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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세대 회장 시대

최명용 THE CFO부장 겸 부국장  2024-04-02 08:16:49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하늘의 별이 됐다. '효성'이란 이름처럼 새벽별이 됐다.

조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던 시절 지근에서 여러가지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조 회장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전경련(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각종 경제 문제 뿐 아니라 사회 이슈, 교육 문제까지 높은 식견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재벌 서열이 높지 않았음에도 전경련 회장에 추대된 이유이기도 하다.

'쌀' 얘기도 인상 깊었던 스토리다. 농산물 개방이 논의되던 시기였던 터라 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았다. 조 회장은 일본의 쌀 품종과 고대미, 흑미 등의 종자를 언급해 가며 문제를 짚었다. 당시 그는 '인당 쌀 소비량이 80kg도 안 되는데 두배쯤 비싼 쌀을 개발하는 고급화 전략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산 농산물 걱정을 할 게 아니라 고급 품종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자는 주장이다.

통계를 살펴보니 2007년 당시 쌀 소비량은 인당 80kg이 조금 안 됐다. 쌀 값은 한가마니에 16만~17만원선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은 인당 60kg 밑으로 떨어졌고 쌀 가격은 20만원선을 오가고 있다. 쌀 생산량을 두곤 여전히 정부 보조금과 수매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된다. 조 회장이 설파했던 고급화는 여전히 제자리걸음, 아니 뒷걸음질친 상태다.

조 회장을 비롯한 지난 세대 회장들은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컸다. 이건희 회장은 에세이를 써서 '생각 좀 하고 살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회장들은 인터뷰를 자처했고 기자회견도 종종 열었다. 기자들과 대화에 인색한 요즘 회장들과는 사뭇 달랐다.

지난 세대 회장들은 사회에 대한 짐이 있었다. 고도 성장기에 국가와 국민의 희생으로 성장했다는 부채 의식이 있었다. 나라에서 빚을 내서 지원을 해줬고 재벌 간 영역을 나눠줘 기회 비용을 아꼈다. 해외 진출이 원활하지 않으면 정부가 네트워크까지 깔아줬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면 힘을 보탰다. 정권이 바뀌면 정경 유착이란 꼬리표가 달리고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감내했다. 아마 사회에 대한 짐이 크다는 마음 탓일 것이다. 농업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FTA 이슈에 목소리를 낸 이유다.

전 세대 회장들이 퇴장하고 이제 이른바 X세대 회장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지금 대기업을 이끌고 있는 회장들은 1970년대 전후반에 태어나 중년이 됐다. X세대 회장들은 대부분 강남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고 해외에서 공부를 했다. 이재용 회장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나왔지만 후에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정의선 회장은 휘문고를 나와 고려대와 샌프란시스고대학교에서 유학했다. 구광모 회장(로체스터공과대학), 조현상 부회장(브라운대)도 대표적인 해외파다.

사회 생활을 대부분 그룹에서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LG전자 대리부터 시작을 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장'급으로 사회생활을 했다. 글로벌 감각을 키웠고 조직을 오랫동안 관찰했다. 경영 수업을 제대로 받아 경영 노하우는 뛰어난 편이다.

CEO가 된 뒤 퍼포먼스는 나쁘지 않다. 글로벌 시장 개척이란 시대적 과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굵직한 M&A를 해내고 신사업을 런칭하고 구시대의 짐을 덜어내기도 했다. 계륵 같던 휴대폰 사업을 버린 게 대표적이다. 거버넌스를 선진화하고 투명화하는 데 앞서고 있다. 수십년간 내려온 무노조 정책도 버리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X세대 회장들이 선대 회장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 아직 검증해야 할 과제들은 많다. 물려받은 금수저를 넘어 '썸씽 뉴'가 필요하다. 아직 제대로 된 위기상황을 겪지 못한 회장들이 많다. 곧 들이닥칠지 모를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남은 테스트다. 사회적 미션, 정치와의 관계 설정, 다음 세대로의 거버넌스 이양 등 산적한 과제들이 많다. X세대 회장들에겐 아직 갈길이 멀다. 선대 회장의 혜안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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