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600억원. 영국 유니레버가 2017년 9월 AHC 브랜드로 유명한 카버코리아 지분 95.39%를 인수하는 데 쏟아부은 금액이다. 앞서 2016년 8월 베인캐피탈-골드만삭스 컨소시엄이 카버코리아 경영권 지분 60.39%를 확보한 그해 당기순이익이 1324억원으로 2015년(358억원)의 3.7배로 뛰어오르면서 성장성에 베팅한 결과다.
유니레버의 부풀었던 꿈은 오래 지나지 않아 꺼졌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국내 화장품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카버코리아의 당기순이익도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600억원대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유니레버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당기순이익을 크게 웃도는 배당금을 가져갔다. 유니레버는 카버코리아 인수금액 일부를 해외 인수금융으로 조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투자금 회수와 인수금융 이자지급 부담이 카버코리아에 온전히 전가됐다.
자본은 기업의 기초체력이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유니레버가 카버코리아로부터 수취한 배당금 합계는 6133억원으로 당기순이익 합계(5198억원)보다 935억원이나 많았다. 이 경우 이익잉여금 감소가 자본총계 감소로 연결되고 결국 기초체력이 저하된다.
2017년말 2096억원이었던 자본총계는 지난해말 1348억원으로 줄었다. 리스부채를 제외하면 무차입 기조를 고수해 부채총계 상승을 일부 통제했지만 부채비율이 45.4%에서 57.3%로 상승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배당금지급으로 현금성자산은 1366억원까지 감소했다.
탄탄한 기초체력은 미래 반등을 위한 디딤돌이다. 자본총계가 지속적으로 줄어들면 향후 업황이 회복되더라도 공격적인 영업 확장이 어렵다. 무차입 기조를 유지하기 어려워지지만 그렇다고 차입을 일으킬 여력도 줄어 결국 영업실적이 정체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
동종업계 선두주자로 꼽히는 아모레퍼시픽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아모레퍼시픽도 코로나19 영향으로 영업실적에 타격을 받았고 리스부채를 제외하면 무차입 기조를 이어오고 있는 점도 카버코리아와 같다.
하지만 배당금지급을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별도 기준 자본총계가 매년 증가해 지난해말 4조8484억원으로 오히려 확대됐다. 부채비율은 8.6%까지 낮아졌으며 현금성자산은 자금소요에도 6228억원으로 선방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애초 그룹 모태로 최대주주가 인수금융을 일으키지는 않았기 때문에 카버코리아의 상황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인수금융 리파이낸싱 등 유니레버가 카버코리아의 배당금지급 부담을 완화해줄 수 있는 재무적 수단은 있다.
카버코리아의 지난해 배당금지급(649억원)이 당기순이익보다 18억원밖에 많지 않아 예년에 비해 자본총계 감소 속도가 줄어든 것은 고무적이다. 코로나19 국면도 지나고 있는 만큼 카버코리아의 반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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