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자금이 움직이는 M&A는 매도자를 단번에 거부로 만들기도 한다. 평생을 일군 사업이나 가업을 매각하고 제2의 인생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세간의 관심은 이러한 거부들이 자신들의 돈을 어떻게 운용할 지에 자연스럽게 집중된다. 더벨은 최근 M&A를 통해 거부로 올라선 이들의 근황과 자금운용 전략을 살펴본다.
기업 매각으로 현금 거부 반열에 오른 대표적 인물을 꼽으라면 카버코리아 창업주인 이상록 회장이 빠질 수 없다. 이 회장은 화장품 브랜드 AHC로 유명한 화장품 제조업체 카버코리아를 1999년 설립해 십 수 년 만에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과 비등한 수준으로 키워냈다.
기업가치가 고공행진할 무렵인 2016년 베인케피탈과 골드만삭스 컨소시엄에 지분 35%를 2500억원에 처분했다. 남은 지분 35%는 2017년 글로벌 생활용품 업체 유니레버에 매각해 1조원에 달하는 거금을 손에 쥐었다.
매각 직후 이 회장은 다양한 투자 분야로 운신의 폭을 넓혔다. 창업부터 인수합병(M&A), 벤처투자, 부동산 거래까지 다방면으로 공격적 투자를 단행하면서 부를 증식하는 동시에 제2의 창업 성공 신화를 써내려가는 모양새다.
◇대규모 실탄 엔터·콘텐츠에 투입, 기업가치 ‘1조’ 유니콘 배출
이 회장이 카버코리아 매각으로 쥔 현금을 가장 먼저 투자한 분야는 엔터테인먼트다. 2016년 음반제작 및 유통, 연예인 매니지먼트 업체 세번걸이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며 엔터 시장에 발을 들였다. 2018년에는 본인이 지분 100%를 보유한 패밀리오피스 스탠더스(옛 너브)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스탠더스는 자체 자금을 활용한 자기자본 투자 전문 기업으로 성장 잠재력이 뛰어난 국내 기업에 전략적, 재무적 투자를 단행하고자 설립됐다. 이 회장은 M&A 전문가를 비롯해 법무, 재무, 세무, IT, 부동산까지 각 분야 투자 운용 인력을 뽑아 직·간접적 투자를 위한 창구로 스탠더스를 키웠다.
일례로 스탠더스를 통해 2018년 영화제작사 ‘비에이엔터테인먼트’의 지분 23.41%를 인수해 3대 주주에 올랐다. 비에이엔터테인먼트는 ‘최종병기 활’, ‘내가 살인범이다’, ‘터널', '범죄도시' 등을 제작한 스타 프로듀서 장원석 대표가 이끄는 영화 제작사다. 현재는 보유 지분을 모두 정리한 상태다. 이외에도 2018년 투자배급사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도 만드는 등 영화 제작 및 배급으로 영역을 키워나갔다.
차세대 콘텐츠 시장의 핵심 키워드인 메타버스에도 주목했다. 2021년 스탠더스 자회사로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을 설립했다. 시각특수효과(VFX)를 활용한 3D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력을 바탕으로 메타버스 콘텐츠를 제작하는 스타트업이다. 버추얼 프로덕션은 현실 세계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가상 배경을 실시간으로 병합해 촬영하는 기법을 말한다.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은 성장 기대감에 힘입어 설립 5개월 만인 2021년 8월 LG전자와 NHN, 펄어비스, 컴투스, JTBC스튜디오 등으로부터 총 100억원을 유치했다. 작년 3월에는 제작 역량과 독보적 입지,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아 사모펀드(PEF) 운용사 파라투스인베스트먼트로부터 100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시리즈A 라운드 당시 기업가치는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투자자들의 ‘러브콜’이 쏟아지는 배경에는 독보적 입지가 깔려 있다.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은 여러 콘텐츠 관련 기업들을 설립 및 인수하며 단숨에 국내 톱티어급 메타버스 업체로 거듭났다. 실제 △버츄얼 프로덕션 ‘브이에이코퍼레이션’ △VFX ‘브이에이스튜디오’ △영화 투자·배급 ‘에이스메이커’ △메타버스 콘텐츠 기업 ‘루트엠엔씨’ △공연 콘텐츠 제작 ‘앰버린’ △영화·드라마 제작 '사람엔터테인먼트' △연예인 매니지먼트 및 영화·드라마 제작 ‘앤드마크’ △모션그래픽 제작 '코스믹레이' △브랜딩 디자인 전문회사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이 회장의 메타버스 투자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브이에이코퍼레이션과 그 자회사 브이에이스튜디오를 합병하면서 메타버스 관련 밸류체인 전반을 확보했다. 본래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은 버츄얼 프로덕션 제작과정에서 일부 콘텐츠 제작만 담당하고, 브이에이스튜디오가 VFX에 CG를 넣는 후반 작업을 맡았다.
이를 합쳐 제작 전체 과정에서 더욱 고도화된 원스톱 크리에이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으로, 국내에서 해외까지 시장을 확대하고 매출도 끌어올린다는 청사진이다. 볼륨을 크게 확장한 만큼 곧 외부 자금 유치를 위해 자본시장의 문을 두드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벤처투자부터 컨슈머, 부동산까지 전방위적 사업 확장
또 다른 주요 투자처는 벤처기업이다. 이 회장이 스탠더스를 통해 직접 투자하거나, 로그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성장성 있는 벤처기업에 수십억원부터 수백억원까지 자금을 투입해왔다. 로그인베스트먼트는 2018년 말 스탠더스 자회사로 출범한 벤처캐피탈이다. 로그인베스트먼트는 올 상반기 기준 바이오, IT, 게임, 소비재 등의 분야를 주축으로 누적으로 총 48건 이상의 투자를 진행했다. 대표 포트폴리오는 하이브, SCM생명과학, 크래프톤, 맥스트 등이다.
컨슈머 사업에도 진출했다. 마스크 브랜드 '에티카'로 알려진 패션 마스크 제조사 ‘필트’, 데일리 더마 브랜드 'BRTC(비알티씨)'를 운영하는 화장품 전문기업 ‘아미코스메틱’ 등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부동산은 이 회장이 카버코리아 매각 직후부터 활발하게 자금을 집행했던 투자처다. 서울 강남 노른자위에 위치한 수백억원대 중대형 빌딩을 싹쓸이하면서 업계 눈길을 끌었다. 일례로 2017년 11월 도산대로50길 21(논현동 99)에 있는 토지와 건물을 115억원에 샀다. 2018년 2월 신사역 인근에 있는 논현동 광명빌딩을 780억원에 매입했고, 같은 해 5월 삼성로133길 17(청담동 46-17)에 소재한 토지와 건물을 215억원에 사들였다. 또 2019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의 물류창고를 93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규모 엑시트 행보가 눈에 띈다. 2018년 매입한 강남구 신사동 629-34 제네시스 빌딩을 최근 곽동신 한미반도체 대표에게 매각했다. 매각가는 975억원에 달한다. 투자 영역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발을 넓히는 이 회장의 행보에 자본시장 주요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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