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환경이 안정적이었던 지난 10년과 다른 상시적 위기의 시대가 됐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12일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2023년 상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에서 전 계열사 대표 등 주요 임원진 70여명을 모아놓고 이같이 말했다. 올해 첫 그룹 사장단 회의 시작부터 '위기'를 거론할 정도로 대내외 환경이 심각하다는 경종을 울렸다. 재무 관련 세부적인 내용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신 회장의 머릿속 한 켠을 장악하고 있는 건 단연 '유동성 위기'일 것이다.
당장 2조7000억원 규모의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자금 마련과 롯데건설에 대한 그룹 전방위적인 지원 등으로 재무 부담이 높아졌다. 특히 일진머티리얼즈 인수건은 과도한 레버리지나 무리한 차입 조달로 자칫 '승자의 저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의견이 그룹 안팎에서 나오곤 했다.
이를 의식했는지 신 회장도 이날 일진머티리얼즈 사례를 언급하며 "그룹과 회사의 비전 달성을 위해 꼭 필요한 투자라고 생각해 대규모 투자임에도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그룹 내 '승자의 저주'가 될 지도 모르는 또다른 인수건이 있다. 10년 전부터 묵혀온 인천종합터미널 건이다. 원래 인천터미널부지와 건물은 신세계가 1997년 인천시로부터 임차해 백화점 인천점으로 운영해왔다. 하지만 롯데쇼핑이 2012년 일대 부지와 건물을 인천시로부터 9000억원에 사들였다.
이를 위해 롯데인천개발은 2013년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7300억원 규모로 발행했다. 같은 해 몇 달만에 다시 5년 만기로 8044억원 규모의 ABCP를 또다시 발행해 기존 기업어음을 차환했다. 유동화 과정에서 롯데인천개발 주주사인 롯데쇼핑, 호텔롯데, 롯데건설이 자금보충 약정을 제공했다.
이후 2018년 2월 해당 ABCP가 최종 만기 도래하면서 이를 차환하기 위해 자산유동화증권(ABS) 8000억원 어치를 발행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이같은 '돌려막기'는 계속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유동화 증권의 만기는 대부분 내년 2월 23일부터 돌아온다. 유동성 향방을 가르는 기한이 1년 남은 셈이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금리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이자부담이 커졌다. 그렇다고 당장 상환할 돈은 없기 때문에 결국 재유동화 프로그래밍에 들어가야 한다. 이때도 증권사와 협의해 투자자를 모집해야 하는데 시장이 경색돼있어 기관투자가가 거액을 가져오기는 쉽지 않다.
이미 최근 잇단 이슈로 롯데그룹 전체의 자금이 꼬여있는 상태다. 경쟁사 신세계백화점의 핵심 지점을 뺏었지만 자칫 롯데가 10년만에 '승자의 저주'를 겪을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롯데쇼핑 등 그룹 내 현금흐름이 악화된 만큼 유동성 관리가 재무안정성에 중요한 신년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초 유동화 증권의 만기를 앞두고 올 한 해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어떻게 전략을 짜는지에 따라 인천종합터미널 인수 10년만의 마침표가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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