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적인 것은 잘 평가절하된다. 본질에 비교해 외형은 다소 가치없다는 인식이 보통은 진리처럼 통한다. 아름다움이 가진 경제적 효과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책을 표지로 평가하지 말라)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지만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 껍질도 실체의 일부이며 성공한 브랜드는 대개 철학과 영감을 겉으로 형상화했다. 포장을 알맹이와 떼어놓을 수 없다는 얘기다. 아니 구구절절 설명도 필요없다. 이 세기 디지털 혁명을 지배한 ‘애플 갬성’은 절반이 디자인에서 나온다.
사업에서 명분이 지니는 중요성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외적 정당성을 갖추고 보기 그럴듯하게 포장할수록 투자자와 시장의 지지를 얻기 유리해진다. 그러니까 흔히 따지는 ‘명분이냐 실리냐’의 문제에서 둘은 독립적이지 않다.
지난달 대우조선해양 인수 결정을 알린 한화그룹이 최근 실사를 마쳤다. 상반기 내 거래를 마무리 짓겠다고 한다.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가 2008년에도 눈독을 들였던 매물이다. 당시 이행보증금까지 냈다가 대금이 모자라 속쓰린 후퇴를 했으니 이제 숙원을 푸는 셈이다.
걸림돌은 인수금융 디자인이 시원치 못하다는 데 있다. 대금 2조원 중 1조원을 부담키로 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발주처로부터 받는 선수금을 대우조선해양 지분 취득에 활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선수금은 본래 용처가 분명한 돈이다. 일종의 착수금인 만큼 제품 제조에 쓰여야 한다. 재무제표상 부채로 잡히는 것도 그래서다.
조선사들이 선수금 때문에 고생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한화의 선택은 더 아이러니하다. 이를테면 2016년 말 STX조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배경엔 ‘선수금 돌려막기’ 관행이 크게 작용했다. 선수금을 당겨썼는데 수주가 끊기면서 자금이 메말랐던 탓이다. 이렇다보니 시중은행들이 선수금을 그 선박에만 사용하지 않으면 환급보증을 안해주겠다고 조선업계를 압박하기도 했다.
물론 한화에어로가 선수금을 미리 쓴다고 해도 돈이 모자라 발주처에 납품을 못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당장 금융비용을 줄이면서 인수 재원을 마련하려면 선수금이 최선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질이 그렇더라도 선수금 활용이 원칙을 벗어난 것은 마찬가지다. 여기에 별다른 명분도 대기 어렵다.
방산업 뉴챕터를 준비하는 한화의 전환기적 딜이 이런 모습인 것은 좀 아쉽지 않나. 게다가 지금은 레고랜드, 흥국생명 사태가 연이어 터지면서 자본시장에 불신이 넓게 퍼져 있다. 신뢰를 시험하기엔 좋지 못한 시기다. 비즈니스에서 이미지 브랜딩이 중요하지 않은 경우는 없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란 말처럼 맞는 소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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