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는 곧 기업집단의 정체성이다. 지배구조는 큰 틀에서 기업활동의 동기가 되며 크고 작은 재무적 결정의 배경이 된다. 특히 '재벌'로 불리는 국내 오너 기업집단 문화에서 오너 1인, 혹은 가문을 위한 지배구조 확립 과정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THE CFO는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 변화 과정을 리뷰하며 기업이 뒀던 지배구조의 '한수'들을 되짚어본다. 이어 다양한 이유로 지배구조 개편이 유력한 기업집단에 대해서도 변화를 전망해본다.
이종산업 간 통합을 추진하는 OCI그룹과 한미그룹의 교집합은 '상속세'다. 한미가 OCI와의 통합을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인 상속세 납부는 몇 년 전 OCI그룹도 똑같이 고민하던 주제였다.
OCI의 선대 회장인 고(故) 이수영 전 회장의 별세 이후 지분을 상속받은 이우현 OCI 회장 일가는 2018년 상속받은 지분 일부를 매도했다. 이 회장은 25만7466주, 이 회장의 어머니인 김경자 송암문화재단 이사장과 여동생인 이지현 OCI미술관 관장도 각각 29만655주, 33만392주를 팔았다. 약 2000억원 수준으로 거론됐던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감행해야 한 지분 매도였다.
한미그룹과의 통합을 위해 주고 받을 것을 계량하는 OCI 입장에서는 한미그룹의 '니즈'인 상속세 해결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던 대목이다.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통합 이후에는 상속세 이슈가 사라진다고 밝혔다.
물론 통합에 OCI가 합의한 이유는 OCI 입장에서도 얻는 이득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OCI홀딩스 지배력에 도움을 주는 '우호 지분' 확보다. 지분 상속 과정에서 OCI 오너 일가는 최상위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일부 상실했고 인적 분할과 현물 출자 등 지주사 전환 작업을 통해서야 이전의 지분율을 회복했다. 다만 여전히 OCI홀딩스에 대한 이우현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30% 미만이다.
OCI그룹-한미그룹의 통합은 세 단계로 요약된다. OCI홀딩스는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가현문화재단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 744만674주를 인수한다. 또 송 회장과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은 OCI홀딩스에 본인들의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현물출자하고 OCI홀딩스의 신주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 유상증자에 참여해 한미사이언스의 지분율을 확보한다.
이 작업들이 모두 완료하면 송 회장과 임 사장은 OCI홀딩스의 지분율을 각각 8.62%, 1.75% 확보한다. 약 10%포인트의 우호 지분이 생기는 셈이다.
반대로 이우현 회장의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3%를 확보해 최대주주에 오른다. 국내 의약품시장의 메인 플레이어인 한미그룹을 통합 작업 '한 방'으로 품을 수 있는 셈이다.
OCI그룹은 평소에도 바이오 산업에 관한 관심을 이어왔다. 2022년 1461억원을 들여 부광약품 지분을 인수하는 등 바이오 산업을 그룹의 신사업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품으면 OCI그룹은 홀딩스 산하에 있는 OCI(화학), OCIM(태양광 폴리실리콘), DCRE(도시개발) 등 자회사들에 바이오 사업군의 '핵'으로 한미사이언스를 추가할 수 있는 셈이다.
이번 딜로 이우현 회장의 '1인 체제'도 확고해졌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우현 회장과 두 작은 아버지인 이복영 SGC그룹 회장과 이화영 유니드 회장은 OCI홀딩스의 지분을 비슷한 수준으로 보유하고 있다. 1대 주주는 이화영 회장이다.
장자 경영과 형제 간 분리 경영이 확고한 OCI그룹이기에 분쟁 가능성은 거의 거론되지 않지만 이우현 회장 입장에서는 OCI홀딩스에 대한 확고한 지배력을 갖추는 것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한미약품 오너들이 OCI홀딩스 주주 명부에 포함되는 사안은 OCI그룹 오너 일가에도 희소식이지만 이우현 회장 개인에게도 나쁘지 않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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