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움직이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꼽으라면 '돈'과 '사람'이다. 따라서 투자한 기업으로 돈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보냈다는 건 그만큼 그 기업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2018년 이후 투자 규모를 대폭 늘린 현대자동차가 대규모로 출자했거나 설립한 해외 기업(법인) 가운데 자사 임원을 보낸 곳은 △ 미국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법인인 '슈퍼널' △미국 자율주행 합작법인인 '모셔널' △영국 전기 상용차 업체이자 나스닥 상장사인 '어라이벌' △미국 투자 지주사인 'HMG Global' 등이다.
네 개 기업의 역할은 조금씩 다르지만 글로벌 현장에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UAM 등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앞장서 준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인지 현대차가 네 곳에 보낸 인물들은 해당 분야의 기술적 전문성뿐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다는 특징을 공유한다.
◇ 2028년 '3차원 시대'를 안길 'NASA' 출신 신재원 사장
지난해 1100억원을 출자받은 데 이어 올해 1945억원을 추가로 받은 슈퍼널. 현대차는 이곳에 2019년 정의선 회장(당시는 수석부회장)이 직접 영입해 화제를 모았던 신재원 사장을 대표로 앉혔다. 현재 신 사장은 현대차에서 AAM(Advanced Air Mobility)본부장도 겸하고 있다.
1959년생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와 버지니아 공대를 석·박사 졸업한 신 사장은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항공안전기술개발실장과 항공연구총괄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동양인 최초의 NASA 본부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UAM 부분 경쟁력을 키우는 데 국내에서 그만한 전문가가 없다는 평가가 많다.
신 사장에 따르면 정 회장은 그에게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그리고 도움을 주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며 설득했다. 2019년 현대차 UAM사업부장으로 합류한 그는 4년째 회사의 UAM 경쟁력을 키우는 데 노력하고 있다. UAM 시장은 벤츠와 토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뿐 아니라 보잉 등 글로벌 항공기 제조사도 뛰어든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지난해 말 현대차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신 사장은 "평면적인 해결책으로 도시 집중화를 해결할 수 없다"며 "우리처럼 (직접) 팀을 만들어 자체 개발해 UAM 생태계를 만들려는 자동차 회사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2028년 상용화 예정"이라며 "시장에 제일 먼저 뛰어드는 게 아닌 가장 안전한 기체로 적합한 시기에 진출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전했다.
◇ 그룹에서 2.4조원 투자한 '모셔널'의 전략가, 장웅준 전무
최근 5년간 현대차가 가장 큰 돈을 투자한 곳은 어디일까. 바로 미국 자율주행 업체인 앱티브와 함께 설립한 모셔널이다. 2020년 현대차는 이곳에 1조2678억원을 출자했다. 그룹 계열사인 기아(6969억원)와 현대모비스(4978억원)도 수천억원의 자금을 출자했다.
합하면 2조3000억원이 넘는다. 웬만한 대기업의 1년 치 투자 예산을 뛰어넘는 돈을 모셔널에 넣었다. 이는 자율주행 기술 확보에 그룹 차원에서 사활을 걸었다는 뜻과 같다. 테슬라가 부족한 조립 기술에도 전 세계 전기차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이유는 '오토 파일럿'으로 불리는 압도적 자율주행 기술력 덕분이다.
그룹의 명운을 좌우할 모셔널엔 현재 자율주행사업부장을 맡고 있는 장웅준 전무를 보냈다. 장 전무는 모셔널에서 최고전략책임자(CSO)로도 재직하며 전략뿐 아니라 마케팅, 제품 기획, 구매 등의 업무도 맡고 있다. 그 또한 슈퍼널 대표인 신 사장과 동일하게 외부에서 영입된 인물이다.
1979년생으로 스탠포드대 박사 출신인 그는 차량 보안 소프트웨어 업체인 피니언인더스트리를 창업하기도 했다. 2015년 현대차에 영입돼 2017년 이사대우로 승진한 그는 '최연소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장 전무는 모셔널 외에도 이스라엘 차량 보안 소프트웨어 업체인 오토피아의 이사(Director)로도 활동하고 있다. 자율주행과 차량 보안 소프트웨어 개발을 전적으로 그에게 맡기고 있는 셈이다.
◇ '어라이벌'의 떨어진 신뢰 회복해야 할 황윤성 상무
미래 기술 확보를 위해 적자를 감수하고 투자했지만 경제적 이익도 안겨주면 더할나위 없다. 현대차가 대규모로 투자한 곳 중 상장한 곳이 있는데, 영국 전기 상용차 업체인 어라이벌이다. 2019년 말 현대차가 1031억원, 기아가 257억원을 출자했다. 이후 1년여 뒤인 2021년 3월 스팩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나스닥에 상장했다.
이곳에 이사(Director)인 인물은 현재 현대차 오픈이노베이션투자실장인 황윤성 상무다. 황 상무는 어라이벌 이사회의 내부 위원회인 지명위원회와 지배구조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기업으로 이해하면 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투자 기업인 현대차와 기아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추천되도록 하는 셈이다.
1968년생인 황 상무는 유망 스타트업 및 벤처 기업 발굴의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오픈이노베이션투자실장에 선임되기 전 △벤처기술투자팀장 △오픈이노베이션사업실장 등을 역임했다. 이 분야에서만 20년 넘게 경력을 쌓은, 현대차 그룹 전체를 봐도 흔치 않은 경력의 소유자다. 1997년 현대모비스로 입사한 뒤 2000년대 초에 현대차로 옮겼다.
단 현재 어라이벌 이사로서 그의 역할 중 하나는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어라이벌은 공장 내 배터리 화재로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납품이 지연되고 실적 턴어라운드에 실패하자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를 맞았다. 주가는 지난해 말 31달러를 상회하며 현대차와 기아에 이익을 안겼으나 17일 현재 1달러 밑으로 주저 앉아 있다.
◇ '정의선 픽' 보스턴다이내믹스 관리 주체 'HMG Global'의 김우주 상무
투자 규모 면에선 모셔널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정의선 회장이 직접 지분을 매입했다는 점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현대차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눈에 띄는 곳이다.
최근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배구조에 변화가 있었다. 기존 주주인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보유 지분을 그룹의 미국 투자법인인 'HMG Global'에 현물출자했다. 이에 따라 보스턴다이내믹스는 HMG Global의 종속법인으로 지위가 바뀌었다. HMG Global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기아가 공동으로 지분 100%를 보유한 법인이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는 HMG Global의 이사로 현재 PMO(Project Management Office) 사업부장을 맡고 있는 김우주 상무를 앉혔다. 김 상무에게 향후 상장 가능성 있는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 향상과 함께 미국 내 새로운 투자처 발굴이라는 중책을 맡긴 셈이다.
1971년생으로 연세대와 캐나다의 칼튼대학을 학·석사 졸업한 김 상무는 캐나다 현지에서 5년 넘게 대한무역진흥공사(코트라)와 현지 통신 기업에서 근무했다. 이후 2004년 기아에 입사한 뒤 2018년부터 현대차에서 근무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사업기획 및 관리 분야에서 주로 근무하고 있다. 친화력이 좋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현대차는 HMG Global을 설립한 이유에 대해 "미국 내 미래 신사업 분야 투자 및 관리를 위한 법인"이라고 설명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외에 수천억원의 현금도 지원받은 HMG Global의 투자 활동은 내년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전동킥보드 공유업체인 지쿠터에 대한 투자를 제외하면 현대차는 올해 새로운 투자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