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유동성 풍향계

두산로보틱스, 현금 소진 가속…사업 재편 필요성 부각

1년 만에 1270억 유출, 적자는 지속 확대…두산밥캣 자회사 편입 시급

이호준 기자  2024-11-08 13:30:29

편집자주

유동성은 기업 재무 전략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유동성 진단 없이 투자·조달·상환 전략을 설명할 수 없다. 재무 전략에 맞춰 현금 유출과 유입을 조절해 유동성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THE CFO가 유동성과 현금흐름을 중심으로 기업의 전략을 살펴본다.
두산로보틱스의 곳간은 성장 기업이 투자를 확대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주머니로 들어오는 돈은 아직 없지만, 각종 투자로 인해 나가는 돈이 많아 현금이 매 분기마다 빠르게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실제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3분기 기업공개(IPO)를 단행한 뒤 매년 현금 유출 폭을 키우고 있다. 당시 회사는 약 4212억원의 공모 자금을 확보해, 기존엔 74억원에 불과했던 연결 기준 현금성자산이 4126억원으로 대폭 증가한 바 있다.

그러나 두산로보틱스는 최근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보유 현금성자산이 2942억원이라고 밝혔다. 불과 1년 만에 1270억원의 현금을 사용한 것으로 매 분기 약 300억원 이상의 현금이 유출되는 상황이다. 이 현금 유출 속도가 유지된다면 향후 3년 내에 자금이 모두 소진될 가능성도 높다.

두산로보틱스의 경우 수입에는 큰 변동이 없었기 때문에 현금 유출 폭이 더욱 커져서다. IPO 이후 최근 분기 실적을 보면 2023년 4분기 -30억원, 2024년 1분기 -68억원, 2분기 -78억원, 3분기 -96억원으로 꾸준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수익성 개선이 더딘 상황에서 대규모 자금 유출이 지속될 경우 추가적인 자금 확보가 불가피할 수 있다.

물론 두산로보틱스는 부채비율이 4.5%에 불과해 재무적으로 탄탄하다. 차입이라는 선택지가 있다. 다만 연간 현금 유출 규모가 1200억원대에 달하는 점을 보면 수년 내에 현금이 모두 소진될 수 있다. 자금 확보 방안 마련이 시급한 셈이다.

(단위:백만원. 출처: 두산로보틱스)

일단 앞으로도 당분간 두산로보틱스의 곳간은 빠르게 비어갈 가능성이 높다. 향후 몇 년 동안은 대규모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두산로보틱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회사의 현재 연간 협동로봇 생산능력(CAPA)은 3200대 수준이다. 이 중 자체 생산이 2200대, 외주 생산이 1000대를 차지한다. 늘어나는 판매량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시설을 확충해 나갈 계획인데 설비 자동화 등에만 향후 3년간 매년 평균 1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기존 보유 설비에 대한 투자를 제외하고,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에 법인을 넘어 생산거점도 확보할 계획이다. 이 신규 생산거점에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할 전망이다. 두산로보틱스는 IPO 당시 투자 계획을 밝혔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타법인 투자'를 꼽았다.

타법인 투자는 외부 기업 인수나 지분 투자를 뜻한다. 자율이동로봇(AMR) 및 기타 기술기업 인수, 스마트팩토리 파트너십 등에 225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현재 두산로보틱스는 AMR 기술이 없지만 유망 로봇 기업 인수로 시장에 뛰어들 경우 초기 시장에서 선점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연구개발(R&D) 역시 중요한 투자 영역이다. 현재 수원과 분당사업장에서 임차 형식으로 연구 활동을 진행 중인 두산로보틱스는 별도의 연구소 설립을 계획 중이다. 이를 위해 20명의 R&D 인력을 추가 채용할 예정이다. 현재 200명인 임직원 규모도 2026년까지 4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두산로보틱스 P시리즈 이미지. 출처:두산로보틱스)

돈 들어갈 곳은 산더미인데, 올해 3분기 영업손실(-96억원)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특히 3분기 매출(100억원)은 전분기 대비 30%, 전년 동기 대비 20%나 감소했다. 글로벌 고금리 지속과 제조업 경기 불확실성으로 시장 수요가 회복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두산로보틱스로서는 하루 빨리 사업구조 재편이 필요한 상황으로 보인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지난달 각각 이사회를 열고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회사와 두산밥캣 지분(46.1%) 보유 신설 법인으로 인적 분할한 뒤, 신설 법인의 지분을 두산로보틱스에 합병하는 안건을 처리했다.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내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두려는 사업 재편이 추진되는 셈이다.

이 경우 두산로보틱스는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효자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두게 돼 재무 안정성이 크게 강화될 수 있다. 성장 초기 단계에서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확실한 기반을 확보하는 셈이다.

현재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안은 금융감독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지난달 30일에 6번째 정정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는 지난 7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한 이후 3개월이 넘은 시점으로 이미 6번째 정정신고서에 해당한다.

두산로보틱스 관계자는 "신제품 개발과 유럽지사 설립 등에 따른 비용이 증가했다"라며 "글로벌 시장 부진에도 북미 수요는 견조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