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모투자펀드(PEF) 제도 도입 이후 20년이 흘렀다. 국내 연기금·공제회들은 그사이 든든한 LP풀을 구축해 국내 GP들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인구구조의 변화로 연기금·공제회들의 성숙도가 높아지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벨이 연기금·공제회의 글로벌 경쟁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된 거버넌스 이슈를 짚어보며 개선 방안을 살펴본다.
글로벌 연기금·공제회는 거버넌스를 어떻게 구축하고 있을까. 글로벌 연기금, 공제회의 방향은 명확하다. '수익률 제고'. 이미 한국보다 수십 년 전부터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에 직면했던 글로벌 연기금들은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투자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임직원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며 맨파워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투자 인력들의 장기 근속도 장기 투자에 기반이 되고 있다. 1년 단위의 수익률 공개보다는 10년, 20년 단위의 장기 수익률 공개를 통해 보다 장기 투자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했다.
◇CIO 연봉 연차 보고서에 공개, 수익률은 ‘10년 기준’
글로벌 연기금 가운데서도 투자 성과가 탑티어에 속하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해마다 발행하는 연차보고서에 CIO의 연봉을 명시한다. CIO 연봉만 비공개하거나 다른 상임이사들과 함께 평균 연봉만 공개하는 국내 연기금·공제회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
CPPIB가 공개한 ‘2024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회계연도(2022년 4월~2024년 3월) CIO의 연봉은 약 375만 캐나다달러(한화 약 37억원)다. 2021년 CPPIB에서 글로벌 PE 부문 대표에 임명되면서 관심을 받았던 김수이 대표는 약 318만 캐나다달러를 연봉으로 받았다. 한화로 31억원 수준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도 연차보고서에 해마다 임원들의 연봉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 NBIM의 공동 CIO는 각각 연봉으로 1200만 크로네(한화 약 15억원)를 받았다. NBIM은 임원들의 연봉과 함께 성별, 나이, 재직기간 등도 함께 공개하고 있는데 공동 CIO는 NBIM에 각각 17년, 12년을 몸담았다. 현재 재직중인 임원 12명의 평균 근속기간은 12년에 이른다.
수익률도 10년을 기준으로 공개한다. 싱가포르투자청(GIC)은 20년을 기준으로 성과를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 수익률은 2003년부터 2022년까지 수익률을, 올해 수익률은 2004년부터 2023년까지를 집계하는 방식이다. 1년 단위 수익률은 공개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가장 큰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도 10년 단위로 수익률을 공개하는 것으로 지난해부터 방침을 바꿨다. 2007년 설립된 이후 약 20년 간의 투자성과가 쌓이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CPPIB도 10년 기준 수익률을 중심으로 공개하고 있다. 연차보고서에 1년 단위 수익률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10년을 기준으로 성과를 공개한다.
◇투자조직 분리해 민간 기업처럼… ‘독립성 확보’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굴리는 정부 산하 기관이지만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제도를 마련한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CPPIB는 캐나다연금(CPP)을 운용하는 독립된 기구다. 정부 산하 기관이지만 민간기업처럼 별도로 운영된다.
캐나다 연금은 1965년 출범 이후 1997년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20년 뒤 CPP 기금이 고갈된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재정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진 영향이다. 당시 개혁을 통해 기금운용조직인 CPPIB가 별도로 설립됐다. CPPIB 이사회는 의장을 포함해 12명 전원이 민간 투자 및 금융 전문가로 구성된다. 경영진의 보고 대상은 정부가 아닌 이사회다. CPPIB의 활동은 법적으로 보장받는다. ‘위험 대비 수익률 극대화’가 CPPIB의 유일한 법적 책무다. 캐나다 사회에 기여 등과 같은 공공성 측면은 배제했다.
노르웨이도 국부펀드를 운영하는 별도의 조직 NBIM을 만들어 자금을 운영하고 있다. 노르웨이 정부는 천연자금 수출대금을 토대로 만들어진 GPFG라는 국부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이 자금 관리를 노르웨이 중앙은행에 맡겼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NBIM을 만들어 외환보유고와 천연자금 수출대금을 관리하도록 했다. NBIM의 임원들은 투자 전문가들로 구성되며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도 별도로 APG라는 자산운용사를 설립해 자금을 맡기고 있다. ABP는 설립 직후에는 내무부 장관의 지배를 받는 구조였다. 하지만 1996년 ABP민영화법 제정으로 기금관리와 운용에 대한 주요 역할은 유지한 상태로 민영화됐고 2008년에는 APG를 따로 분리해 기금 운용에 대한 역할을 위임함으로써 투자 독립성을 확보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연기금, 공제회는 성숙도가 높아지면서 고민 끝에 수익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했다"며 "한국도 이제는 연기금, 공제회들의 수익률을 높이는 데 집중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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