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Rookie)'는 신인 선수를 뜻하는 스포츠 용어로 업계 일선에 처음 등장한 인물을 지칭할 때도 사용하는 표현이다. 기업 경영 의사결정의 정점에 존재하는 이사회에 최근 들어 루키 사외이사들이 속속 진입했다. 1981년 이후 태어난 'MZ세대'인 동시에 처음 사외이사로 선임된 인물들은 이사회 다양성과 전문성을 끌어올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더벨은 재계에서 주목받는 신예 사외이사들의 활약상을 살펴본다.
국내 '최연소' 사외이사. 2020년 당시 서른 살의 나이로 카카오 이사회에 합류한 박새롬 울산과학기술원(유니스트) 산업공학과 조교수(사진)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4년여 동안 이사회에 참여하며 의안 200여건을 심의하고 표결했다. 데이터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를 넘어 국내 대표 정보기술(IT)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주역으로 거듭났다.
박 교수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역할에 집중해 왔다"고 스스로를 자평했다. 해답과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사내 경영진이 미처 고민하지 못했던 관점을 일깨우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강조도 덧붙였다. 국내외를 통틀어 이사회 다양성·전문성이 가장 뛰어난 곳은 '애플'이라 답하기도 했다.
◇"낯선 연락 한 통에서 출발…ESG위 '카본인덱스' 안건 흥미"
1990년생인 박새롬 유니스트 산업공학과 조교수가 카카오 이사회에 처음 합류한 건 2020년 3월이다. 당시 박 교수는 성신여대 융합보안공학과 조교수로 강단에 나가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매진했다. 사외이사직 제안은 낯선 전화 한 통에서 출발했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연락을 받았더니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됐는데 후보자가 되는 것에 동의하겠느냐'는 물음을 들었다고 한다.
박 교수는 더벨과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사외이사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전혀 몰랐던 터라 바로 수락하지는 못했다"며 "카카오가 국민적으로 알려진 서비스를 운영하는 한국의 대표적 정보기술(IT) 기업인 만큼 여기서 경험을 쌓으면 산업계 일선에서 겪는 고민을 파악할 수 있고 학문 연구에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외이사 후보 추천에 응했다"고 회고했다.
카카오 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박 교수를 사외이사로 눈여겨본 건 융합 데이터 분야를 둘러싼 전문성이 탁월하는 판단과 맞닿아 있었다. 2019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과 대한산업공학회(KIIE)가 공동 수여하는 '젊은 연구자상' 최우수상을 받은 이력이 방증한다. △머신러닝 △데이터 마이닝 △정보 보안 등의 분야에 천착한 만큼 회사 사업과 연구·개발(R&D)을 둘러싼 조언에 나서줄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됐다.
나이 서른에 등기임원에 첫 선임된 이래 2021년과 지난해 열린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연달아 선임됐는데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올 상반기 말까지 박 교수가 카카오 이사회에 참석해 표결한 의안만 215건, 청취한 보고 안건은 41건이나 된다. 그는 "매번 상정되는 안건들은 깊이 있는 학습이 필요했다"며 "성실한 자세로 모르는 부분은 공부하는 태도를 지니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고 밝혔다.
현재 보상위와 ESG위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등 이사회 산하 위원회 활동에도 공력을 기울였다. 특히 ESG위에 올라온 의안을 살피면서 적잖은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지속가능경영 전략의 방향을 검토하고 세부 추진 과제를 점검하는데 방점을 찍은 조직이다. 특히 카카오가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면서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데 에너지 소비에 따른 환경 영향을 줄이려는 고민들이 ESG위 안건과 맞닿아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작년 8월 '카본 인덱스(Carbon Index)'를 소개하고 앞으로 계획을 보고 받은데 당시 들었던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전자문서 발급, 전기 자전거 이용, 전기택시 탑승 등 카카오 서비스 이용자들이 탄소 감축에 기여한 내역을 계량화된 데이터로 옮기는 노력이 무척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다양한 의견 반영해야 기업 경쟁력 유지"
이사회 활동에 전념하면서 박 교수는 사외이사의 주된 역할은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는데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회사의 다양한 현안에 대해 빠르게 파악하되 객관적인 태도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바람직하다"며 "직접 해결책이나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시선에서 의문을 제기하면서 회사가 미처 고민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반영하도록 일깨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교수는 "회의 분위기가 경직되지 않고 자유로운 덕분에 이사회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질문을 던져 왔다"며 "대학에서 연구하는 기술이 IT업계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돌아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장 큰 혜택"이라고 덧붙였다.
함께 호흡을 맞추는 사외이사진의 전문성이 저마다 다른 점도 이사회 논의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 줬다. 의장을 맡은 윤석 사외이사는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을 지낸 금융 전문가다. 재무에 잔뼈가 굵은 함춘승 전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대표, 방송·미디어 전문성이 탁월한 최세정 한국광고학회 회장, IT분야에 관심이 깊은 차경진 한양대 경영정보시스템전공 교수 역시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하는데 기여한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국내외 이사회를 통틀어 선진적 면모가 두드러진 회사는 어디일까. 박 교수는 미국 빅테크 기업 '애플'이라고 답했다. 그는 "애플은 성별, 인종, 전문성 등 여러 측면에 맞춰 이사회를 구성해 다각도의 시각과 경험을 회사 경영에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경쟁력을 유지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이사회가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카카오 사외이사라는 직함은 박 교수에게 귀중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그는 "사외이사, 사내 경영진들과 논의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얻었고 학계 활동보다 더욱 폭넓게 배움을 얻었다"며 "앞으로도 의미 있는 질문과 의견을 제시하는데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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