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THE CFO가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신세계그룹은 수년 전부터 전문성과 성과, 외부전문가 영입 등을 임원 인사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룹 내외부 인사를 활용해 조직의 탄력성을 높이는 동시에 신사업 진출 등을 위한 토대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는 최근 단행된 '2024년 정기 임원 인사'에도 반영됐다. 대표이사의 약 40%가 교체됐고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임원을 중용했다. 최고경영자(CEO)와 같은 C레벨에 속하는 최고재무책임자(CFO)에도 변화를 준 게 특징이다. 다만 재무라인의 경우 안살림은 내부인사에게 맡기는 기존 기조는 여전히 공고했다.
◇재무라인은 내부인사 선호
신세계그룹의 경우 CFO 또는 그 역할을 재무관리본부장과 지원본부장, 재무담당 등이 책임지는 구조다. 주로 재무와 회계, 기획 등의 분야에서 활동한 인사를 중용한다. 이러한 인사 기조는 2023년 반기 기준으로 국내 52개 계열사 중 상장사로 분류되는 7개 기업을 통해 일정 수준 가늠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은 신세계를 비롯해 이마트와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푸드, 신세계아이앤씨, 신세계건설, 광주신세계 등이다. 주로 전무와 상무급 인사가 회사의 곳간을 책임지고 있다. 담당업무는 재무관리본부장과 재무담당, 지원담당 등으로 구분되지만 실질적인 역할은 유사하다.
7개 상장사의 전현직 재무수장에서 눈에 띄는 점은 내부 출신 인사를 선호한다는 대목이다. 최근 10년간의 이력을 되짚어보면 대부분이 신세계 등 그룹 내 계열사 출신이 중용됐다.
최근 이뤄진 2024년 인사를 기준으로도 7명 중 5명이 내부 출신 인사에 속했다. 이번 인사에서 7명 중 절반 수준인 3명이 새 수장으로 교체된 가운데 외부출신 CFO는 홍승오 신세계 재무관리본부장 전무와 서용린 신세계아이앤씨 재무담당 2명뿐이었다.
내부 인사의 중심에는 신세계와 이마트가 있었다. 신세계 등의 재무 부문을 거친 인사가 각 계열사로 배분되는 구조였다. 두 회사가 신세계그룹의 지배구조와 사업, 경영 등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무수장의 순환 배치는 자연스러운 인사라는 게 업계 평가다.
현직 재무수장 중 신세계 등에 몸담았던 인사는 장규영 이마트 재무담당 상무보와 신상화 신세계인터내셔날 재무담당 상무, 김낙호 신세계건설 지원본부장 전무, 김성웅 신세계푸드 지원담당 상무보 등이다.
광주신세계의 경우 CFO 역할을 책임지는 인사를 자체적으로 소화하고 있었다. 상장사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신세계백화점 광주점' 하나만 운영하고 있는 만큼 조직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재무수장의 직위 역시 임원급 인사가 아닌 부장급 인사가 주를 이루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홍승오 전무 '재무라인 인사' 새바람 될까
2024년 임원 인사에서 신세계 재무관리본부장을 맡게 된 홍 전무는 신세계그룹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더 많은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2021년 백화점부문 기획전략본부 재무기획담당으로 발탁될 당시에도 인수·합병(M&A)에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사로 주목받았다.
홍 전무는 196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분자생물학과 석사를 졸업했고 1993년에 LG화학으로 입사했다. 2001년 런던비즈니스쿨(LBS)에서 MBA를 수료한 후 딜로이트컨설팅 뉴욕사무소와 CJ그룹 회장실 부장,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기획팀 상무, SK쉴더스 CFO 등을 역임했다. 2021년 신세계그룹과 인연을 맺었고 최근 단행된 인사에서 재무관리본부장을 맡게 됐다.
신세계 역시 그의 전문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홍 전무를 사내이사로 추천할 당시 재무와 기획 분야의 전문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당시 신세계는 "재무와 기획 분야의 전문가로서 다양한 회사에서 폭넓게 쌓았던 풍부한 경험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재무구조 안정성과 성장 동력을 발굴할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홍 전무의 상징성은 내부 출신을 선호하는 재무라인의 인사 기조에 중장기적으로는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게 업계 평가다. 수년 동안 조직의 변화와 쇄신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홍 전무가 뚜렷한 성과를 낼 경우 외부 인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세계 내부로 범위를 좁힐 경우 그는 일정 수준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재무조직의 변화가 큰 가운데 최종적으로는 홍 전무에게 곳간을 맡겼기 때문이다. 올 초 신세계는 지원본부를 기획관리본부와 재무본부로 분할했다. 이 과정에서 홍 전무는 기획관리본부장으로 투자 등을 책임지게 됐다. 다만 이달 이뤄진 임원 인사에서 그는 재무관리본부장으로 역할이 바뀌며 회사의 재무를 총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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