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글로비스가 최고경영자(CEO)에 이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현대자동차 재무 임원으로 채웠다. 잠정 중단된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 재개에 대비한 인사로 풀이된다. 현대글로비스는 그룹 순환출자 고리 해소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지배력 확대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계열사다. 기업가치 향상과 시장 소통이 CFO의 주요 과제로 꼽힌다.
현대글로비스는 올해 초 CFO를 김영선 재경본부장(부사장)에서 유병각 기획재경사업부장(상무)으로 교체했다. 지난해 말 정기 인사 때 유 상무가 현대차에서 현대글로비스로 넘어왔다. 현대글로비스가 기존 본부 체제를 사업부 체제로 전환하면서 재경본부는 기획재경사업부로 바뀌었다.
CFO 산하 조직은 줄었다. 유 상무 밑으로는 △경영기획실 △재무관리실 △경영관리실 △RCM실이 있다. 기존 재경본부 아래 있던 △원가관리실 △커뮤니케이션실 △IT솔루션실이 빠졌다.
유 상무는 현대차에서 재무 임원으로 승진 코스를 밟았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현대차 입사해 2017년 2월 이사대우로 승진하면서 임원 생활을 시작했다. 재무관리실장 등을 거쳐 2018년 3월 상무를 달고 북미권역(미국, 캐나다, 멕시코)재경실장으로 일했다.
유 상무는 전임 CFO인 김 부사장의 뒤를 이어 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과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글로비스는 정의선 회장을 정점으로 그룹 지배구조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될 계열사다. 그룹 계열사 중 정의선 회장이 보유한 지분(20%)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의 최대주주인 현대모비스(지분 21.43%)를 정점으로 지배구조를 확립하려 한다. 정 회장이 들고 있는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활용해 현대모비스 지분을 늘리는 방안이 유력하다. 정 회장이 기아 등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주식을 확보해 최상위 지배주주에 오르는 시나리오다. 현재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은 0.32%다.
이밖에 여러 시나리오들이 거론되지만 정의선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주식이 지배구조 개편 때 실탄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2018년 현대모비스를 분할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추진할 때도 현대글로비스가 움직였다.
CFO인 유 상무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대비한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 관리다.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가 높게 평가받을수록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 활용도도 커진다.
현대글로비스는 올해 CEO도 현대차에서 재무 임원을 거친 인물로 바꿨다. 지난달 이규복 부사장을 새로운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직전 대표이사였던 김정훈 고문이 현대차 구매본부장(2011~2017년)을 지낸 완성차 산업 전문가였다면 이 대표는 전략·기획 분야 전문가다.
이 대표는 현대차에서 재무, 해외 판매 임원으로 활동했다. 현대차 브라질 생산법인 CFO(2013년 1월~2015년 12월), 프랑스 판매법인장(2016년 1월~2018년 11월), 미주유럽관리사업부장(2018년 12월~2020년 2월) 등을 지냈다. 지난해 12월 현대글로비스로 이동하기 전에는 현대차 프로세스혁신사업부장(2020년 2월~지난해 11월)으로 일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사업 기반이 견고한 곳이다. 매출 70%(2021년 기준)가 현대차, 기아, 현대제철 등과 거래에서 발생한다. 그룹 완성차·부품·원재료 물류와 부품 유통을 담당하고 있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이 자본적 지출(Capex)과 배당 지출을 상회하는 잉여현금흐름(FCF) 창출 기조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연결 기준 FCF는 5924억원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을 미뤄둔 상태다. 2018년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을 추진했지만 주주를 설득하지 못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