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더벨이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롯데그룹 C레벨 임원은 '롯데맨'이 차지한다는 건 옛말이다. 비공채 출신에게도 CFO(최고재무책임자)를 맡기며 요직 인사에 개방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외부 전문 경영인을 곧바로 쓰는 CEO(최고경영자) 인사와는 온도 차를 보인다. 영입 인재라도 내부 경력을 쌓은 뒤 CFO에 오르는 수순을 밟고 있다. 롯데그룹에서 회계·재무팀장은 CFO 등용문으로 통한다.
◇ 회계사부터 계열사 임원·대표이사까지 경력 다채로워
2020년 송효진 상무보가 롯데칠성음료 재경부문장을 꿰차면서 외부 출신 CFO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송 상무보는 재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CFO이기도 하다. 롯데그룹에서도 첫 여성 CFO다.
송 상무보는 회계사 출신이다. 한영회계법인(2000~2012년), 선진회계법인(2013~2014년)에서 공인회계사로 커리어를 쌓았다. 2014년 롯데칠성음료 음료회계팀 매니저로 입사해 2019년에는 음료회계팀장을 맡았다. 1년만에 재경부문장으로 발돋움했다.
송 상무보를 빼면 지주사와 계열사 CFO는 정통 롯데맨들이 차지하고 있다. 롯데지주 CFO인 고정욱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고 부사장은 1992년 롯데건설에 입사해 롯데캐피탈 임원으로 경력을 쌓았다. 롯데캐피탈 대표이사(2019~2021년)를 지내고 지난해 11월 롯데지주 재무혁신실장으로 이동했다.
롯데건설 CFO인 김태완 상무도 27년 동안 롯데건설에 몸담고 있다. 1995년 롯데건설 경리부 회계과에 입사해 재경부문 회계팀 담당 임원(2017년)을 거쳐 2018년 재경부문장을 맡아 CFO로 활동하고 있다.
롯데그룹 CFO 직급은 상무급이 다수다. 자산총계 2조원 이상 계열사 중에서는 고정욱 롯데지주 재무혁신실장이 유일한 부사장급 CFO다. 롯데쇼핑(최영준), 롯데정밀화학(김우찬) 등은 상무급 임원이 CFO로 있다. 호텔롯데(한경완), 롯데캐피탈(김두한), 롯데제과(황성욱·류학희) 등은 상무보급 임원에게 CFO를 맡기고 있다.
CFO 연령대는 40~50대로 젊은 축에 속한다. 송효진 롯데칠성음료 상무보(46)가 롯데그룹 최연소 CFO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1973년생인 권재범 롯데글로벌로지스 상무보(49)와 손승현 코리아세븐 상무(49)도 40대 CFO다.
◇ CFO 내부 승진 고수…능력주의 인사원칙
회계·재무·재경팀장은 CFO로 가는 주요 승진 경로다. 해당 기업이나 계열사에서 경력을 쌓아 내부 승진으로 CFO에 오른 사례가 많다.
롯데케미칼 CFO인 강종원 상무는 롯데MRC(현 롯데MCC) 재무회계팀장, 롯데케미칼 일반회계팀장을 거쳐 롯데케미칼 기초소재사업 재무회계부문장에 올랐다. 지난해부터 롯데그룹 화학군HQ CFO도 겸직하고 있다.
롯데글로벌로지스 권재범 상무보도 회계팀장, 재무팀장을 지낸 뒤 지난해 재무부문장으로 올라섰다.
지주사 재무팀을 거쳐 간 CFO도 있다. 롯데렌탈 이광호 상무보와 롯데하이마트 박상윤 상무보가 주인공이다. 이 상무보는 △롯데백화점 재무팀 △롯데지주 재무2팀에서 경력을 쌓아 지난해 롯데렌탈 재무부문장으로 옮겼다. 박 상무보는 △롯데정책본부 재무1팀 △롯데정보통신 재무부문장 △롯데지주 재무혁신실 1팀장을 지낸 뒤 2020년 롯데하이마트 재무부문장으로 영전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인사 제1원칙은 능력 있는 사람이 그 위치에 가야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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