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투자를 빼놓고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을 말할 수 없게 됐다. 실제 대기업 다수의 CFO가 전략 수립과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CFO가 기업가치를 수치로 측정하는 업무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상할 게 없다. THE CFO가 CFO의 또 다른 성과지표로 떠오른 투자 포트폴리오 현황과 변화를 기업별로 살펴본다.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로봇, 그리고 도심항공모빌리티(UAM). 현대자동차그룹이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선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분야다. 이 가운데 가장 먼 미래로 평가받는 분야는 UAM이다. 자율주행과 AI로봇은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으나 UAM은 아직 상용화 전 단계다.
특정 기술이 상용화 전 단계라는 건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바꿔 말해 상용화에 성공하기까지 연구개발과 인력 채용 등에 대규모 지출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이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면 추후 인수합병(M&A)으로 관련 기술을 확보하면 된다.
현대차그룹은 과감하게 도전했다. 3년 전 미국 현지에 UAM 전담 법인인 '슈퍼널(Supernal)'을 설립하고 매년 수천억원의 대규모 출자를 지속하고 있다. 직접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확보할 수 있다는 의지다.
◇설립부터 현재까지 3년간 총 1.2조 출자
슈퍼널은 2021년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등 그룹 내 주력 계열사 3곳이 합작해 만들었다. 전신은 2020년 현대차가 단독으로 설립한 '제네시스 모빌리티 에어(Genesis Mobility air)'다. 이를 이듬해 2개 계열사가 추가 참여하는 구조로 바꿨다. 현재 현대차가 44.44%, 기아가 22.22%, 현대모비스가 33.33%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세 계열사는 매년 빠짐없이 슈퍼널에 자본을 공급하고 있다. 설립 당시 총 2497억원을 출자한 데 이어 2022년에는 4379억원, 올해는 4857억원을 추가 출자했다. 3년간 모그룹으로부터 약 1조2000억원을 수혈받았다.
매년 수천억원을 출자하는 이유는 슈퍼널이 아직 현금 창출을 못하기 때문이다. 2021년 77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고 2022년에는 이보다 2배 이상 늘어난 197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나타냈다. 올해 상반기에도 15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보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모습을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유사한 모습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도 매년 현대차그룹으로부터 출자를 받고 있지만 계속해서 순손실을 보이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스팟(4족보행 로봇)'과 '스트레치(물류 로봇)' 등을 상업화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내고 있는 반면 슈퍼널은 매출액이 0원인 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아직은 상업화 측면에서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UAM은 산업화 초기 단계다.
다만 슈퍼널의 재무구조는 준수한 모습이다. 현대차그룹이 순손실보다 큰 규모로 매년 출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유동비율과 부채비율은 각각 760%, 38%다. 전년 대비 유동비율은 2배 이상 향상됐고 부채비율은 3분의 1 가량 줄어들며 개선됐다. 올해 상반기 5000억원에 가까운 출자로 재무구조는 한층 더 나아졌을 것으로 풀이된다. 연구개발비 걱정 없이 선진 기술과 인재 확보에 집중하라는 의미다.
◇신재원 슈퍼널 CEO에 대한 무한신뢰
슈퍼널에 대한 높은 신뢰는 신재원 슈퍼널 최고경영자(CEO·사진)에 대한 그룹의 신뢰로도 확인된다. 신 CEO는 정의선 회장이 수석부회장이던 2019년 9월 영입됐다. 2008년 동양인 최초로 미항공우주국(NASA) 최고위직인 본부장(항공연구총괄본부)에 오른 신 CEO는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항공 분야 전문가다.
현대차그룹은 신 CEO를 신설 조직인 UAM사업부장에 선임했다. 영입 이듬해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시킨 뒤, 2021년 설립한 슈퍼널의 초대 대표이사에 선임했다. 현대차그룹이 UAM에 본격적인 투자를 결정하게 된 배경에 신 CEO가 있는 셈이다. 신 CEO는 올해 미연방항공청(FAA) 소형무인항공기시스템(UAS) 부문에서 근무한 제이 머클(Jay Merkle)을 영입했다. 신 CEO는 미 정부 인사들과도 다양한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슈퍼널의 현재 목표는 '전기동력수직이착륙기(eVTOL)'의 상용화다. eVTOL은 배터리와 모터로 전기동력을 얻는 개인용 비행체다. 배터리와 모터는 전기차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현대차그룹이 eVTOL을 통한 UAM 사업 진출을 택한 건 전기차 분야의 개발 성과를 UAM 분야에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VTOL은 에너지 원천에 따라 순수배터리와 하이브리드, 수소전기 등으로 움직이는 비행체로 구분된다. 현재 전 세계 완성차 업체 가운데 순수배터리와 수소전기 등으로 전기동력을 얻는 기술을 가진 곳은 현대차그룹뿐이다. 현대차그룹 eVTOL의 프로젝트명은 'S-A1'으로 상용화 목표 시점은 2028년이다.
지난 6월 열린 '파리 에어쇼'에서 슈퍼널은 항공기 부품 업체인 GKN 에어로스페이스, 카르본 에어로스페이스, 엄브래그룹(UmbraGroup)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모두 'S-A1'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르면 2024년부터 비행시험을 할 예정이다. 조종사 1명을 제외한 4명의 승객을 태워 한 번에 최대 97km를 비행하는 게 슈퍼널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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