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국내 사모투자펀드(PEF) 제도 도입 이후 20년이 지났다. 그 사이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들은 국내 대체투자시장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주춧돌로 성장했다. 국민연금을 비롯해 우정사업본부, 교직원공제회, 노란우산공제 등이 성장하면서 국내 기관 전용 투자자들을 위한 LP풀을 형성했다. 연기금·공제회의 성장에 2005년 3500억원에 불과했던 PE 출자사업 규모는 2조900억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고령화, 저출산 기조로 국내 인구 구조가 급변하면서 국내 연기금·공제회들의 성숙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기대수익률 제고를 위해 향후 국내 연기금·공제회들이 글로벌 LP들과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LP들과 경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은 거버넌스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내 대체투자시장 역사 20년, 연기금·공제회 출자 규모 ‘3500억→2조’ 국내 연기금·공제회의 ‘맏형’은 단연 국민연금이다. 올해 2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운용자산 규모는 1070조원에 이른다. 1988년 5000억원, 2003년 117조원에 불과했던 국민연금 운용자산은 약 20년 사이 9배 이상 성장했다. 국민연금은 이 가운데 대체투자에 171조4000억원(16%)가량을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대체투자 자산에서 사모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42.9%, 금액은 70조5000억원에 이른다.
국민연금 다음으로 많은 자금을 굴리고 있는 곳은 우정사업본부다. 우정사업본부는 우체국예금과 우체국보험을 통해 지난해 기준 147조원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예금이 87조원, 보험사업단이 60조원 안팎을 책임지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2011년 3000억원 규모로 국내 PEF, VC 대상 출자사업을 진행한 이후 지속적으로 출자사업을 펼치고 있다.
교직원공제회의 운용자금은 50조원 수준으로 국내 공제회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국내 연기금, 공제회 가운데서는 3번째로 큰 규모다. 이밖에도 중소기업중앙회 산하 노란우산공제가 23조원, 대한지방행정공제회가 22조원, 군인공제회가 17조원, 과학기술인공제회 이 12조원, 경찰공제회가 5조원을 운용하고 있다.
연기금, 공제회들이 굴리는 자금이 커지면서 이들이 진행하는 PE 대상 출자사업 규모도 커졌다. 2005년 PE 출자사업은 국민연금이 내놓은 3500억원에 불과했다. 국민연금은 당시 신한프라이빗에쿼티, H&Q아시아퍼시픽코리아 2곳을 선정해 3500억원을 출자했다. 그로부터 약 18년이 흐른 지난해, 출자사업에 나선 연기금, 공제회는 모두 8곳으로 늘었다. 이들은 국내 PE들에게 2조900억원을 출자했다.
올해는 아직 출자사업 규모를 정하지 않은 곳들이 있지만 국민연금이 역대 최대 규모 출자에 나선 만큼 국내 연기금, 공제회의 총 출자액도 최대 수준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국민연금은 올해 출자사업에서 1조5500억원을 배정했다. 공무원연금은 2019년 이후 5년 만에 출자사업에 복귀한다. 공무원연금은 올해 1400억원을 출자할 예정이다.
출자영역도 다변화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의 경우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메자닌 출자사업에 나섰다. 국민연금도 올해 수년 만에 크레딧 출자사업을 부활시키면서 달라진 시장에 대응하는 모습이다. 올해 하반기까지 고금리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만큼 그간 크레딧 출자사업에 나서지 않았던 기관들도 크레딧 출자사업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성숙도 높아진 연기금·공제회, "글로벌 경쟁력 강화해야" 연기금·공제회가 지난 20년 동안 성장을 거듭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수익률 측면에서는 여전히 아쉽다는 평가다. 국민연금은 막대한 운용자금 규모를 자랑하며 글로벌 3위 연기금으로 커졌지만 지난 10년 평균 수익률은 5%대에 그친다. 이는 수익률 1위 캐나다 연금(9.8%)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글로벌 연기금 가운데서는 최하위권이다.
하지만 국내 연기금·공제회들의 성숙도가 높아지면서 기대수익률을 더 높여야 할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아직까지 국내 연기금, 공제회들은 보험료 납부자들의 수에 비해 연금 급여 수령자가 적은 구조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라 보험료 납입액보다 연금급여가 더 커질 전망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2041년부터 재정 적자가 시작되고 2055년에는 쌓여있던 연금 기금마저 다 소진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다른 연기금·공제회들이 처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연기금, 공제회들이 20년 동안 성장세를 보였지만 국내에 머무르지 말고 글로벌 투자를 확대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향후 딜 소싱, 운용사 선정 등에서 글로벌 LP와 견주었을 때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LP들과 경쟁을 통해 더 좋은 딜을 소싱하고 더 우수한 성과를 내는 운용사들에게 자금을 맡겨야하지만 국내 연기금, 공제회들은 여전히 맨파워, 트렉레코드 측면에서 미흡하다"며 "연봉, 임기 등 거버넌스 측면에서부터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소들이 많아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