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재무책임자(CFO)를 주로 취재하면서 생긴 버릇 중 하나가 기업 경영의 모든 이슈를 CFO의 관점에서 보려는 시도다. 나름 그들의 입장에 빙의(?)를 해보며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를 가늠해본다. 최근 관심 있게 보는 HMM 인수전도 그렇다.
이번 M&A의 백미는 결국 자금이다. 시장의 눈초리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하림그룹의 6조4000억원 인수대금 마련 방법에 쏠려있다. 대표 계열사인 팬오션이 나섰다 해도 수조원의 현금여유가 없어 어떤 구조를 짜느냐에 따라 동반침몰 또는 동반상생이 갈린다.
매각 주체인 산은은행은 새 주인이 확정되기 전부터 피인수 기업의 현금 빼가기를 막고자 HMM의 배당 규모를 연간 5000억원으로 제한키로 했다. 또 일정기간 지분매각 금지와 정부 측 사외이사 지명권 등도 주주 간 계약에 담길 예정이다. 하림으로선 이제 가장 까다로운 계산이 남았다.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부분은 HMM의 곳간이다. 올 9월 말 기준 단기금융상품 9조5700억원을 포함해 11조원 넘는 현금성자산을 갖고 있다. 인수자로선 배당 등으로 이 자금을 끌어와 인수부담을 일부 해소할 수 있다. 실제로 신용평가사들은 팬오션의 신용도 평가에서 HMM의 현금배당 제한 여부를 눈여겨보는 중이다.
시장에 알려진 바로는 하림 측은 M&A 자금 가운데 3조3000억원 가량을 인수금융으로 조달할 전망이다. 현재 인수금융 금리가 대략 8% 수준으로 가정되고 있는데 이를 감안하면 하림 측의 연간 이자비용 부담은 2640억원 정도다. 매입하려는 HMM 지분은 현재 57.9%지만 영구채가 주식 전환되면 38.9%로 줄어든다. 예상 배당수익이 2895억원에서 1945억원으로 감소하는 셈이다. 이 정도 배당수익으로는 이자도 감내하지 못한다.
당연히 두 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입장이 갈린다. 하림그룹의 CFO인 천세기 부사장은 HMM의 곳간을 최대한 활용해 그룹과 팬오션의 부담을 줄이려 할 유인이 크다. 반대로 HMM의 CFO인 한순구 상무는 11조원 넘는 곳간을 최대한 보전하려는 입장에 서있다.
HMM은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대주주이나 이들의 후광을 받지 않았다. HMM의 신용등급(A-/안정적)은 대주주 지원여력이 반영되지 않은, 자체적인 재무능력으로만 받았다.
다만 상반된 두 CFO 간의 입장은 그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림 측은 우선협상을 통해 배당한도 상향이나 자사주 매입 등으로 HMM의 곳간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방안을 내밀 공산이 크다. 반대로 산업은행은 여론의 눈초리를 살피면서 어디에 선을 긋고 어디까지 들어주느냐가 관건이다. 두 CFO의 운명도 거기에 달려있지 않을까 싶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