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사회가 선호하는 사외이사 상이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경영과 재무 및 회계, 세무, 법조 분야 전문가를 영입해 이사회를 꾸렸다면 최근 들어서는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 분야 기술 전문가를 기용하고 있다. 특정 기술과 산업 전문가 영입으로 국내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제조업체 중심으로 트랜드가 확산되는 모습이다.
◇ 기계공학·전기공학도 인기…증권사도 신기술 전문가 기용 국내 기업 이사회 최근 변화 트렌드 중 하나는 특정 기술 분야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적극 영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말 기준 코스피 시총 상위 100개 기업 이사회 내 사외이사 448명 면면을 들여다본 결과, 83명의 사외이사가 공학 학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 5명 중 1명이 공학 학위를 최종 학위로 가진 셈이다.
공학 전공자 출신 대부분은 박사 학위를 갖고 있었다. 공학 전공자 83명 중 67명(80.7%)이 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중 41명이 해외에서 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은 대학은 캘리포니아대가 5명으로 가장 많았고 스탠포드대와 MIT대가 각각 4명, 일리노이대와 노스웨스턴대, 아이오와대, 펜실베니아주립대 등이 모두 2명으로 집계됐다.
눈에 띄는 점은 학사 출신 비중이 높다는 것. 공학 전공자 중 학사와 석사 출신 인사는 각각 8명이었다. 사외이사 전체에서 학사 출신 인사가 비중이 극히 작은 점 등을 감안하면 공학 전공자 중 학사 출신 비중은 꽤 높은 편이다. 다만 취득 학위 분야와 무관한 영역에서 커리어를 쌓은 인물이 많아 전문성을 발휘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공학 박사 학위 보유자 중에서는 기계공학 분야에서 학위를 취득한 사외이사가 가장 많았다. 기아의 신현정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와 LG이노텍의 노상도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김현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두산로보틱스는 연세대 전기전자공학 교수를 이사회에 참여시키고 있다.
전기공학 분야 전공자의 경우 대부분 현대제철과 SK하이닉스, LS일렉트릭, SK텔레콤, LG전자 등 제조업체 이사회에 적을 두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스탠포드대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석준희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가 IT 신성장 분야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 석 교수를 지난 3월 이사회 멤버로 신규 영입했다.
◇ 조사 대상 100곳 중 61곳이 공학 학위 취득자 영입 공학 학위 취득자를 영입한 기업은 모두 61곳으로 집계됐다. 조사 대상 기업 중 절반 이상 기업이 공학 학위 취득자를 기용한 것. 가장 적극적으로 기술 전문가를 영입한 곳은 포스코홀딩스다. 박성욱·유영숙·유진녕 사외이사는 해외에서 재료공학과 고분자공학, 생화학 박사를 취득, 전문 분야에서 기업 경영과 고위 공직으로 커리어를 확대했다.
포스코홀딩스가 올해 신규 선임한 박성욱 이사의 경우 카이스트 재료공학 박사 출신으로 SK하이닉스 대표를 역임, 한국공학한림원 이사장과 한국반도체산업협회장 등으로 일했다. 리하이대 고분자공학 박사인 유진녕 이사는 LG화학 기술연구원장과 사장으로 근무했고 오리건주립대 생화학 박사인 유영숙 사외이사는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 밖에 두산로보틱스를 비롯해 삼성E&A, 셀트리온, 엘앤에프, 포스코인터내셔널, 하나금융지주, 하이브, 한국투자금융지주, 한국항공우주산업, 현대제철, KT, LG전자, SK바이오팜,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이 한 명 이상의 공학 학위 보유자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있다. 이중 대부분은 사업 분야와 밀접한 기술 분야 전문가를 기용하고 있다.
바이오 기업의 경우 현직 의사를 적극 영입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셀트리온의 경우 유대현 한양대 의과대 명예교수를 사외이사로 기용하고 있다. 유 교수는 한양대에서 내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물로 한양대 류마티스병원장 등을 역임했다. 유 교수에게 바이오의약품 자문 및 임상 경쟁력 강화에 관한 조언을 기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SK바이오팜은 올초 미국 바이오 기업 미네랄리스 테라퓨틱스 사업책임자(CBO)로 취임한 김민지 박사를 영입하고 있다. 서울대 신경학 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는 김 박사는 아파메드 테라퓨틱스 등 다국적 제약회사 경영진 경험과 컨설팅 회사 사업개발 경험 등을 바탕으로 이사회 역량을 강화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