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추진하는 이번 지배구조 개편에서 주식매수청구권이 복병으로 지목된다.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이 각각 제시한 매수한도를 초과해 주식매수청구권이 행사될 경우 지배구조 개편이 불가능하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제시한 매수한도 6000억원은 현재 현금성자산으로 충당이 가능하지만 발행주식총수의 4.5%에 불과해 두산로보틱스나 두산밥캣에 비해 적게 책정됐다. 매수한도를 1조5000억원으로 제시한 두산밥캣은 현금성자산이 244억원에 그쳐 향후 매수재원 마련이 재무 과제로 부각될 수 있다.
◇매수청구 한도초과시 개편 불가…두산에너빌리티 매수한도 지분 4.5% 불과 두산그룹 지주사 두산은 이번 지배구조 개편의 결과로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편입한다.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 지분(46.06%) 전량을 보유한 신설법인을 인적분할하고 두산로보틱스가 이 신설법인을 흡수합병한다. 두산로보틱스가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두산밥캣을 완전자회사화하고 최종적으로는 흡수합병한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간 분할합병,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간 주식교환에 각각 반대하는 주주는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들 회사는 현금을 동원해 매수청구분을 자사주로 취득한다. 두산밥캣은 매수청구에 따른 자사주 취득분을 소각할 계획도 내놨다.
분할합병에서 매수청구분에 대한 매수한도는 두산에너빌리티가 6000억원, 두산로보틱스가 5000억원을 각각 제시했다. 주식교환에서의 매수한도는 두산로보틱스가 5000억원, 두산밥캣이 1조5000억원이다. 최근 2개월, 1개월, 1주일 거래량 가중평균종가를 산술평균해 산정한 매수가격은 두산에너빌리티 2만890원, 두산로보틱스 8만472원, 두산밥캣 5만459원이다.
이번달 31일 종가는 두산에너빌리티 1만8830원, 두산로보틱스 7만1200원, 두산밥캣 4만1200원이다.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발표 이후 전반적으로 이들 회사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모두 매수가격보다 낮아진 상태다.
매수한도가 중요한 이유는 매수청구 규모가 이 한도를 초과할 경우 분할합병과 주식교환 계약이 해제되기 때문이다. 두산에너빌리티의 경우 매수가격과 매수한도로 도출한 매수한도주수는 2872만1876주다. 발행주식총수(6억4056만1146주)에서의 비중이 4.5%에 그친다.
특히 두산에너빌리티는 주식매수청구권이 행사될 가능성이 없는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30.39%로 두산로보틱스(68.19%)나 두산밥캣(46.06%)에 비해 낮다. 비지배주주 주식수(4억4587만423주)에서 주식매수청구권이 6.4%만 초과해 행사돼도 두산밥캣 지분 전량을 보유한 신설법인을 인적분할할 수 없다는 의미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제시한 매수한도는 두산로보틱스나 두산밥캣에 비해 적은 것이다. 두산로보틱스의 매수한도주수는 621만3341주로 발행주식총수에서의 비중은 9.6%, 비지배주주 주식수에서의 비중은 30.1%다. 두산밥캣의 매수한도주수는 2972만7105주로 발행주식총수의 29.7%, 비지배주주 주식수의 55.0%다.
두산에너빌리티의 매수한도가 중요한 이유는 일부 비지배주주들 사이에서 이번 분할합병 계획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지분 46.06%의 가치를 기준시가법으로 평가하면 2조3371억원이다. 하지만 분할합병 형태를 취한 탓에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밥캣 지분 전량을 내주면서 얻는 현금이 한 푼도 없다. 대신 두산큐벡스 지분 100% 전량을 두산포트폴리오홀딩스에 넘기면서 3709억원을, D20캐피탈(D20 Capital) 지분 100% 전량을 두산로보틱스에 넘기면서 644억원을 수취할 뿐이다.
◇두산밥캣 별도 현금성자산 244억 불과…매수재원 마련 과제 부각 두산에너빌리티가 정한 매수한도(6000억원)는 현재 보유한 현금성자산과 유사한 수준이다. 두산에너빌리티의 별도 기준 올해 1분기말 현금성자산은 7406억원으로 매수한도보다는 많지만 충분히 큰 수준은 아니다. 다만 차입금의존도는 23.7%로 추가 차입여력이 있다. 차입금의존도를 30%로 끌어올리면 현재 총차입금(리스부채 포함)에서 1조2461억원을 추가로 차입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현금성자산과 추가 차입금액을 합한 매수재원이 2조원에 육박해 매수한도보다 충분히 크다.
두산로보틱스의 경우 올해 1분기말 현금성자산은 3668억원으로 매수한도(5000억원)에 미치지 못한다. 다만 차입금의존도가 0.9%에 불과해 추가 차입여력이 있다. 차입금의존도를 30%로 높이면 현재 총차입금에서 1894억원을 추가로 차입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매수재원은 매수한도를 겨우 넘기는 정도다.
두산로보틱스로서는 분할합병에서 5000억원, 주식교환에서 5000억원을 각각 한도로 제시했으므로 매수청구에 대응하려면 합산 1조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산로보틱스에서 주식매수청구권이 대량으로 행사될 가능성은 낮게 전망된다. 두산로보틱스는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두산밥캣을 자회사하는 데다 기준시가법을 적용한 두산로보틱스 지분 100% 가치가 5조1930억원으로 책정돼 합병비율이나 교환비율이 유리하게 산정됐기 때문이다.
특히 두산밥캣이 현금성자산과 매수한도의 차이가 크다. 두산밥캣의 매수한도는 1조5000억원이지만 올해 1분기말 현금성자산은 244억원에 불과하다. 현재 15.6%인 차입금의존도를 30%로 높여도 7693억원을 추가 차입할 수 있어 매수재원은 여전히 8000억원에 미치지 못한다. 향후 매수재원 마련이 재무 과제로 부각될 수 있다. 두산밥캣의 비지배주주로서는 두산로보틱스와의 교환비율이 불리하게 산정돼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유인이 있다.
다만 두산밥캣은 연결 기준으로 1조7685억원의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두산밥캣은 북미,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지역 해외법인의 국내 지주사다. 이 때문에 해외법인에 쌓아두고 있는 현금성자산이 존재한다. 북미법인(Doosan Bobcat North America)이나 유럽법인(Doosan Bobcat EMEA)이 대표적이다. 해외법인들로부터 배당 등을 통해 두산밥캣으로 현금성자산을 이동시켜 매수재원으로 이용하는 방법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