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에 붙이는 지배구조 개편을 발표했다. 일련의 개편 과정이 끝나면 계열사간 사업 전문성이 강화되는 동시에 그룹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에 대한 지주사 두산의 실질적인 지배력도 높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지배구조 개편을 시작하기도 전에 가치평가 적정성과 지주사 두산의 편의적 지배력 확대가 논란이 되고 있다. THE CFO가 이번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에서의 문제점과 각 계열사에 미칠 영향을 짚어본다.
두산그룹은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에너빌리티 분할신설부문(두산밥캣) 합병을 위한 합병가액 산정에 '본질가치' 평가법을 사용했다. 자산과 수익가치를 고려한 본질가치에 따라, 기준시가 평가에서 2조3000억원인 두산밥캣의 지분 가치는 1조6000억원으로 낮아졌다.
그러나 로보틱스가 밥캣 지분을 가져온 후에는 주가 중심인 '기준시가'로 측정 방법이 바뀌었다. 밥캣의 매출액이 로보틱스보다 약 184배 높지만, 만년 적자인 로보틱스의 주가가 더 높아 합병비율이 1대 0.63주가 됐다. 에너빌리티와 밥캣 주주들 입장에서는 로보틱스 가치가 과도하게 평가되고 밥캣의 가치는 낮게 책정돼 손해를 보게된 셈이다.
다만 이는 모두 자본시장법 아래서 '합법'이다. 상장사 간에는 기준시가를 바탕으로 합병가액을 정하고, 기준시가를 산정할 수 없는 비상장사는 본질가치로 합병가액을 산정하도록 해서다.
미국이나 일본 등 한국보다 자본시장 시스템이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해외에선 합병가액을 자율에 맡기고 있다. 다만 합병 가액의 공정성에 대한 입증 책임을 묻는다. 결과적으로 비상장사에 대한 합병 가액은 상장사보다 높게 형성되는 경우가 더 많다.
◇두산 합병가액 산청 '위법'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1997년부터 자본시장법을 통해 상장사 간 합병과 상장사와 비상장사의 합병시 합병가액의 산정 방법을 정하고 있다. 자본시장이 아직 미성숙하고 상장사 수가 적은 시기였던 만큼, 법 제정을 통해 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이 컸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6조의5에 따르면 상장사 간 합병할 경우 기준시가를 바탕으로 합병가액을 정해야 한다. 상장사와 비상장사가 합병할 경우 상장사는 기준시가를 따르되, 기준시가가 자산가치에 미달할 시 자산가치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비상장사의 경우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가중산술평균한 본질가치를 합병가액으로 사용한다.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은 자본시장법의 어느 부분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두산이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의 첫 단추는 두산 에너빌리티의 분할합병이다.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 지분 전량(46.06%)을 보유한 신설법인을 인적분할한 뒤 두산로보틱스가 이 신설법인을 흡수합병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기준시가 방식대로라면 밥캣 주식 46.6%의 가치는 2조3369억원이지만, 신설법인의 경우 비상장사라 기준시가를 산정할 수 없어 자본시장법에 따라 본질가치 평가방식을 적용받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본질가치법을 적용받으면 밥캣 지분에 대한 값이 1조6198억원으로 낮아진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분할합병부문은 비상장형태이므로 기준시가를 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76조의5 제1항 규정 및 유사 분할합병 사례를 참고해 기준시가가 아닌 본질가치 평가방식을 적용해 평가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 다음으로 로보틱스는 포괄적 주식 교환으로 두산밥캣 지분을 100%로 늘린 후, 밥캣을 상장폐지하고 그 대가로 주식교환 대상주주에게 밥캣 1주당 로보틱스 0.63주를 교환해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는 두 회사를 평가할 때 기준가치법을 적용해 평가했다. 두 회사 모두 상장사이기 때문이다. 밥캣의 매출액이 로보틱스보다 매출액이 약 184배 높지만, 주가가 고평가되어 있는 점을 노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
두산밥캣은 "로보틱스와 밥캣은 모두 주권상장법인이므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65조의4, 동법 시행령 제176조의5 제1항 제1호 및 제176조의6 제2항에 의거하여 기준주가를 산정한 후, 이를 기초로 교환비율을 산출했다"고 근거를 밝혔다.
