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만루의 위기에 놓인 것 같다." 금융권의 한 대표이사에게 임기의 반을 넘은 현재의 심경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동안은 '처음이라서'라는 말이 방패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핑계를 댈 수 없는 데다 시간도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했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도 어느덧 임기의 절반을 지냈다. 그간 바뀐 것이 많지만 바꿔야 할 것도 아직 많다. 남은 시간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더벨이 1년 반 동안 발벗고 뛰어온 진옥동 회장의 성과와 함께 남은 과제를 짚어봤다.
진옥동 회장 전후로 신한금융의 글로벌 사업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 글로벌 네트워크 수치만 봐도 알 수 있다. 2022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신한금융의 글로벌 사업이 이미 진출 단계를 넘어 정착과 안착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결과다.
글로벌 사업은 먼 미래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다. 초창기엔 아픈 손가락으로 여겨지던 사업들이 훗날 효자로 등극하는 일도 비일비재다. 선배들이 씨앗을 뿌리면 그 과실은 한참 지나 후배들이 누린다. 진 회장은 수혜자다. 글로벌 사업이 한창 결실을 맺을 타이밍에 취임했다. 앞으로도 신규 시장 확대보다는 기존 진출한 시장에서 수익을 한층 끌어올리는 데 공을 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압도적 글로벌 사업…순이익 비중 15%대로
글로벌 사업이 중요한 건 미래 지속가능성장을 담보하는 핵심 사업이기 때문이다. 내수는 성장에 한계가 분명한 반면 해외는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이는 진옥동 회장의 최근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진 회장은 11월 중순 홍콩에서 열린 IR 행사에서 신한금융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글로벌과 비은행을 꼽았다.
2024년 6월 말 기준 신한금융의 해외 네트워크는 20개국 253개다. 2015년엔 19개국 151개였다. 10년 동안 진출 국가가 단 1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만큼 우리 금융권의 해외 진출이 어제오늘의 과제가 아니었다는 의미다. 수십 년 전부터 가능성이 엿보이는 국가에 진출해 맨땅에서 시장을 개척해왔다. 일례로 현재 신한금융 글로벌 사업에서 성공신화로 여겨지는 베트남은 지난해 벌써 진출 30주년을 맞았다. 신한금융은 장기적으로 글로벌 손익 비중을 전체의 30% 수준까지 높인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구체적으로 연간 1조원 이상을 글로벌 시장에서 거두겠다는 중장기 경영전략을 세웠다.
목표는 순항 중이다. 어느덧 1조원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신한금융은 올 상반기 글로벌 시장에서 4103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지난해 연간 순이익의 70% 이상을 벌써 벌었다. 국내에선 리딩금융 경쟁에서 다소 뒤처지고 있지만 바다를 건너면 적수가 없다.
규모뿐만 아니라 내용 측면에서도 눈에 띈다. 신한은행을 중심으로 신한카드와 신한투자증권, 신한라이프, 신한캐피탈 등 비은행 자회사들이 주요 시장에 동반 진출해 있다. 철저한 현지화를 기반으로 매년 네트워크를 넓히면서 순이익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사업 순이익 비중은 2022년과 2023년 12%대에서 올 상반기 15%대를 기록했다. 금융그룹을 통틀어 압도적으로 높다.
◇과실 누린 진옥동 회장, 뿌릴 씨앗은
신한금융은 신시장 개척도 진행 중이다. 다만 이미 많은 곳에 깃발을 꽂아 기회의 땅을 찾는 게 예전만큼 쉽지는 않다. 해외 진출이 모든 금융권의 공통 과제가 된 지 오래인 만큼 어느 곳에 진출하든 경쟁 역시 치열하다.
현재 진옥동 회장이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곳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폴란드 등이다. 모두 우리 기업의 진출이 최근 들어 활발해진 곳들이다. 카자흐스탄엔 신한은행과 신한카드가 진출해 있다. 신한은행은 2008년, 신한카드는 2014년 각각 법인을 세웠다. 은행의 경우 카자흐스탄 내 유일한 한국계 은행이다.
폴란드와 우즈베키스탄은 올해 전환점을 맞았다.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있는 신한은행 사무소에 그간 상주 사무소장이 없었으나 올 초 사무소장이 다시 파견됐다. 우즈베키스탄 사무소 역시 그간 비어있었으나 올해 8월에 사무소장이 합류해 9년 만에 직접 시장 조사를 이어가게 됐다. 아직은 시장 규모가 작고 기회를 찾는 단계지만 베트남 역시 비슷하게 시작한 만큼 성장 가능성은 크게 열려있다.
신한은행장 시절까지 포함해 진 회장이 직접 개척한 시장을 찾자면 헝가리를 꼽을 수 있다. 지금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까지 사무소를 열었지만 가장 먼저 진출한 곳은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2021년 당시 국내 이차전지 제조사들이 동유럽에서 사업을 확대하자 가장 먼저 진출을 결정하고 사무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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