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 드립 커피를 내리는 과정에는 '블루밍(blooming)'이 있다. 커피 원두는 로스팅을 거치면서 이산화탄소 등을 머금는 데 블루밍은 이러한 가스를 배출하는 작업이다. 커피의 풍미를 살리기 위한 것으로 물의 온도와 양, 줄기 등의 조절이 중요하다.
가스를 제거하는 까닭은 원두 가루와 물의 접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다. 로스팅이 잘된 원두라도 물과의 배합이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균일하게 커피를 추출할 수 없다. 블루밍은 원두의 특성 등이 고스란히 담긴 커피를 위한 일종의 준비 단계인 셈이다.
이러한 블루밍은 신세계그룹이 향후 추진할 경영 계획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커피 본연의 맛을 재현하는 데 불필요한 가스를 제거하듯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내실 강화에 집중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과거 지마켓 인수와 같은 대규모 M&A(인수·합병)의 여파로 유동성 확보 등이 중요해진 만큼 굵직한 방향성은 그룹 내 재무건전성 제고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자산 관리와 효율화, 비용 통제 등을 위해 그룹 내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도 확대될 것으로 풀이된다.
신세계그룹의 이러한 의지는 최근 단행된 '2024년도 정기 임원 인사'에서 짙게 묻어났다. 주요 계열사 신세계를 비롯해 신세계푸드, 신세계건설, 신세계프라퍼티 등의 CFO가 교체됐다. 상장사 기준으로는 절반가량이 새로운 재무수장을 맞이하기도 했다.
이마트의 경우 CFO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신임 최고경영자(CEO)를 그룹 내 재무전문가 한채양 대표로 중용했다. 한 대표는 신세계그룹 전략실에서 관리총괄(현 재무본부) 부사장 등을 지내며 관련 부문의 전문성 만큼은 입증된 인사다.
한 대표와 더불어 박주형 신세계 대표가 재무통이라는 대목 역시 신세계그룹의 재무관리 역량 강화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다. 신세계그룹의 경우 신세계와 이마트가 그룹의 방향성을 주도한다. 계열사별로 경영 체계를 구축하고는 있지만 신세계 등이 만드는 기류를 큰 틀에서는 따르는 형태다. 이를 고려하면 신세계 등의 대표를 재무라인 출신으로 채운 것은 그룹 재무관리 역량을 직간접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포석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블루밍에서는 이를 컨트롤하는 바리스타의 역할이 중요하다. 원두의 상태에 따라 물의 양과 줄기 등을 미세하게 조절해야 풍미 가득한 커피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신세계그룹의 CFO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발행시장과 업황, 사업계획 등의 변화를 기민하게 감지해야 완성도 높은 재무전략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바리스타가 블루밍을 통해 커피의 향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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