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CNS 재무를 총괄하던 박지환 전무가 LG이노텍으로 이동한다. LG CNS는 기업공개(IPO) 숙제를 제외하면 재무적으로 별다른 이슈가 없는 곳이다. 주고객이 그룹 계열사들이니 수요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다 투자부담도 가볍다.
2년 새 3조원에 육박하는 시설투자를 집행한 LG이노텍과 대조된다. LG이노텍은 고객처 하나의 수요 변화로 실적이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다는 점에서도 LG CNS와 정반대의 특성을 가졌다.
시스템통합(SI)업체로 불리는 대기업 IT서비스 회사들은 비슷한 공통점을 나타낸다. 일감을 계열 내부에서 주로 따내며 오너일가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상당한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다. 보안상 이유에 따라 재벌그룹들이 IT서비스 수요를 인하우스(In-house)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LG CNS 역시 작년 말 매출의 60% 이상이 특수관계자와의 거래에서 발생했다. LG전자, LG화학, LG유플러스 등 그룹 계열사들 뿐 아니라 아니라 LS, LIG처럼 LG에서 분가한 옛 LG 계열들과도 거래관계를 맺고 있다. 사업구조상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고 CAPEX(자본적지출)도 연간 수백억원 수준에 그친다. 5조원에 육박하는 연매출 규모와 비교하면 약소한 투자부담이다.
CFO 입장에서 크게 조달을 걱정해야할 회사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LG CNS는 최근 차입이 늘어나긴 했지만 8000억원을 넘는 현금성자산을 보유했기 때문에 올 9월 말 연결기준 순차입금이 630억원 뿐이다. 거래처들의 투자가 4분기에 집중되는 특성상 운전자본 변동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CFO가 재무안정성을 크게 걱정해야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박 전무가 새로 부임한 LG이노텍은 사정이 다르다. LG이노텍은 애플에 대한 의존도가 강점이자 약점으로 꼽힌다. 카메라모듈을 공급하는 LG이노텍 광학솔루션사업부는 사실상 애플을 단일고객사로 두고 있다. 작년 말 LG이노텍 전체 매출의 약 80% 이상은 애플과의 거래로 벌어들였다. 프리미엄 아이폰 판매가 늘면서 지난해 실적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문제는 애플 아이폰의 신규모델 출시 시기, 판매성과에 따라 현금 흐름과 투자부담이 크게 좌우된다는 점이다. 올 상반기엔 광학솔루션사업부의 영업이익이 757억원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1.8% 줄었다. 아이폰 14 시리즈가 생산 차질을 빚고 흥행에 실패하면서 카메라 모듈 생산이 감소했던 탓이다. 3분기의 경우 아이폰 15 시리즈의 초기 양산 일정이 늦어지면서 부진이 이어졌다.
LG이노텍은 투자 부담에 있어서도 변동폭이 크다. 기술변화가 빠른 전방산업의 수요를 채우기 위해서다. 지난해 약 1조원을 광학솔루션사업부 신규시설 투자에 지출했고 올해도 추가로 1조6560억원을 카메라 모듈 생산라인 확대에 쓴다. 9월 말 기준 1조1370억원을 집행했으며 약 5000억원의 투자가 더 남아 있다. 아이폰15 시리즈 중에서 프로·프로맥스의 카메라 사양 변화를 맞추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투자부담 확대에 따라 LG이노텍은 잉여현금흐름이 2년째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3547억, 올해 9월 말 기준으로는 -5469억원을 기록했다. 남는 현금이 모자란 만큼 차입도 늘었는데, 2021년 1조5000억원 수준이었던 연결 총차입금이 올해 9월 말 2조8889억원으로 급증했다. 그간 쌓아둔 현금 덕분에 순차입금은 약 1조7000억원, EBITDA 대비 순차입금은 1.4배로 양호한 수준이지만 2년 만에 차입규모가 거의 2배로 점프했다.
박 전무로선 상대적으로 정적이던 LG CNS에서 들쑥날쑥한 현금흐름 관리, 투자자금 조달에 분주한 계열사로 이동한 셈이다. 차입이 확대된 만큼 추후 리파이낸싱과 만기관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무는 1970년생으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 LG그룹이 글로벌 CFO 육성을 위해 보스턴대 경영대학원과 개설한 CFO 양성과정도 수료했다. 지주사 LG의 경영관리팀 부장을 거쳐 2019년 그룹 내 광고지주회사인 지투알에서 CFO(상무)에 올랐다. 이듬해인 2020년 LG CNS의 CFO로 이동해 4년 가까이 일했고 이달 23일 LG그룹 인사에 따라 LG이노텍 CFO로 발령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