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물산은 계열사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궂은 역할도 도맡았다. 롯데케미칼, 롯데건설에서 롯데자산개발 지분을 매입해 자금 융통을 돕고, 롯데자산개발이 잠재 손실을 털어낼 때 빅배스(big bath) 부담을 졌다.
롯데물산은 롯데자산개발 지분 32.34%를 인수해 투자 수익을 한 푼도 남기지 못했다. 2018년 10월 1063억원을 써서 사들인 지분이다. 롯데케미칼에서 지분 20.53%(675억원), 롯데건설에서 지분 11.81%(388억원)를 매입했다. 취득 2년 만인 2021년 10월 롯데자산개발이 주식을 전량 무상 소각해 롯데물산이 영향력을 상실했다.
2018년 롯데그룹에서 계열사간 주식 거래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지주사로 전환하는 후속 작업의 일환이었다. 2017년 10월 롯데지주가 출범했지만, 자회사 지배력은 부족했다. 순환출자 고리도 풀어야 했다.
이때 롯데물산은 롯데케미칼 지분을 롯데지주에 넘기면서 대규모 현금이 유입됐다. 2018년 10월 롯데케미칼 지분 11.3%를 매각해 1조765억원이 들어왔다. 롯데자산개발 지분 취득도 같이 진행했다. 롯데물산이 롯데지주로 롯데케미칼 지분을 넘기면서, 동시에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에서 롯데자산개발 지분을 가져왔다.
유동성이 넉넉해진 롯데물산이 계열사 자산 유동화를 도왔다. 롯데케미칼은 주력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롯데자산개발 지분을 처분했다. 롯데건설은 재무구조 개선과 유동성 확보 목적으로 롯데자산개발 주식을 내놨다. 롯데케미칼이 거둔 매각차익은 281억원 규모다.
사업 연관성도 고려한 지분 거래였다. 롯데자산개발은 복합 쇼핑몰과 호텔, 리조트 등 그룹 차원의 부동산 개발사업 PM(Project Manager) 역할 수행하는 계열사다. 그룹 복합 유통시설 내 쇼핑몰 운영·임대 관리 등도 담당하고 있었다. 롯데물산은 롯데월드타워&몰 분양·임대 및 부동산 관리 등이 주요 사업이다.
롯데물산이 롯데자산개발 지분을 인수할 당시 롯데자산개발의 경영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롯데자산개발의 관계기업인 롯데영광지산(심양)유한공사(Lotte Properties (Shenyang) Limited, 이하 홍콩법인)에서 손실이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콩법인은 중국 심양에 주거, 상업, 놀이시설을 망라한 복합단지 건설사업은 추진하고 있었다. 롯데자산개발(지분 37.17%) 외에 롯데건설(31.37%), 롯데쇼핑(17.93%), 호텔롯데(13.53%)가 공동으로 출자했다. 2011년 프로젝트 1기 공사에 착수해 2014년 준공한 뒤 백화점, 영화관을 운영했다. 2기 프로젝트에서는 쇼핑몰, 오피스, 마트, 호텔, 오피스텔 등을 지을 예정이었다.
중국사업에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2016년 사드(THAAD) 여파가 한한령 등으로 이어지면서 수익성에 타격을 입었다. 2016년 298억원이었던 홍콩법인의 당기순손실은 이듬해 418억원으로 증가했다. 2018년에는 매출액 628억원, 당기순손실 879억원을 기록했다.
홍콩법인은 롯데자산개발의 핵심 자산이다. 2018년 롯데자산개발의 별도 기준 자산총계(4777억원) 중 24%(1136억원)를 차지한다. 롯데자산개발은 2018년까지 홍콩법인이 당기순손실을 내고 있었지만 관계기업 지분을 손상 처리를 하지 않았다.
손상은 2020년부터 인식하기 시작했다. 홍콩법인이 진행하는 건설 프로젝트의 예상 시장 상황을 기반으로 추정한 금액이다. 그해 홍콩법인 장부금액 전액(1136억원)을 한꺼번에 손상 처리했다. 롯데자산개발의 영업손실(102억원)보다 당기순손실(1711억원)이 대폭 커진 원인이기도 하다. 롯데자산개발은 결손 누적으로 자본총계가 마이너스(-)471억원으로 떨어져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롯데자산개발은 곧바로 재무 구조를 수술대 위에 올렸다. 2021년 10월 발행 주식을 전량 소각하는 무상감자를 진행했다. 감자로 자본금 2015억원을 기타불입자본으로 계상해 결손금을 보전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추가 자본 수혈도 이뤄졌다. 롯데자산개발 기존 주주였던 롯데지주와 호텔롯데가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각각 2091억원(지분 89.38%), 248억원(10.62%)을 납입했다. 증자 대금(2339억원) 중 57%(1339억원)는 다시 롯데자산개발에서 홍콩법인으로 출자되는 구조였다.
롯데물산은 롯데자산개발 유상증자에 추가로 자금을 내놓지 않았다. 롯데자산개발이 홍콩법인 손실을 털어내는 빅배스 시기에 주주로만 참여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