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공개(IPO) 사례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모집 금액을 뛰어넘는 사례가 나올 수 있을까. 2022년 LG에너지솔루션 별도 현금흐름표에는 재무활동 현금유입액으로 '10조원'이 찍혔다. '역대급' IPO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소는 바로 '타이밍'이었다.
◇EV/EBITDA 모형 선택, 피어기업은 CATL·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은 공모가격 산정 과정에서 EV/EBITDA를 사용했다. 유사회사의 EV/EBITDA 배수를 산출해 회사의 직전 사업연도 EBITDA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시장내 유사 기업의 현금창출력 대비 기업가치(EV)가 얼마나 가는지 알아보고 그 배수를 자사에 적용한다.
EV/EBITDA를 이용한 공모가 산정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는 피어(Peer) 기업의 선정이다. 배터리 셀 제조업만을 영위하던 LG에너지솔루션으로서 피어 기업 선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의 CATL과 국내 삼성SDI를 피어 기업으로 삼았다. 두 기업 모두 이차전지 제조업을 영위하고 있었고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유의미한 수준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양 사 모두 전지 매출 비중이 50% 이상인 회사였다.
또 두 기업은 100억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이었고, CAPEX 집행을 위해 자체 조달을 할 수 있어 LG에너지솔루션과 재무적 유사성도 컸다.
◇초저금리 기조에 배터리 장밋빛 전망 가득했던 시장
LG에너지솔루션이 IPO를 추진했던 2021년 말에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아직 제로 금리에 수렴하는 초저금리 기조였다. 그리고 LG에너지솔루션이 증시에 들어선 2022년에 미국은 기준 금리를 4%까지 단기간에 '확' 끌어올렸다. 금리 급상승으로 시장에 불확실성이 들어서면서 투심도 그만큼 약해졌었다. 다시 말하면 LG에너지솔루션은 저금리 시대의 '막차'를 탄 셈이었다.
더구나 당시에는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이라는 단어도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친환경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전기차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던 시절이었고, 중국 CATL과 LG화학, SK온 등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들은 앞다퉈 완성차 업체들과 합작하고 시설투자에 목을 맸다.
주가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 주가는 LG에너지솔루션의 '역대급' IPO에 결정적인 요소였다. LG에너지솔루션은 CATL과 삼성SDI의 기준시가총액을 산정하기 위해 2021년 11월 1일부터 30일까지의 양 사(삼성SDI의 경우 보통주와 우선주 모두 산정) 주가를 산정해 기준시가총액을 결정했다. 기준주가는 1개월 평균 주가, 1주일 평균 주가, 분석일 주가의 최소값이었다.
이렇게 산정된 양 사의 기준시가총액은 CATL은 282조9329억원, 삼성SDI는 47조3100억원이었다. 참고로 현재 양 사의 시가총액은 CATL의 경우 154조5333억원, 삼성SDI는 22조3000억원이다.
EV 산정을 위해서는 양 사의 기준시가총액에 순차입금과 비지배지분을 더해야 한다. 공모가 산정 당시 시점은 아직 2021년도 연간 결산 실적이 나오지 않았던 상황. 이에 LG에너지솔루션은 양 사의 2021년 3분기 말 기준 재무지표를 이용했다.
2021년 3분기 말 기준 CATL과 삼성SDI의 순차입금은 각각 1조5227억원과 2조2652억원이었다. 비지배지분의 경우 CATL은 1조3987억원, 삼성SDI는 4419억원이었다. 이를 고려한 EV는 CATL은 285조8543억원, 삼성SDI는 50조5526억원이었다.
EBITDA는 2021년 3분기까지의 실적을 연 환산해 구했다. CATL과 삼성SDI의 연 환산 EBITDA는 각각 3조5428억원, 2조2943억원이었다. 실제 삼성SDI의 2021년 EBITDA는 2조3197억원으로 연 환산 수치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다. 이를 통해 산정된 적용 EV/EBITDA 거래배수는 '51.4배'가 나왔다.
◇할인율 50% 가까이 적용, 주문 규모만 1.5'경'
이제 LG에너지솔루션 공모가액을 본격적으로 구할 차례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의 3분기 누적 EBITDA는 1조7381억원. 연 환산하면 2조3175억원이 나온다. 통상의 경우라면 이 수치에 51.4배를 곱하면 되지만 당해 LG에너지솔루션은 회사 안팎으로 영업 관련 이슈가 있었다.
우선 SK이노베이션과의 배터리 기술 관련 지적재산권 분쟁에서 승소해 약 1조원의 일회성 이익이 유입됐던 시기다. 또 당해에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리콜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볼트EV의 리콜 충당금으로 1조1416억원이 잡혀 있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 수익과 비용을 고려해 조정 EBITDA로 2조5167억원을 산정했다.
다만 조정 EBITDA로 계산할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의 기업가치가 더욱 커졌기 때문에 LG에너지솔루션은 조정 EBITDA 대신 일회성 수익·비용을 가산하지 않은 기존 EBITDA를 이용해 기업가치를 구했다. 통상의 경우로 진행했다는 뜻이다.
연 환산 EBITDA 2조3175억원에 51.4배를 곱하면 EV로 119조256억원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순차입금 5조5760억원과 비지배지분 1조2434억원을 빼면 최종 평가 시가총액으로 112조2063억원이 나온다. 이 값에 상장예정주식인 2억3400만주를 나누면 1주당 평가가액으로 47만5914원이 산출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평가가액에 46.4%~37.4%의 할인율을 적용했다. 당시 5개년 코스피 상장 기업 평가액 대비 할인율 평균은 33.2%~22.7%로 LG에너지솔루션은 당시 시장 평균 할인율 대비 훨씬 높은 할인율을 적용했다. 이렇게 결정된 희망 공모가액 밴드는 25만7000원~30만원이었고, 최종 공모가액은 최상단인 30만원이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수요 예측 결과 전체 주문 규모는 1경5203조원, 국내외 기관 총 1988개 기관이 참여했다. 경쟁률은 2023대 1이었다. 코스피 시장의 IPO 수요예측 역사상 최고 경쟁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