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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균열과 이사회 경영

박기수 기자  2024-10-25 07:34:58
재벌, 대한민국 재계를 관통하는 단어다. 1~2세대 경영인들의 시대를 살아보지 못해 고작 옛날 뉴스와 이야기,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그 시대'를 간접 경험했다. 이건희 회장의 '배우자 빼고 다 바꿔봐라', 정주영 회장의 '해봤어' 등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영인들을 떠올리면 사람을 움직이는 힘 만큼에서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부럽지 않다. 그들이 만든 재벌 경영 체제는 암적인 부분도 있지만 현재의 한국 경제계를 만든 유산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이제 그런 유산들의 유효기간이 지나고 있다. 여기저기서 그간 이어져 왔던 재벌식 경영에 균열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재벌식 경영으로 성장한 삼성전자는 이재용 회장 세대에 이르러 위기론에 휩싸였다. 6년 전 대물림을 완료한 LG그룹은 남매들간 지분 분쟁이 붙었다. 대를 이어 동맹 관계였던 고려아연과 영풍은 새로운 세대가 경영권을 잡고 서로 갈라섰다.

아직 재벌 오너십은 견고하다. SK의 최태원 회장, GS의 허태수 회장, 롯데의 신동빈 회장 모두 건재하다. 그런데 그들의 다음이 궁금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다음 세대는 어떻게 될까. 새로운 시대에 새 인물이 등장할 때 전 세대 경영인만큼의 역량과 의지를 지닐 수 있을까. 마치 왕위처럼 대물림되는 그들의 오너십을 두고 주변 경영인들의 시선은 어떻게 달라질까. 증여와 상속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 등을 고려했을 때 그들이 현재의 재벌들처럼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최근 만난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경제 환경이 100년 전 독일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가족 기업으로 시작한 근현대 독일 경제는 한국 재벌 문화와 비슷한 점이 많아 '원조 재벌'이라는 타이틀도 붙는다. 현재 독일을 포함해 자본주의판을 관통하고 있는 경영 체제는 아마 미래 우리의 모습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답은 이사회 경영이다. 재벌 체제의 힘이 약해진다면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것은 기업 경영의 최고의사결정 주체인 이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1인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정답을 이끌어내기 힘든 구조가 됐다면 유능한 인원들이 모여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기업의 주주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런 이사회 경영 체제에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투명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고 특정인의 수혜보다 기업 전체의 성장을 우선시하고 있나를 돌아봐야 한다. 24년 현재에도 합병비율로 논란이 붙는 현실을 보면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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