만 업계는 이들을 고려아연의 사업적 파트너에 앞서 '우호지분'으로 바라보고 있다. 고려아연이 영풍그룹과 지분경쟁을 벌이고 있는 시점에 벌어진 일들이기 때문이다. 고려아연과 영풍그룹은 74년 동업하며 '한 지붕 두 가족' 형태의 경영을 이어왔으나 2022년부터 다툼이 불거졌다.

2022년 7월 영풍은 고려아연에 지분을 30%까지 올리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당시 기획재정부가 배당소득에 대한 익금불산입률을 상향시키기로 했고 영풍은 고려아연에 대한 지분율을 0.65%포인트만 높이면 익금불산입률이 30%에서 80%로 올라갈 수 있었다. 영풍은 해당 세액절감 효과를 위해 지분을 확대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려아연은 영풍의 지분 매입에 동의하지 않았다. 세액절감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토대로 영풍이 고려아연의 지분을 과도하게 늘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고려아연은 추진하는 신사업에 대해서도 영풍이 수차례 어깃장을 놓았다고 반발했다. 영풍의 지분확대가 결국 경영권을 침해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물 밑에서 조용히 제기됐던 둘 사이의 다툼은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자사주 교환 행보로 표면에 드러났다. 고려아연의 신주발행 등으로 영풍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29.35%에서 25.4%(2024년 6월 말 기준)로 떨어졌다. 장형진 영풍 고문 측은 이에 반발해 개인회사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을 매집해오면서 지분 경쟁을 격화했다. 장 고문의 개인회사 '에이치씨'는 2024년 7월 말 기준 고려아연 지분을 1.05%로, 장 고문 자녀의 개인회사 '씨케이'는 0.44%까지 높였다.

◇추가 자사주 매입·창사 이래 첫 소각 '주주친화적 행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고려아연의 15년 묵은 자사주를 경영권 분쟁 시 비장의 카드로 활용했다. 최 회장 등 최씨 일가 측 지분은 16%가량에 그치지만 고려아연의 우군으로 분류되는 회사들의 지분까지 합치면 지분율은 33%까지 올라간다.

고려아연은 우군 확보와 더불어 주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주주환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런 행보는 추후 개인주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공산이 크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11월부터 올 5월까지 자사주 1000억원어치를 매입했다. 영풍 측은 "현 경영진의 지분율 확대에 쓰일 우려가 있다"고 반발했으나 고려아연은 보란 듯이 자사주 매입이 완료된 즉시 전액 소각했다. 고려아연 창사 이래 첫 소각이었다.

고려아연은 5월 추가로 1500억원어치의 자사주 매입을 진행했다. 여기에 더해 올 8월 또 한 차례 4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추가 매입을 이사회에서 의결했다. 고려아연은 해당 매입 자사주들을 대부분 주주환원을 위해 소각하고 일부는 임직원 보상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발표했던 대로 상당량을 소각하고 나머지는 임직원 보상용으로 쓰일 것"이라며 "고려아연이 최근 우수한 인재 영입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리텐션(retention) 주식 보상 목적으로 자사주 매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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