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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는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기타비상무이사 등 여러 사람이 모여 기업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기구다. 이들은 그간 쌓아온 커리어와 성향, 전문분야, 이사회에 입성한 경로 등이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선진국에선 이런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을 건강한 이사회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사회 구성원들은 누구이며 어떤 분야의 전문성을 갖고 어떤 성향을 지녔을까. 이사회 멤버를 다양한 측면에서 개별적으로 들여다 본다.
이사회 의결에서 등장하는 기권은 여러 함의를 담고 있다. 국내 상장사 이사회에서 안건에 대한 ‘반대’는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기권 또는 불참은 사실상 반대라는 의미로 해석되곤 한다. 하지만 기권이 꼭 반대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특히 보수위원회나 별도의 내부거래위원회 등을 갖추고 있지 않은 기업들은 이사회에서 종종 기권을 통해 이해충돌 여지를 피하곤 한다.
코오롱의 경우에도 최근 5년 사이 이사회서 등장한 유일한 기권은 이 같은 목적으로 활용됐다. 기권을 통해 향후 이해관계 충돌에 대한 문제 발생 여지를 없애고 이사회 의결에 대한 객관성을 높였다.
◇5년 동안 기권 단 한건, 30년 ‘코오롱맨’ 옥윤석 전무 유일한 ‘기권’ 코오롱은 최근 5년간 모두 74회의 이사회를 열었다. 총 161건의 안건 가운데 보고사항은 7건, 이밖에 이사회를 통해 154건의 안건이 통과됐다. 154건의 안건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코오롱 이사회에서 ‘반대’는 한 건도 없었다. 다만 한 건의 ‘기권’이 있었다.
기권이 나온 안건은 올해 6월13일 열린 ‘자회사 유상증자 참여의 건’이다.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는 않지만 확인 결과 해당 안건은 코오롱생명과학에 대한 유상증자 건으로 파악된다. 코오롱은 이사회를 통해 자회사인 코오롱생명과학에 운영자금 목적으로 200억원을 출자하기로 결의했다. 코오롱은 코오롱생명과학 지분 26.29%를 들고 있는 최대주주다.
해당 안 한 건의 기권은 사내이사에서 나왔다. 기권표를 던진 건 옥윤석 전무였다. 옥 전무는 당시 코오롱 경영관리실장(CFO)으로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옥 전무는 ‘뼛속까지 코오롱인’으로 코오롱에만 30년 넘게 몸담았다. 경상남도 거제 출신으로 1994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말 코오롱에 입사한 이후 쭉 코오롱에서만 일했다. 코오롱에서 재무팀, 경영관리, 경영기획실 등을 거친 ‘재무통’이다. 코오롱그룹의 ‘핵심 브레인’으로 꼽힌다. 2018년에는 코오롱그룹 비서실 상무보로 근무하며 오너를 가까이서 보좌했다. 이웅열 명예회장으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오롱→코오롱생명과학으로 이동, 이해관계 충돌 미연에 방지 누구보다 코오롱그룹을 잘 알고 있는 옥 전무가 왜 해당 안건에 기권표를 던졌을까. 옥 전무는 향후 인사에 따른 이해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 같은 선택을 내린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코오롱은 내부 인사를 앞두고 있었다. 옥 전무는 코오롱생명과학으로 전출이 예정돼있었고 본인도 이를 알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사회 의결에 대한 객관성을 높이고 향후 이해충돌에 대한 문제제기를 피하기 위해 해당 안건의 표결에는 의견을 표명하지 않고 기권했다.
코오롱 관계자는 “(옥 전무는)이미 코오롱생명과학으로 전출이 예정돼있었기 때문에 해당 기업 자금 지원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건 부적절하다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사회가 열리고 약 2주 뒤인 7월1일자로 단행된 인사에서 옥 전무는 코오롱생명과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현재 코오롱생명과학 경영지원본부장으로 재직중이다. 기존 경영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던 양윤철 전무는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했다. 옥 전무는 아직 코오롱생명과학 이사회 구성원은 아니다. 하지만 양 전무가 이사회에 참여했던 만큼 향후 주주총회에서 후임격으로 이사회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옥 전무가 코오롱생명과학으로 이동하면서 코오롱 이사회에는 한 자리가 비게 됐다. 10월 말 기준 코오롱의 등기임원은 사내이사 4명, 사외이사 2명 등 총 6명이 등재돼있다. 옥 전무의 빈 자리는 내년 주주총회에서 채워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코오롱 이사회는 안병덕 부회장, 이규호 부회장, 유병진 전무, 이수진 상무가 사내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사외이사로는 최준선 전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 장다사로 전 기획관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장 전 기획관은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기획관리실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