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C 브랜드로 유명한 국내 화장품 제조업체 카버코리아는 현금성자산이 5년 만에 887억원 감소했다. 코로나19 이후 영업실적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가운데 최대주주에 대한 배당급지급 부담이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자본적지출(Capex)을 줄이는 방법으로 현금성자산 감소에 대응하고 있지만 효과는 여전히 미지수다.
◇최대주주 배당금지급 부담 지속…재무건전성 안정권 유지 사활 카버코리아 자본총계는 2017년말 2096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꾸준히 감소해왔다. 지난해말 1348억원으로 5년 만에 749억원 감소한 것이다. 자본총계 감소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코로나19 영향으로 영업실적이 부진했다. 당기순이익 흑자가 이익잉여금으로 쌓이면 자본총계도 늘어나지만 2016년 1324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던 당기순이익은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600억원대에 머물렀다.
또다른 이유는 최대주주인 영국 화장품·생활용품 제조업체 유니레버의 배당금수취다. 유니레버는 2017년 9월 베인캐피탈-골드만삭스 컨소시엄 경영권 지분 60.39%와 창립자인 이상록 전 대표의 잔여지분 35%를 합산한 카버코리아 지분 95.39%를 3조600억원에 사들였다. 카버코리아의 배당금지급이 시작된 것도 2017년부터다. 유니레버의 카버코리아 투자금 회수 정책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배당금지급이 당기순이익을 웃돌면서 자본총계 감소를 부채질했다. 배당금지급을 시작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합산 배당금지급은 6133억원이다. 반면 이 기간 합산 당기순이익은 5198억원에 그쳤다. 배당금지급이 당기순이익보다 935억원 더 많은 것이다.
다만 자본총계 감소에도 부채비율은 여전히 100%를 큰폭으로 밑돌고 있다. 2017년말 45.4%로 가장 낮았던 부채비율이 지난해말 57.3%로 소폭 상승했지만 이 기간 자본총계 감소분이 749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부채비율 상승분 11.9%포인트는 크지 않은 편이다.
부채비율 상승을 통제할 수 있었던 데는 무차입 기조를 유지한 것이 주효했다. 카버코리아는 2017년 소액 차입금마저 모두 상환한 이후 지난해말까지 추가 차입금을 일으킨 적이 없다. 차입금 성격의 리스부채(유동·비유동 합산) 155억원이 존재하지만 최근 수년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해왔고 지난해 리스부채에 대한 이자비용도 2억원으로 많지 않다.
이 때문에 2017년말 953억원이었던 부채총계는 지난해말 772억원으로 감소하면서 5년 새 181억원 줄었다. 하지만 이 기간 자본총계가 749억원 더 크게 줄면서 부채비율이 소폭 상승하는 계기가 됐다.
◇자본적지출 10억 안팎 최소화…무차입 기조 유지 원동력 카버코리아가 무차입 기조를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산업 특성상 자본적지출 부담이 비교적 적은 특성도 주효했다. 화장품 제조업체는 화장품 전문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에 생산을 대부분 위탁하기 때문에 설비투자 소요에 대한 부담이 비교적 덜하다.
유니레버가 경영권을 인수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카버코리아의 연평균 자본적지출은 28억원에 불과했다.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영업실적 부진이 본격화된 2020년부터는 자본적지출이 눈에 띄게 줄었다. 2020년 자본적지출은 7억원에 불과했으며 2021년 13억원, 지난해 3억원이었다.
자본적지출과 배당금지급은 현금 형태로 소요되기 때문에 현금성자산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가 흑자인 상황에서 차입금이 없는 데다 자본적지출이 적을 경우 현금성자산이 늘어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2017년말 2253억원이었던 카버코리아의 현금성자산은 지난해말 1366억원으로 5년 만에 887억원 오히려 줄었다. 유니레버의 투자금 회수 목적으로 높은 수준의 배당금지급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합산 배당금지급이 6133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배당금지급에 높은 현금 소요가 있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자본적지출을 줄여 차입금 신규조달 부담을 줄이고 미래 투자를 위해 현금성자산을 쌓는 것은 코로나19 시기를 지나온 국내 화장품 제조업체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아모레퍼시픽의 경우에도 2020년 한때 별도 기준 당기순이익이 1044억원으로 예년에 비해 감소했지만 자본적지출을 1000억원 안팎으로 줄이면서 무차입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이 때문에 현금성자산은 올해 1분기말 6998억원으로 감소폭을 최소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