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의 이번 지배구조 개편이 예정대로 완료되면 두산밥캣은 지주사 두산(이하 두산)의 손자회사에서 자회사로 바뀐다. 그동안 두산밥캣은 우수한 현금창출력을 바탕으로 배당을 지급해 왔지만 모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 내부에서 모두 소화되면서 두산이 취할 몫이 없었다.
하지만 향후 두산이 두산밥캣의 배당금을 직접 수취해 그룹 신성장 계열사 자금 지원을 위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두산 열악한 배당수익원…두산에너빌리티 기여 부족 두산그룹의 이번 지배구조 개편에 따라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인 두산밥캣이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향한다.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 지분 46.06% 전량을 보유한 신설법인을 인적분할하고 두산로보틱스가 이 신설법인을 흡수합병한다. 두산로보틱스는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두산밥캣을 완전자회사(지분율 100%)로 편입, 최종적으로는 흡수합병할 계획이다.
두산그룹 측은 일련의 분할합병의 효과로 "두산밥캣의 북미 및 유럽 지역에서의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딜러 네트워크를 활용해 두산로보틱스의 선진시장에서의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두산로보틱스는 우량 자회사 확보로 사업 안정화와 수익성 향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을 흡수합병하면 두산은 현재 손자회사인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재편하는 효과를 얻는다. 두산의 두산밥캣에 대한 실질적인 지분율은 현재 14%이지만 자회사로 재편할 경우 42%로 높아진다. 두산의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두산로보틱스의 가치가 두산에너빌리티로부터 인적분할한 신설법인이나 포괄적 주식교환 대상인 두산밥캣보다 높게 매겨지도록 일련의 분할합병과 주식교환 구조를 짰기 때문이다.
두산은 지주사이지만 영업수익에서 배당금수익 기여도가 낮다. 두산은 매년 별도기준 1조원 안팎의 영업수익을 달성하고 있다. 자체 사업인 전자소재 사업(전자BG)과 통합 IT 서비스 사업(디지털이노베이션BU)에서 수익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당금수익은 200억원 안팎에 그치고 있다. 2022년 157억원, 지난해 227억원이었고 올해 1분기도 예년과 비슷한 156억원이었다.
두산의 올해 1분기말 종속·관계·공동기업 합산 지분가치(장부금액 기준)는 3조5070억원으로 자산총계(5조261억원)의 70%를 차지한다. 자산에서의 비중대로면 이들 자회사로부터의 배당금수익이 핵심 영업수익원이어야 한다. 문제는 지분가치가 2조5363억원으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두산에너빌리티가 배당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보통주에 대한 배당을 실시한 것은 2017년(지급일 기준)이 마지막이다. 2020년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합산 한도 3조원의 긴급운영자금 차입약정을 체결하는 등 유동성 부족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긴급운영자금은 2022년 2월 상환을 완료했지만 여전히 배당을 재개하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배당의 재원이 되는 이익잉여금이 마이너스(-) 237억원이었다. 배당금 지급보다 결손금 처리가 더 중요한 과제였다.
◇두산이 직접 두산밥캣 배당금 확보…신성장 계열사 지원 재원 반면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인 두산밥캣은 두산그룹의 대표적인 캐시카우다. 두산밥캣은 2014년 4월 북미, 유럽,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해외기업을 지배하는 국내 지주사로 출범했으며 출범 이후 연간 연결 기준 영업손실이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북미시장에서 소형 건설기계 수요가 확대되면서 2022년과 지난해 2년 연속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두산밥캣은 우수한 현금창출력을 바탕으로 배당도 실시했다. 두산밥캣이 지급한 합산 배당금은 별도기준 2022년 1804억원, 지난해 1553억원, 올해 1602억원이다. 2022년부터는 분기배당도 재개했다. 배당 주기를 좁히면 주주로서는 현금흐름을 빈번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동안 두산밥캣의 배당금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재무건전성을 개선하는 데 주로 쓰였다. 두산에너빌리티 내부에서 소화됐기 때문에 두산이 취할 몫도 없었다. 그러나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을 흡수합병할 경우 두산밥캣의 배당금을 두산이 직접 취할 수 있다.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법인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낼 때 본질가치법을 적용하는 비상장사로 만들어 두산로보틱스 대비 가치를 낮춘 것도 두산로보틱스에 대한 두산의 지분율 하락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였다. 향후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을 흡수합병했을 때 두산의 지분율이 높은 만큼 외부 주주로의 배당금 유출을 줄일 수 있다.
두산이 두산밥캣의 배당금을 노리는 이유는 그룹 신성장동력 육성이다. 두산 자회사인 두산로지스틱스솔루션(지분율 100%)과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86.12%)은 두산로보틱스와 함께 그룹 3대 미래사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두 회사는 당기순손실이 이어지고 있어 모회사인 두산의 유상증자 등 꾸준한 자금 지원이 요구되고 있다.
두산밥캣은 충분한 배당 여력을 확보하고 있다. 올해 1분기 말 배당 재원이 되는 이익잉여금이 1조2452억원이다. 특히 두산밥캣은 지난해 3월 자본잉여금 일부인 주식발행초과금 1조원을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한 이력이 있다. 이익잉여금을 불려 배당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때 조치로 자본잉여금은 1조원이 줄었지만 올해 1분기 말 여전히 1조7189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