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현대백화점그룹 상장 계열사 13곳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중 70%가 미등기 임원으로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사내이사로 이사회에 이름을 올린 이는 4명에 그쳤다. 기업 경영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후방에서 경영진을 조력하는 역할에 초점이 맞춰진 모습이다.
다만 필요에 따라 미등기임원이지만 다른 계열사에 사내이사로 겸직하는 사례도 있었다. 계열사 조력을 위해 이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을 활용하는 모습이다.
작년 9월 말 기준 현대백화점그룹의 상장 계열사 13곳 중 CFO가 각 사 이사회에 참석하는 기업은 지누스·현대리바트·현대바이오랜드·현대에버다임 4곳으로 나타났다.
윤종원 지누스 부사장(CFO), 강민수 경영지원사업부 사업부장(상무), 오영근 현대바이오랜드 경영전략실장(이사), 유재기 현대에버다임 경영지원 영업본부장(전무) 등 각 사의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다.
현대지에프홀딩스와 현대백화점을 비롯한 나머지 계열사들의 CFO는 미등기임원으로 등재됐다. 현대그린푸드, 현대홈쇼핑, 현대퓨처넷, 한섬, 현대이지웰, 대원강업, 삼원강재 등이다.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고 미등기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한다고 볼 수 있다.
4곳의 계열사는 인수합병(M&A)의 역사를 거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M&A 이후 그룹 색을 입히기 위해 모회사 출신 임원을 배치하고 해당 회사 이사회 편입시키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2022년 3월 지누스를 인수하고 곧바로 현대백화점 재무담당으로 CFO를 교체하고 그룹 기획조정본부 임원을 이사회에 대거 투입했. 윤 부사장은 과거 현대백화점 경영지원본부를 경험한 인물로 경영지원본부는 현대백화점에서 CFO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재무, 회계, 내부회계 뿐만 아니라 인사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대리바트는 2012년 2월 현대백화점 그룹에 편입하고, 2014년 리바트에서 현대리바트로 상호를 변경한 곳이다. 현대바이오랜드는 2020년 뷰티 헬스케어 사업 확장을 위해 SK바이오랜드 지분 27.94%와 경영권을 약 1200억원에 인수한 곳이다.
현대에버다임은 현대그린푸드가 2015년 에버다임 지분 45%를 약 940억원에 취득한한 바 있다. 유 전무는 현대그린푸드 재경팀장을 역임한 경험이 있다.
물론 미등기임원이라고 다른 계열사의 이사회에도 참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현대백화점의 재무를 이끄는 민왕일 부사장은 현대백화점에서는 미등기임원이지만, 타 계열사에서는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한무쇼핑과 현대쇼핑에서 사내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감사를 겸직하기도 한다. 민 부사장은 현대백화점면세점에서 감사도 맡고 있다. 법인의 재산이나 이사의 업무집행 상태를 감독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에서는 경영진을 보좌하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룹 내 살림살이를 잘 아는 만큼 계열사 사내이사나 감사 등의 업무를 겸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지에프홀딩스의 김 상무도 미등기임원이지만, 현대그린푸드 사내이사를 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아이티앤이와 현대엘앤씨 감사직도 수행 중이라고 전해진다.
현대그린푸드의 이 전무는 현대지에프홀딩스의 대표이사 겸 사내이사를 맡았으나, 현대백화점그룹이 본격적인 지주사 체제에 돌입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현대지에프홀딩스는 신임 대표이사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과 장호진 전 현대백화점 기획조정본부장 사장을 선임했다.
대원강업의 박대수 전무도 삼원강재와 대원정밀공업 사내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한섬의 유 상무는 한섬라이프앤 감사를 겸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