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때 평소보다 말이 없어지는 건 ‘국룰’인가 싶다. 평소 오디오가 비면 불안감을 느끼는 나조차도 회의 때만큼은 적막감에 익숙해지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 침묵을 견디기가 어려워 몇 마디 말을 꺼내다 보면 괜한 말을 했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침묵은 금(金)이다'라는 격언을 되새겨야 했는데 싶다.
회의 때 말이 없어지는 건 ‘K-직장인’ 특징인 줄 알았는데 기업을 이끌어가는 경영진들이 모인 이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 ‘질문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이어지는 침묵 그리고 짧은 ‘네’라는 대답. 안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이사회도 있다고 한다. 과연 이 얘기가 한 특정 기업의 사례일 뿐일까.
질문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짙은 한국사회에서 선뜻 손을 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르는 게 부끄러워 질문을 숨기고, ‘내 일’이 아니기에 질문을 아끼고, 혹여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조심스러워 질문을 삼킨다.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K-문화' 특성상 나이 차이가 날 경우에는 연장자에게 질문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구색 맞추기로 이사회가 운영되는 자산 2조 미만 상장사들의 경우에는 질문이 더 어려운 구조다. 4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라면 사외이사는 1명만 채우면 된다. 상대적으로 기업을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사외이사가 혼자 질문을 던지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이마저도 사외이사를 지인이나 이해관계자로 섭외한 사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친분으로 섭외된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참석해 사내이사들에게 안건에 대한 질문을 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사회는 기업 의사결정의 핵심이다. 의사결정에 대한 사외이사의 영향력은 기업마다 다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사회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사외이사의 질문이 필요하다.
사외이사가 사내이사보다 회사일을 모르는 건 당연하다. 사내이사를 견제하고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 때로는 숨기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도 질문을 해야한다. '내 일'이 아니라고 하기엔 실제 소송이 걸리면 '사외(社外)'에 있다는 이유로 적당히 넘어갈 수도 없다. 이사회 결정에 대해 사외이사 또한 사내이사만큼의 책임을 져야한다.
질문 없는 회의는 참 빨리 끝난다. 하지만 회의가 끝나고 나면 찝찝함이 남는다. 질문 없는 이사회는 빠르게 끝나겠지만 이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외이사에게 침묵은 '금(禁-금할 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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