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화장품·생활용품 제조업체 유니레버는 AHC 브랜드로 이름난 국내 화장품 제조업체 카버코리아 경영권을 인수한 직후부터 배당 수취로 투자금 회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인수 이후 영업실적 부진으로 배당금지급이 당기순이익을 웃돌면서 재무건전성 약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유니레버 투자금 회수 총력…배당금지급 당기순이익 상회 유니레버가 2017년 9월 베인캐피탈-골드만삭스 컨소시엄 지분(60.39%)과 설립자 이상록 전 대표 잔여지분(35%)을 합산한 카버코리아 지분 95.39%를 사들이면서 투입한 자금은 당시 국내 화장품업계 인수합병(M&A) 최고가인 3조600억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유니레버가 인수한 이후 코로나19 등 영향으로 카버코리아 영업실적은 큰폭으로 감소했다. 유니레버 피인수 직전인 2016년 카버코리아의 당기순이익은 1324억원으로 역대 최고 성과를 달성했지만 이후 점차 감소했고 코로나19 영향이 본격화된 2020년부터는 600억원대가 지속되고 있다. 당기순이익은 2021년 642억원, 지난해 631억원이었다.
유니레버는 카버코리아 인수자금 3조600억원 중 일부를 해외 인수금융으로 조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수금융을 일으키면 인수기업(유니레버)이 부담할 이자가 발생한다. 인수기업은 에쿼티 투자금 회수와 인수금융 이자 지급을 위해 피인수기업(카버코리아)으로부터 경상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낸다. 현금흐름 창출의 일반적인 방법이 배당을 수취하는 것이다.
실제로 카버코리아가 배당을 개시한 것은 유니레버에 인수된 2017년부터다. 이전에는 배당 사례가 없다. 배당의 재원은 이익잉여금이다. 이익잉여금은 당기순이익 흑자가 발생할 때 쌓인다. 인수 당해인 2017년 1121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문제는 최근 수년간 카버코리아 당기순이익이 유니레버에 인수되기 직전보다 큰폭으로 감소했다는 점이다. 당기순이익 감소는 그만큼 배당여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유니레버로서는 인수 당시 예상보다 카버코리아로부터 발생하는 현금흐름이 줄어든 셈이다.
유니레버는 카버코리아로부터 당기순이익을 웃도는 수준의 배당을 수취하고 있다. 인수 이듬해인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배당금지급이 당기순이익보다 적었던 해는 2021년뿐이다. 마저도 당기순이익 642억원에 배당금지급 632억원으로 차이가 10억원밖에 나지 않았다.
특히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은 배당금지급이 당기순이익을 크게 웃돌았다. 2018년 당기순이익이 1149억원으로 예년에 비해 감소했지만 배당금지급은 1735억원으로 차이가 586억원에 이르렀다. 2019년과 2020년에도 배당금지급이 당기순이익보다 200억원 이상 많았다. 2019년 당기순이익 912억원, 배당금지급 1124억원이었고 2020년에도 당기순이익 630억원, 배당금지급 873억원이었다.
◇자본총계 5년새 749억 감소…무차입 기조에도 재무건전성 약화 최근 수년간 배당금지급이 당기순이익을 웃돌면서 자본총계가 축소되고 있다. 카버코리아는 베인캐피탈-골드만삭스 컨소시엄이 경영권을 인수한 2016년 1324억원의 당기순이익으로 2014년 71억원이나 2015년 358억원 등 예년에 비해 크게 증가하는 이른바 퀀텀점프를 달성해냈다. 이때까지는 배당도 실시하지 않아 당기순이익을 온전히 이익잉여금으로 쌓았다. 2015년말 517억원이었던 자본총계는 2016년말 1841억원으로 뛰어올랐다.
유니레버가 인수한 첫해인 2017년에는 배당을 개시했지만 당기순이익도 양호해 연말 자본총계가 2096억원까지 불었다. 하지만 이후 당기순이익 흑자폭 축소에 당기순이익을 웃도는 배당금지급까지 겹치면서 지난해말 자본총계는 1348억원까지 감소한 상태다. 5년 새 자본총계가 749억원이나 줄어든 것이다.
이 기간 카버코리아 감사보고서상 자본변동표를 보면 자본유출 이벤트는 2017년 최대주주 변경에 따른 일회성 자사주 취득(164억원)을 제외하면 배당금지급밖에 없다. 지난해까지 6년간 배당금지급 총액은 6133억원이다.
최근 수년간 배당금지급으로 이익잉여금은 지속적으로 감소했지만 지난해 자본 과목별 구성을 보면 여전히 851억원이 남아있다. 이익잉여금 외에 자본총계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기타자본구성요소 440억원인데 이는 지속적인 주식선택권 부여에 따른 결과다. 기타자본구성요소에는 주식선택권 부여분(603억원)과 자사주 취득분(-164억원)이 포함돼있다.
카버코리아는 리스부채를 제외하면 무차입 기조를 지속하면서 부채총계 증가를 통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본총계가 감소하면서 2017년말 45.4%였던 부채비율은 지난해말 57.3%로 상승한 상태다. 여전히 부채비율이 100% 이하로 안정적이지만 부채비율 상승은 필요시 차입여력을 축소시킬 수 있다.
배당은 현금으로 지급하기 때문에 현금성자산 변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2017년말 2253억원이었던 현금성자산은 지난해말 1366억원으로 줄었다. 5년 새 887억원 감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