◇획일적 산정방식 지적…해외 주요국, 합병가액 자율판단
업계에서는 현행법에 대한 개선 및 보완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시가 기준의 평가법이나 비상장사의 본질가치법 등 획일적으로 산정되는 합병가액이 문제가 되는 만큼 기업 실정에 맞는 다양한 가치 평가 방법이 선행되야 적정가치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 주요국은 다양한 가치를 고려해 합병가액을 산정하고 있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의 경우 합병가액 및 합병비율의 산정을 합병 회사들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고 있다.
황현영·정수민 자본시장연구위원의 <상장법인 합병가액 산정기준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미국과 일본의 합병에서 실제 거래가 이루어진 금액과 피합병기업의 주가를 기반으로 자본시장법에 따른 기준시가를 산출해 비교한 결과, 기준시가보다 30%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된 경우가 미국은 56.8%, 일본은 55.7%에 달한다. 시가총액이 유사한 기업도 실제 합병액은 다양하게 형성되는 사례가 나타났다.
다만 기업이 자율적으로 합병가액 및 합병비율의 산정할 경우, 가치평가의 근거를 명시하고, 외부 평가를 통해 산정 가치에 대한 공정성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SEC는 합병 관련 보고서인 DEFM 14A 양식을 통해 합병과 관련한 정보 제공을 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합병의 배경, 경과와 합병가액 적정성을 포 함한 합병의 긍정적·부정적 요인 관련 이사회 의견, 합병에 대한 임원의 이해관계, 합병 자금 조달, 외부 전문가의 의견 등이 포함된다. 합병 관련 또 다른 공시서식인 S-4에서는 거래 조건, 위험 요소, 비율, 추정 재무 정보 및 인수 대상 회사와의 중요한 계약에 관한 정보를 포함할 것을 요구한다. 이같은 의견을 통해 자율 합병가액 선정이지만 실질적으론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법에서 합병 대가의 산정방법과 그 상당성에 관한 사항뿐 아니라 계열회사간 합병의 경우 소멸회사의 주주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유의한 조치에 대한 내용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더불어 금융상품거래법에 따른 주요사항신고서와 유가증권신고서에 합병비율, 산정방법, 외부 기관자문여부 및 그 내용을 기재하는데 특히 존속회사/소멸회사별로 타당성 확보 및 이해상충 방지를 위한 조치내용을 포함하여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황현영·정수민 자본시장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회사가 자율적으로 다양한 가치를 고려하여 합병비율을 산정하되, 산정 이유와 그 비율의 공정성을 회사가 입증하도록 해 시장의 평가를 받게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관련 제도 개선방안으로 △합병가액 산정방식의 완전자율화 △합병가액 산정방식에 대한 공시 강화 △주주의 이익을 해할 유려가 있는 합병의 공정성 담보 방안 마련(합병유지청구권 도입, 합병검사인제도합병, 관계자의 손해배상책임 인정)을 꼽았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합병가액 적정성에 대한 이사회 의견서 작성 등을 마련해 지난 3월 입법을 예고했다"며 "합병가액 적정성에 대해 이사회가 책임성을 가지고 의견을 쓰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어 "이사회 책임성 제고가 투자자 보호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며 "재정 사안에 대한 충분한 영향을 지켜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위는 지난 3월 기업간 합병 등에 관한 제도 운영과정에서 투자자 보호와 합병제도의 글로벌 정합성 제고를 목적으로 합병가액 적정성 등에 대한 이사회 의견서 작성을 의무화하고 비계열사간 합병시 외부평가 의무화 및 외부평가기관 품질관리규정 신설 등 합병관련 외부평가 강화, 비계열사간 합병가액 산정방법 관련 규제개선에 대한 입법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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