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와 한미약품의 통합이 연초 자본시장을 핫하게 만들었다. 태양광과 제약업체간 이종 결합이란 것 자체가 독특하다. 매각도 인수도 아닌 그룹간 결합이다. 적대적 M&A가 아닌 별개의 업종간 자발적인 결합은 한국 재계 역사에 드문 일이다.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가 상속세를 낼 재원이 필요해 자금 조달에 나섰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이런 빅딜이 전격적으로 이뤄질진 예상못했다. IB업계에선 불과 일주일 만에 딜이 성사됐다는 후문이 돈다.
하루 앞서 삼성 오너 일가의 지분 블록딜 소식이 있었다.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삼성가 3모녀가 삼성전자 지분 약 2조2000억원 어치를 매각했다. 이부진 사장은 삼성물산, 삼성SDS, 삼성생명 지분도 함께 매각했다. 총 2조8000억원 어치다.
딜 사이즈만으로 보면 OCI-한미약품 통합 딜보다 더 크다. 게다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물산의 지분까지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삼성의 오너십은 이제 더 이상 이씨 집안만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OCI-한미약품간 결합 딜은 짚어볼 것이 많다.
무엇보다 이런 빅딜이 자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빅딜은 외부 변수에 의해 초래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기업집단이 망하거나 망할 위기에 딜이 이뤄졌다. 정부가 매각을 명령해야 겨우 움직였다. 망하기 전까진 최대한 버티다가 은행이 매각을 주관했다.
국제그룹은 정부의 말 한마디에 해체됐다. 군사정권 시절이었긴 했지만 외압이 만든 빅딜 중 하나다. IMF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정부 주도의 빅딜이 시장을 휩쓸었고 재계 판도를 뒤바꿨다. LG가 반도체를 던지고 삼성이 자동차를 던져야 했다. 글로벌 외환위기,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도 빅딜들이 나왔고 재계는 요동쳤다. 은행들도 합종연횡이 이뤄졌다.
세상이 달라진 건 오너 3세들이 경영권을 잡기 시작하면서다. 삼성이 방산업을 한화그룹에 넘긴 것은 외압도 아니요 유동성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단순히 방산산업과 중화학 비즈니스를 한화에 넘겨야 더 잘 될 것이란 '계산'에 의해 이뤄진 빅딜이었다.
삼성 오너들이 핵심 계열사 지분을 던지는 것은 상속세 이슈 때문이지만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고 이건희 회장이 모아 놓은 미술품을 매각하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이것만 해도 3조원 규모다. 이 미술품은 정부에 모두 기증했다. 대신 상속세 납부를 위해 지분을 매각하는 걸 선택했다. 블록딜 매각 대신 우호 그룹을 선택해 지분을 파킹해 놓는 것도 많이 회자된 시나리오다. 특정 그룹의 백기사를 요청할 수 도 있었다. 삼성과 거래를 튼다면 수 많은 그룹들이 백기사를 자처했을 지 모른다.
한미약품 오너들도 새로운 형태의 빅딜을 선택했다. 한미약품의 오너십을 일부 포기하는 대신 두 그룹간 시너지를 노렸다. OCI의 자금력과 한미약품의 제약 기술이 더해지면 뭔가 새로운 시너지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번 빅딜의 공통점은 상속 이슈다. 상속세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딜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상속세가 과도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반복된 이야기이긴 하다. 이 문제를 오너3세들은 정공법으로 혹은 자신만의 전략으로 해답을 찾고 있다.
이슈를 정면 돌파하는 과정에서 이종그룹간 결합이란 해법이 나왔다. 정공법이든 이종결합을 통한 해법이든 재계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 오너십이 달라진 것일 수 있고 시대가 달라진 것일 수 있다. 이런 변화가 재계에, 자본 시장에 또 다른 활력과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런 변화 속에 한국 경제는 다시 한번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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