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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 HMM 인수

'글로벌 하림' 꿈 무산시킨 해진공의 고집

지분 지속 보유, 경영권 행사 원해 산은과 동상이몽…"HMM 민영화 더 힘들어졌다"

박기수 기자  2024-02-15 10:42:41
HMM의 민영화 작업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그 배경에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매각 협상 과정에서 일부 조항에 관한 하림그룹의 완화 요청에 매각 측인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입장이 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매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산은과 달리 해진공은 추후 지속적으로 HMM의 경영권을 유지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15일 HMM 딜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하림그룹은 매각 측에 △주주 계약 유효기간을 5년으로 제한 △JKL파트너스의 HMM 지분 매각 제한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하향 등을 제안했지만 해진공은 두 제안 모두 완강히 거절했다. 하림그룹은 두 조항 중 최소 한 개 조항은 매각 측에서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해진공의 입장이 바뀌지 않으면서 결국 딜은 결렬됐다.

딜 관계자는 "하림그룹은 두 가지 제안 중 적어도 한 개는 (매각 측이) 들어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해양진흥공사의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산은과 해진공의 입장이 갈렸다는 후문이다. 딜 관계자는 "공적자금 회수가 목적인 산은은 사모투자펀드(PEF)에 매각한 사례도 많을 정도로 매각이 우선순위인 기관이었고 이번 HMM 딜의 경우에도 적법한 절차로 우협으로 선정된 하림에게 매각하려는 의지가 컸다"라면서 "다만 해진공이 반대하면서 산은도 매각을 강행할 수 없는 입장이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해진공은 HMM 지분율이 유지되는 한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사전 협의권을 행사해 경영권에 개입하겠다는 입장"이라며 "하림그룹이 제안한 내용을 받아들이면 몇 년 뒤 HMM에 대한 경영권에서 손을 떼야 하므로 해진공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진공이 완강한 태도를 보이자 하림도 "굴욕적으로 인수할 이유가 없다"며 인수 의지를 접었다.

작년 영구채 전환 이후 1대 주주는 여전히 산은이지만 해진공도 산은 못지 않은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다. 2월 현재 산은과 해진공의 HMM 지분율은 각각 29.2%, 28.7%다.

◇해운업 전망 개선? 공사 존립론?…해진공은 왜 '고집' 부렸나

해진공은 왜 반대했을까. 우선 단기적으로 해운업 수익 전망이 개선되면서 HMM의 지분을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점이 거론된다. 작년 말 홍해에서 예멘 후티 반군의 탄도 미사일 공격이 발발하면서 글로벌 해운사인 MSC, 머스크(Maersk), CMA GGA, 하팍로이드(Hapag-Lloyd) 등이 수에즈 운하 항해를 중지하고 남아공 희망봉 노선으로 우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HMM도 희망봉으로 우회 중이다.

업계는 이런 현상이 컨테이너 운임의 급등을 야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 3분의 1을 책임지는 파나마 운하도 가뭄에 따른 수위 하락으로 통행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고, 수에즈 운하 통행 제한까지 겹치면서 운임 비용이 급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희망봉 우회에 따라 HMM에 대한 수익 전망도 올해 상승했다"라면서 "국제 정세가 해운사 수익성에 유리하게끔 변동되면서 매각 측인 해진공도 굳이 하림그룹이 제시하는 조항을 받아주면서까지 매각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배경을 차치하더라도 HMM 매각 자체가 해진공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분석도 끊이지 않는다. 이전 정부의 1호 공공 기관이었던 해진공은 2018년 7월 5일 한국해양진흥공사법에 따라 '해운 기업의 안정적 선박 도입, 유동성 확보 지원, 해운 산업에 필요한 서비스 제공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사실상 HMM의 정상화를 위해 세워진 기관이었기 때문에 HMM이 민영화하면 공사의 기능이 크게 약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해진공은 국적 선사인 HMM의 정상화를 위해 설립된 기관이었던 만큼 HMM이 민영화하면 해진공의 역할이 약화하게 될 것"이라면서 "해진공이 HMM의 지분을 계속 가지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해진공은 이런 논리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해진공은 작년 말 HMM 매각 이후 해체 가능성을 언급한 한 언론매체 보도에 "공사 설립 후 2023년 9월까지 129개 사에 9조3481억원을 지원했고 HMM 비중은 37%에 불과하다"며 "HMM 외 국내 해운경쟁력 가화를 위한 중장기 사업전략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 팔기 힘들어지는 구조로 가는 HMM

해진공의 HMM 지분 보유 의지는 작년 말부터 공공연하게 드러난 사실이었다. 작년 10월 김양수 해진공 사장은 국회 종합감사에서 "국가전략산업인 해운산업에서 유일한 국적선사인 HMM의 비중을 고려해 공사가 일정 지분을 계속 보유해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HMM의 해진공 지분율은 향후 더 늘어날 여지가 있다. 영구채 이슈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작년 영구채 주식 전환 이후에도 HMM에는 영구채 1조6800억원이 남아있다. 정확히 절반 씩인 8400억원을 산은과 해진공이 나눠 보유하고 있다. 이 영구채들이 전량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산은과 해진공의 HMM 지분율은 71.7%로 상승한다. 추후 매각 절차가 재진행된다고 해도 인수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지분율이다.

게다가 이번 딜 무산으로 산은과 해진공 사이 물밑 입장 차이도 드러나면서 인수 후보자들이 추후 적극적으로 나타날 지 의문 부호가 달린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딜 관계자는 "1대 주주인 산은이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매각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그때 또 해진공이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하림그룹 인수 불발과 같은 상황이 다시 나오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면서 "이번에 아쉽게 고배를 마셨던 동원그룹도 다시 딜이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참여할 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해양진흥공사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산업은행과 다른 입장으로 딜에 나섰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산은과 협의한 방향대로 딜이 진행됐다"라면서 "이외 협상 과정에서 있었던 사안은 비밀 유지 의무가 있기 때문에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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