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회사 포스코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 CFO에 버금가는 재무 요직으로 꼽힌다. 포스코홀딩스가 그룹의 컨트롤타워로 자리하고 있지만 연간 매출만 70조원에 이르는 포스코는 여전히 그룹의 상징이자 근원이다.
지난해 지주사 전환 이후 윤덕일 부사장이 포스코의 첫 CFO로 선임됐을 때 관심을 받은 이유 역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최정우 회장 체제로 들어선 뒤 포스코그룹에서 CFO의 역할이 확대되고 위상도 높아졌던 만큼 윤 부사장을 향한 안팎의 기대 역시 높았다.
그러나 윤 부사장은 선임 1년도 채 되지 않아 포스코케미칼 CFO로 자리를 옮겼다. 업계 해석은 분분하다. 포스코케미칼의 성장성 등을 볼 때 중책을 맡겼다는 시각도 있지만 사실상 역할이 축소됐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좌천이냐 영전이냐 엇갈리는 해석포스코케미칼은 현재 포스코그룹에서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곳으로 꼽힌다. 산적한 과제도 많아 '믿을맨'이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포스코케미칼은 지난해 7월 GM과 합작해 설립한 얼티엄캠의 북미 전구체 생산공장 건설에 이어 유럽 생산기지 마련, 전남 광양 전구체 생산공장 증설 등 당분간 대규모 자금 소요가 불가피하다.
아직 회사의 재무구조가 우수한 편이지만 자금 압박 강도는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할 일이 많은 곳에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연륜이 쌓인 사람을 보냈다는 해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포스코가 그룹의 근간이자 핵심이지만 철강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든 만큼 사실상 포스코홀딩스 기업가치 상승의 절반 이상은 2차전지 몫"이라며 "포스코케미칼은 앞으로 자금 조달이나 CAPEX(자본적 지출), 조달의 다변화 측면 등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 CFO 출신을 선임해 포스코와의 접점을 확대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실제 2차전지 밸류체인에서 포스코는 리튬과 니켈 등 원료 확보를 맡고 있고, 포스코케미칼은 이를 통해 양극재와 음극재를 생산하며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다만 규모나 그룹 내 위상으로 볼 때 포스코케미칼은 포스코와는 아직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포스코의 자산규모는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46조원을 넘는다. 반면 포스코케미칼 자산규모는 4조원대에 그친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윤 부사장의 포스코케미칼 이동은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긴 하지만 보통 큰 곳에서 작은 곳으로 이동한다면 상대적으로 역할이 축소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긴 한다"고 말했다.
윤 부사장은 인사가 났던 날에도 포스코의 외화채(KP·Korean Paper) 발행을 위한 글로벌 NDR(Non-Deal Roadshow)을 다니던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소 갑작스럽게 인사가 이뤄진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전임자의 행보를 봐도 그리 개운하진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포스코케미칼의 공격적인 투자를 성공적으로 뒷받침해 왔던 김주현 전 CFO는 회사를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보통 포스코그룹에서 주력 계열사의 CFO를 맡던 인물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계열사의 대표이사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김 전 CFO에겐 아쉬움이 큰 상황이다.
최 회장이 포스코케미칼 대표이사를 지낸 적이 있다는 점 역시 눈여겨 볼 만하다. 최 회장은 포스코 CFO를 지내면서 당시 권오준 회장, 오인환 사장 등과 공동 대표이사를 맡다가 2018년 2월 포스코케미칼 '대표이사'로 이동했다. 이후 4개월 만에 포스코그룹 회장으로 선임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최 회장뿐만 아니라 전중선 사장 역시 포스코에서 경영전략실장이라는 중책을 지낸 뒤 2017년 포스코강판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이후 1년여 만에 포스코 가치경영센터장으로 복귀하면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같은 사례를 감안할 때 윤덕일 부사장 역시 계열사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CFO보다는 대표이사를 맡은 뒤 다시 복귀해 향후 중책을 맡는 그림이 한층 자연스럽다는 관측이다.
◇숨은 요직 '재무실장' 출신...다음 행선지는?포스코그룹의 재무 라인은 사실상 대부분 '최정우 사람'으로 분류된다. 최 회장이 오랜 기간 그룹에서 재무 관련 요직을 거친 만큼 현재 주요 계열사 CFO 대부분이 과거 그와 직간접적으로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윤덕일 부사장도 예외는 아니다. 윤 부사장은 포스코 재무실장을 거친 정통 재무통이다.
포스코의 재무실장은 가치경영실(가치경영센터) 그늘에 가려진 숨어있는 요직으로 통한다. 우선 최정우 회장이 2006년부터 재무실장을 지냈다. 윤덕일 부사장 이전 2021년부터 재무실장을 지냈던 정경진 전무는 지난해 포스코홀딩스 재무팀장으로 이동했다가 이번 인사를 통해 포스코인터내셔널 트레이딩부문 기획지원본부장으로 이동했다. 사실상 포스코인터내셔널의 CFO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해 포스코에너지를 흡수합병해 포스코에 이어 그룹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이번에 포스코모빌리티솔루션의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된 노민용 전 포스코인터내셔널 경영기획본부장 역시 포스코 재무실장 출신이다. 노민용 전 본부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사장으로 승진하며 포스코모빌리티솔루션의 대표이사에 올랐다. 포스코모빌리티솔루션은 친환경차, UAM(도심환경교통), 드론 등에 사용되는 소재와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로서 포스코그룹이 밀고 있는 친환경 소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회사다.
윤 부사장은 2017년 최정우 회장이 가치경영센터장을 지내던 시절 가치경영센터 산하 재무실장을 지냈다. 윤 부사장은 당시 상무로서 자금 조달 업무에 집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최 회장이 2018년 2월 포스코케미칼로 이동했고 윤 부사장은 2019년 포스코건설로 이동했다.
과거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대 중후반에도 윤 부사장은 당시 재무실장이었던 최정우 회장 아래서 IR팀장, IR그룹 리더 등을 지냈다. 둘 모두 재무 쪽에서도 특히 자금 조달 업무에 정통해 여러 차례 호흡을 맞췄던 것으로 알려진다. 둘의 친분 역시 두터운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같은 학교 출신이기도 하다. 최정우 회장은 부산대 경제학과를, 윤덕일 부사장은 부산대 회계학과를 각각 졸업했다.
시장 관계자는 "최정우 회장이 재무실장 출신으로 기존 재무실장 출신들을 잘 챙기는 편"이라며 "윤 부사장과도 가까운 사이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