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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사업에 배수진 친 롯데그룹

김형락 기자  2024-05-23 07:53:42
재무적 투자자(FI) 유치에는 대가가 따른다. 투자받은 기업은 약속한 기일까지 투자금 회수 방안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를 담보하는 장치가 기업공개(IPO) 약정, 주식 매도청구권(풋옵션)·동반매도요구권(Drag-along) 등이다. 계획했던 IPO 일정이 어긋나면 FI와 동행은 가시방석으로 바뀐다.

롯데그룹은 2014년 현대로지스틱스(현 롯데글로벌로지스) 지분을 인수하면서 택배 부문으로 물류사업을 확장했다. 롯데쇼핑 등 그룹 계열사(35%)·오릭스PE(35%)·현대상선(30%) 출자금과 FI 인수금융 등을 보태 특수목적법인(SPC)인 이지스일호를 인수 주체로 세워 현대로지스틱스를 계열사로 편입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 지배력을 강화할 때도 FI를 끌어왔다. 롯데그룹은 2016년 이지스일호가 보유한 롯데글로벌로지스 지분 71%를 인수해 실질적인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지스일호에 남은 지분(17.8%)은 2017년 사모펀드 운용사 메디치인베스트 자금으로 조성한 엘엘에이치 유한회사가 취득했다. 엘엘에이치는 롯데글로벌로지스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도 참여해 1500억원을 출자했다.

처음에 엘엘에이치가 설정한 최장 투자 기한은 5(4+1)년이었다. 출자한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엘엘에이치는 롯데글로벌로지스 2대주주(21.87%)로 남아있다. 롯데글로벌로지스 최대주주인 롯데지주(46.04%), 특수관계자인 호텔롯데(10.87%)가 FI와 협의해 풋옵션 행사 기한을 세 차례 연기했기 때문이다.

엘엘에이치는 내년 1월부터 1개월 동안 롯데지주와 호텔롯데를 상대로 보유 중인 롯데글로벌로지스 지분을 매각하는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1주당 행사 가격은 평균 취득단가에 연 복리 3%를 적용한 금액이다.

롯데그룹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전략으로 롯데글로벌로지스가 IPO를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 롯데지주와 호텔롯데는 FI 풋옵션 행사 시기를 늦추면서 롯데글로벌로지스 IPO 공모가가 풋옵션 행사 가격에 미달하면 차액을 지급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롯데그룹과 투자자 모두 롯데글로벌로지스 기업가치 향상에 이견이 없었기에 성사된 거래였다.

차액 보상은 롯데그룹이 친 배수진이기도 하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지난 2월 상장 주관사와 대표 주관 계약을 맺고 IPO 일정을 저울질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증시 입성을 노린다면 올해 외형 확대와 수익성 개선을 모두 달성하는 균형 감각을 보여줘야 한다. 지난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 감소한 8859억원, 분기순이익은 55% 증가한 70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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