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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 승계 서막

문제는 재원, 이규호 '1달러' 창업 이유는

④지주사 지분 0%, 상속세 800억대…'절세 천국' 싱가포르 법인 설립 눈길

고진영 기자  2023-01-03 08:11:19

편집자주

코오롱글로벌의 인적분할은 특별한 구석이 있다. 지분 상속을 위한 ‘꼼수’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승계를 앞둔 여타 그룹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지배력 확대의 수단이 아닌 것은 맞는데, 그렇다면 정말 승계와 무관한 결정일까. 4세 시대를 준비하는 코오롱그룹의 전략을 THE CFO가 분석해본다.
지분구조 측면에서 코오롱그룹의 승계는 아직 초입에도 들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코오롱 지분을 보유했던 이웅열 명예회장 회장과 달리 아들 이규호 사장은 아직 1주도 넘겨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속해야 할 주식은 많고 담보로 잡힐 주식은 없다. 재계에서 승계를 시간문제로 보면서도 재원마련 전략을 궁금해하는 이유다. 이 회장 은퇴 이후 시작된 두 부자의 창업활동이 4세시대 준비와 무관치 않을 것이란 시선도 있다.

◇이웅열 회장, 670억 주담대 용처는

현재 코오롱그룹은 이웅열 회장이 압도적인 지배력으로 장악하고 있다. 지주사 ㈜코오롱 지분 49.74%를 이 회장이 쥐었고 그 외엔 5% 이상 보유한 주주가 전무하다. 또 ㈜코오롱이 최상단에서 코오롱인더스트리(31.13%), 코오롱글로벌(74.38%), 코오롱생명과학(20.33%)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이 회장이 가진 ㈜코오롱 지분의 시장가치를 계산하면 1375억원을 넘는다. 전 영업일 시총(2765억원)을 기준으로 셈했다.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에 따라 최고세율 60%를 적용했을 때 이규호 사장이 내야하는 상속세만 825억원이다.

아버지 지분을 그대로 상속할 수도 있지만 세금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길은 이규호 회장이 일부를 자력으로 사들이는 방법이다. 절세를 떠나 세간의 이목을 생각해도 상속보다는 매입이 보기에 낫다. 어느 쪽이든 자금줄이 필요하다.

이 회장의 지원은 전혀 없을까. 그의 경영 퇴진과 함께 늘어나기 시작한 주식담보 대출이 눈길을 끈다. 이 회장은 2011년과 2014년 코오롱생명과학 신주를 인수하기 위해 주식을 담보로 돈을 끌어쓴 이후 2015년 다시 주담대 계약을 맺었다. 내용을 보면 주로 성북세무서, 삼성세무서, 강남세무서 등 세무서에 공탁 형태로 주식을 담보제공했다.

이는 고(故) 이동찬 명예회장의 보유주식을 이웅열 회장이 상속받으면서 상속세 연부연납을 위해 공탁한 주식이다. 국세청에선 납세 유예 신청을 하면 공탁제도를 통해 징수유예 신청을 받아들이고 있다. 세무서와 체결한 주담대는 작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사라진다. 납부가 끝났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회장은 상속세를 위한 공탁 말고도 2019년 6월부터 현금조달 용도로 주담대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2018년 말 이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난 직후의 일이다. 그 뒤 수차례 계약연장 등을 거쳐 지난해 11월에도 2건을 새로 체결했다.

지금은 보유주식의 81%수준인 512만9357주에 대해 주담대를 맺은 상태다. 담보로 잡힌 주식을 지분율로 따지면 39.08%, 총 670억원을 대출받았다. 이자로만 연간 36억원이 나가니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빌렸겠지만 용처를 자세히 알긴 어려운 자금이다. 이밖에 퇴직금(400억원)을 포함해 마지막 연봉으로 456억원을 수령했다.

재계 관계자는 “창업활동을 감안해도 꽤 많은 돈인데 적어도 일부는 이규호 사장을 위해 쓰일 공산이 있다고 본다”며 “승계 준비 차원에서 재산을 불리려면 이 사장에게도 시드머니(Seed Money)가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부자(父子)의 닮은꼴 창업, 왜 싱가포르일까

승계를 위한 자금운용에 해외법인이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창업의 길을 가겠다고 한 이 회장은 2019년 4월 싱가포르에 경영 컨설팅업체 '4TBF PTE. LTD'를 설립했다. 처음 발행주식수 규모는 애초 1만주(1000만달러)였지만 2020년 1500주(150만달러)로 줄었고 이 회장이 지분을 전부 보유 중이다.

이사 명단엔 이웅열 회장뿐 아니라 코오롱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옥윤석 전무도 올라 있다. 개인 창업이라 밝혔으나 코오롱그룹과의 끈이 이어져 있는 셈이다. CFO들은 오너일가의 재산관리, 승계 전략에도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4TBF는 다시 2019년 4월 ‘SINB PTE. LTD’를 싱가포르에 자회사로, 이 ‘SINB PTE. LTD’는 ‘SINB USA. INC.(Seeing Is Not Believing)’를 2019년 5월 세웠다. SINB USA의 경우 젠틀몬스터 미국 법인장 출신인 이원광 대표와 함께 미국 델라웨어 주에 설립됐다.

델라웨어 주는 절세의 천국으로 불린다. 현지에 법인이 있어도 주 안에서 사업을 하지만 않으면 법인세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역시 세율이 워낙 낮아 대표적인 '조세피난처'로 꼽힌다. 1명 이상의 주주와 1명 이상의 이사, 1명 이상의 비서, 그리고 주소만 있으면 며칠만에 법인을 만들 수 있다. 최소 납입자본금 규정이 없기 때문에 1달러만 넣어도 될 뿐더러, 상속세와 증여세마저 없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규호 사장 역시 아버지처럼 싱가포르에 창업을 했다는 점이다. 이 사장은 2021년 5월 ‘VITSURO VITSURA PTE. LTD.’, 작년 4월엔 ‘HAMKE VITSURA PTE. LTD.’라는 싱가포르 회사를 설립했다. 이웅열 회장의 4TBF 와 똑같이 경영 컨설팅업체다. 지분은 이 사장이 100%를 가졌지만 창업에 들인 돈은 단돈 2달러, 두 회사 모두 1달러짜리 주식 1주를 발행한 전형적 페이퍼컴퍼니의 형태로 세워졌다.



이중 HAMKE VITSURA의 경우 작년 9월 29만9999주를 증자하면서 이규호 사장이 약 30만달러(한화 3억8000만원)를 추가로 투입했다. 하지만 VITSURO VITSURA는 여전히 자본금이 1달러에 머물러 있다.



HAMKE VITSURA와 VITSURO VITSURA는 오차드로드에 있는 파이스트 쇼핑센터(FAR EAST SHOPPING CENTR)로 주소가 적혀 있으며 사무실 호수까지 같다. 동일한 주소로 등록된 법인이 이외에도 여러 개 있다는 점에서 대행업체 등이 마련해준 명목상의 주소로 짐작된다. 이 부분은 4TBF도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싱가포르 등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는 것만으론 불법도 아니고 나중에 증자 등으로 규모를 키울 수 있기 때문에 꼭 부정적으로 볼 문제는 아니다”라며 “다만 규제가 느슨하고 자금의 흐름과 출처를 추적하기 쉽지 않다는 면 등을 감안해서 법인을 세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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