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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수 LG엔솔 고문 "CFO 출신 스타 CEO 많이 나와야"

CFO는 CEO 견제해 정반합 의사결정 기여해야…경영 키워드는 '현장·경청·실행'

김형락 기자  2024-07-23 07:40:55

편집자주

좋은 기업은 훌륭한 경영인이 있어야 탄생할 수 있다. 한국 경제에 발자취를 남긴 경영인들은 저마다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THE CFO는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현직 경영인 및 CFO들을 만나 그들이 가진 통찰(Insight)을 들여다 본다.
"기업이 잘될 때는 반대 목소리가 없어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잘못됐을 땐 반대 목소리 없이 추진한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키죠.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고경영자(CEO)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고문(사진)은 CFO와 CEO 사이에는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C레벨 임원 간에 역할을 조정하는 일종의 페어링이다. CFO가 반대 목소리를 내야 CEO가 심사숙고해 '정반합(正反合)'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권 고문은 LG그룹 '재무통'이자 부회장까지 오른 '스타 CEO'다. 1979년 LG그룹에 입사해 45년간 근무했다. LG전자 CFO를 거쳐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유플러스, LG, LG에너지솔루션에서 대표이사를 지냈다. 직장 생활 45년 중 3분의 1을 CEO로 보냈다.

그가 대표이사를 맡은 기업들은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공급 과잉 이슈가 있었던 디스플레이 업황에도 턴어라운드를 만들었고, 과당 경쟁 속에서 LG유플러스를 변화시켰다. LG화학에서 물적분할한 LC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할 때도 CEO 역할을 맡았다.

권 고문은 여러 그룹에서 '스타 CEO'가 나오기를 고대한다. 진정한 CFO 역할을 고민하는 건 좋은 경영인을 만드는 거름이기도 하다. 그는 "CFO 중에서도 훌륭한 CEO가 나올 수 있는 터전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CFO 역할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고문은 중국어 공부와 중소기업인 멘토링 등 여전히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권 고문은 THE CFO와 만나 평소 생각하던 CFO 역할론과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소신을 밝혔다.

권 고문은 지난해 11월 LG에너지솔루션 CEO에서 용퇴한 뒤 고문으로 위촉됐다. 지금도 서울 대치동 사무실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내가 아는 이들이 나로 인해 행복한 게 꿈'이라는 지론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권 고문은 개인적 관심사인 중국어를 공부하며, 자신을 찾아오는 중소기업인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인공지능(AI) 관련 벤처 기업 대표가 펀딩 고민을 들고 왔다. 인수·합병(M&A)이 막막한 기업인에게는 인수 전략을,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에는 성장 전략을 조언해 주기도 했다.

권 고문은 연초 포스코그룹 회장 후보로 거론되며 세간을 놀라게 한 바 있다. 포스코그룹 회장 자리는 '철강맨' 혹은 관료 출신 인사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곳이다. 배터리 회사 출신,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LG에너지솔루션 CEO의 도전은 의아해 보였다.포스코그룹도 포스코퓨처엠을 통해 배터리 사업을 한다.

권 고문은 예선 무대를 거쳐 파이널리스트 6인에 이름을 올렸다. 후보군은 권 고문과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 김지용 포스코홀딩스 미래연구원장, 우유철 전 현대제철 부회장,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 전중선 포스코이앤씨 대표이사 등이었다. 쟁쟁한 관료, 철강맨 사이에 권 고문이 이름을 올렸다.

장인화 회장이 포스코그룹 차기 회장으로 선정됐지만 권 고문의 선전을 남모르게 응원한 직원들도 많았다고 한다. 권 고문은 "임원들은 전전긍긍했지만 직원들은 좋아했다는 후문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권 고문이 포스코그룹 회장이 되면 조직에 긴장을 불어넣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권 고문은 CFO 역할론에 대한 소신도 가지고 있었다. CFO는 사업을 벌여야 하는 CEO가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도록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이 CEO와 CFO를 불러 투자 건에 대해 질문할 때 "죄송한데 저는 반대입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었던 CFO가 본인이었다.

CEO를 견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권 고문도 CFO 시절 CEO와 관계가 껄끄러운 때도 있었다. 불협화음을 방지하기 위해선 CEO와 CFO가 궁합이 잘 맞도록 배치하는 인사가 중요하다고 했다.

권 고문은 CFO에서 CEO로 성장한 인물이다. '전략적 마인드'를 가진 덕분에 리더로 성장할 수 있었다. 구본무 선대회장과 면담할 때 받았던 질문에 답을 찾으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IR 때는 투자자에게 솔직하게 전략을 공유하면서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길렀다.

권 고문은 자신의 경영 철학을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했다. 현장, 경청, 실행이다. 이 중에서 경청을 으뜸으로 꼽았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경영인데, 경청해야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장 경영도 권 고문이 CEO 시절 지킨 철칙이다. LG디스플레이 CEO로 있을 때 월요일에만 여의도 본사로 출근했다. 화·수요일은 파주공장, 목·금요일에는 구미공장을 찾았다. LG에너지솔루션 CEO일 때도 화·수요일은 오창 에너지플랜트, 목·금요일에는 대전 기술연구원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어떤 일이 막혔을 때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나는 질문을 집요하게 하는 스타일입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면 사안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의 근본을 알게 됩니다."

LG유플러스 CEO 시절 인력을 줄이는 효율화 작업을 순탄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현장 경영에 있었다. 하루 종일 대리점에 있어 보고 공장장도 해보니 손이 비는 직원들이 보였다. 직원을 줄이는 대신 파트타임 제도를 도입해 업무 공백이 없도록 하면서 바삐 움직이는 조직으로 만들었다.

벤치마킹도 어려운 과제를 풀어가는 방법이다. 권 고문은 LG유플러스 CEO로 일할 때 글로벌 통신사와 네트워크 형성에 힘썼다. 직원들에게 벤치마킹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직원들이 어려운 과업을 맡았을 때, 그 숙제를 먼저 푼 통신사를 찾아갈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줬다.

요즘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과 예전에 직원들에게 했던 얘기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공유하고 있다. 의사결정 원칙, 리더십, 삶의 태도 등 권 고문이 전하는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 대표 시절 권 고문은 검은색 폴라티를 입고 짧은 머리 스타일을 유지했다. 본인의 이미지를 스티브 잡스처럼 메이킹하기도 했다. 스타 CEO의 탄생은 디테일에서부터 시작했다. 고문으로 물러난 뒤에도 끊임 없는 활동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미래의 '별'이 될 후배 CEO와 CFO들에게 권 고문은 메시지 뿐 아니라 이미지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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