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만루의 위기에 놓인 것 같다." 금융권의 한 대표이사에게 임기의 반을 넘은 현재의 심경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동안은 '처음이라서'라는 말이 방패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핑계를 댈 수 없는 데다 시간도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했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도 어느덧 임기의 절반을 지냈다. 그간 바뀐 것이 많지만 바꿔야 할 것도 아직 많다. 남은 시간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더벨이 1년 반 동안 발벗고 뛰어온 진옥동 회장의 성과와 함께 남은 과제를 짚어봤다.
은행업은 1명이 일하고 3명은 감시하는 산업이라는 얘기가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은행업, 나아가 금융업을 감독하는 기관은 힘이 세다. 직접 돈을 다루는 만큼 각종 금융사고의 가능성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산업이라는 의미다.
반복되는 금융사고의 원인을 개인의 일탈로 볼 것인지, 제도적 문제로 볼 것인지는 늘 반복되는 화두다. 시작은 대부분 개인의 결심에서 비롯되겠지만 일탈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에서 조직과 제도의 문제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금융사고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각종 제도를 정비하고 조직 차원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사고가 줄어들까. 신한금융의 사례를 놓고 보면 답은 '그렇다'에 가깝다.
◇지주 최초 '그룹소비자보호부문' 만들어
진옥동 회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바로 정도경영이다. 진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일등이 아닌 일류, 일류신한'을 외치며 이를 위한 방법으로 '정도경영'을 강조해왔다.
거슬러 올라가면 신한은행장 시절부터다. 은행장에 오른 직후부터 고객 중심의 경영을 강조하며 영업점 직원들도 고객 보호에 더욱 힘쓰도록 직원평가 제도를 재편했다. 일류로 거듭나려면 직원들이 손익을 중심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만족과 신뢰를 바탕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차주들이 무분별한 대출에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력 주택담보대출 상품 판매를 자체적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이런 기조는 지주 회장에 오른 뒤에도 이어졌다. 일례로 신한금융은 지난해 7월 그룹 소비자보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그룹소비자보호부문'을 국내 금융지주 최초로 만들었다.
그간 각 계열사의 소비자보호 활동이 계열사 중심으로 이뤄지다보니 고객 수가 많고 인프라가 갖춰진 은행, 증권 등 대형 계열사와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중·소형 계열사와의 역량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신한금융은 그룹소비자보호부문을 통해 개별적으로 운영해왔던 소비자보호 관련 정책을 체계적으로 일원화하고, 계열사간 역량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6월 금융당국이 발표한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에 따라 업계에서 가장 먼저 내부통제 책무구조도 도입을 위한 위한 준비에 나서기도 했다. 진옥동 회장이 조기에 도입할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은행은 9월 금융권 최초로, 지주는 10월 금융지주 중 최초로 책무구조도를 제출했다.
◇신한은행 금융사고 단 2건…경쟁은행과 비교해 '우월'
결과는 어떨까. 일단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지표를 살펴보면 지난해와 올해 금융권을 뒤흔든 각종 사건사고에서 신한금융의 이름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고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규모나 횟수가 다른 곳과 비교해 훨씬 적다.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공시된 '2024년 상반기 신한은행 현황'에 따르면 올들어 신한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단 2건에 그쳤다. 시중은행을 통틀어 가장 적다. 두 건 모두 금액은 10억원 이하였다. 금품수수 1건, 횡령 1건이다.
신한은행과 리딩뱅크를 다투는 KB국민은행과 견줘도 눈에 띄는 수치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올들어 11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3건이 100억원을 넘었다. 배임이 4건으로 가장 많았다.
단순 배임과 횡령, 불완전판매 등 금융사고를 지양하는 건 물론 임직원들에게 요구되는 도덕 수준 역시 매우 높아졌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얘기다. 신한금융 한 계열사에 몸담고 있는 한 임원은 "법인카드 사용 등 가장 실무적 단계에서부터 임직원들의 윤리 및 준법 의식을 고취하려는 회사의 방침을 매우 실감하고 있다"며 "사용처가 상당히 엄격하게 제한돼 있고, 또 매우 까다로워 애매할 땐 개인카드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인성검사 역시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신한투자증권에서 발생한 1300억원대의 금융사고는 신한금융은 물론 진 회장 개인에게도 상당한 충격이었다. 특히 취임 1년 반을 지나는 동안 별다른 사건사고가 없었던 만큼 타격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진 회장은 최근 홍콩에서 열린 IR 행사에서 "사실 라임이나 젠투펀드보다 금액이 작지만 충격은 제가 굉장히 크게 받고 있다"며 "문제의 심각성도 굉장히 깊이 받아들이고 있고, 이에 대한 대책도 그만금 굉장히 깊숙이 해야 되겠다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 회장은 사고가 알려진 직후 주주들에게 서한을 보내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사과문을 공개했다. 그룹 안팎에선 이번 신한투자증권 사태가 조직 쇄신의 고삐를 죄는 실마리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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