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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는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기타비상무이사 등 여러 사람이 모여 기업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기구다. 이들은 그간 쌓아온 커리어와 성향, 전문분야, 이사회에 입성한 경로 등이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선진국에선 이런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을 건강한 이사회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사회 구성원들은 누구이며 어떤 분야의 전문성을 갖고 어떤 성향을 지녔을까. 이사회 멤버를 다양한 측면에서 개별적으로 들여다 본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간의 경영권 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이사회 내 최 회장 우군 포지션으로 분류되는 현대자동차 임원이 있다. 올해 3월 고려아연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된 김우주 기획조정1실장(전무,
사진)이다.
그는 보스턴다이내믹스 등 미국법인들을 관리하고 신기술 기업에 투자하는 해외 지주사 격인 'HMG 글로벌(HMG Global LLC)' 이사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고려아연 유상증자 때 참여한 주체가 HMG 글로벌인 만큼 그가 이사회 자리를 맡게 됐다. 영풍도 그의 선임을 전적으로 찬성했다.
◇올 3월 주총 때 기타비상무이사로 고려아연 이사회 입성
김 전무는 1971년 9월생으로 연세대와 캐나다 칼튼대 경제학 석사를 졸업한 인사다. 2004년 기아에 입사한 뒤 경영기획과 해외사업 등을 담당했으며 2018년부터 현대차로 자리를 옮긴 후 기획조정실에서 PMO(Project Management Office, 프로젝트 관리조직)실장과 PMO사업부장 등을 지냈다.
현대차그룹 전에는 캐나다 현지에서 5년 이상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와 현지 통신기업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에선 투자와 기획, 구조조정 관련 부서에서 오래 근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현대차 기획조정1실장이란 보직과 함께 HMG 글로벌의 이사(업무집행책임자)로 등재돼 있다. HMG 글로벌은 2022년 7월 미국 델라웨어주에 설립된 해외 투자법인으로 6월 말 기준 현대차가 지분 49.5%, 기아가 30.5%, 현대모비스가 20%를 갖고 있는 곳이다. 설립 당시 미국 로봇제조 계열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지분 전량을 현물출자 받았다.
올 상반기 중에는 기아가 2093억원을 추가로 현금 출자했다. 6월 말 기준 HMG 글로벌의 순자산가액은 1조8058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9월 실시된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5272억원을 태운 주체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고려아연 지분 5%와 이사선임권 1석을 확보했다.
고려아연은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김 전무를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했다. 현대차와 HMG 글로벌, 고려아연과의 가교 역할이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김 전무 선임에 대해 "현대차그룹 내 주요 신사업 개발 및 투자를 성공적으로 진행했고 축적된 경험 및 노하우를 이사회에 제공할 것으로 판단돼 기타비상무이사로 추천한다"고 밝혔다.
◇99.8% 압도적 찬성, 소송 제기한 영풍도 직접 각세우지 않아
고려아연 주총에선 의결권 주식 수 2080만4696주 가운데 1902만7271주가 의결권이 행사됐으며 김 전무의 이사 선임안은 그 중 1899만3799주(99.8%)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했다. 반대 및 기권은 3만3472주(0.2%)에 불과했다. 지분 33%를 지닌 영풍 측도 김 전무의 이사회 입성을 찬성했다는 의미다.
영풍 측은 주총 다음 날인 3월 20일 고려아연과 HMG 글로벌 간 이뤄진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대해 신주발행을 무효로 해달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된 계기는 현대차그룹이 참여한 유증인 것을 방증하는 행동이다. 자칫하면 현대차와 각을 세울 수 있는 구도다.
영풍 측은 현대차그룹의 지분이 '한 지붕 두 가족' 체제인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 쪽 우호 지분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경계했다. 그 전인 2022년 6월 기준 영풍 측의 고려아연 지분은 35.22%로 최 회장과 우호주주 지분(18.74%)의 두 배였다. 하지만 유증 이후 한화그룹(8%)과 현대차그룹 지분을 합치면 최 회장 측이 장형진 영풍 고문 측(33%)을 역전한다.
주목할 부분은 영풍이 김우주 전무의 기타비상무이사 선임 안에 찬성했다는 점이다. 최 회장과 대립하고 있으나 현대차와 직접 부딪히는 것은 꺼린다는 의미다. 영풍과 손잡은 MBK파트너스도 "현대차는 고려아연이란 회사와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맺은 것이지 특정 개인 및 개인의 경영권에 같이 행동하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영권 확보를 위해 회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는 셈이다. 김 전무는 최 회장과 장 고문 간에 펼쳐진 경영권 쟁탈전에 발을 들이게 됐으나 양측에 휘둘리기보다 오히려 '꽃놀이패'를 쥔 캐스팅보터의 위치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