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요 상장 기업의 분기보고서엔 이사회 등 회사의 기관에 관한 사항이나 임원 및 직원 등에 관한 정보 공개를 '직전 보고서'로 갈음한다는 안내가 나온다. 2023년 하반기께 특정 항목에 대해 큰 변화가 없으면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에 따라 기재를 생략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 결과다.
요컨대 해당 문구로 보고서 내용을 대체한 기업은 우리 기업의 이사회나 임원 현황은 반기보고서와 크게 변화한 게 없으니 그 전에 작성된 보고서를 참고하라는 것이다. 기후대응이 강조되는 시대에서 전파와 인력 낭비를 막아 환경(E)을 지키려는 의도인진 모르겠다. 어쨌든 IR 담당자들이 크런치 타임에 숨 돌릴 여윳시간은 늘어난 셈이다.
앞서 가이드라인은 기재 생략이 가능하단 조건에 '변동'이 없다는 점을 전제로 달았다. 이 지점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의아한 부분이 있다. 앞서 생략 가능한 범주엔 크게 재무요소를 제외한 여러 항목 즉 △사업의 개요 △이사회 △임·직원 △자회사 등에 관련한 사항을 담았다.
그런데 현재 감독당국의 공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업이 의무 공시해야 하는 부분은 주요자회사와 관련한 변동이나 사외이사의 선·해임 정도뿐이다. 다만 기업은 자산총계 750억원 이상의 주요자회사만으로 꾸려지지 않는다.
이 공시제도를 투자자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현재까진 이사회나 임원의 변동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점이 제시되지 않다보니 지금 제도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석달을 기다려서 불친절한 분기보고서를 받게 된다. 최악의 경우 이사회와 임원과 관련한 온전한 정보를 확인하려면 반기나 사업보고서까지 반년을 기다려야 한다.
더불어 주요 임원의 보직 이동 역시 현행 가이드라인을 통해선 공시해야 할 정보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사회 역시 사외이사가 과반을 채우도록 권장하는 시대정신이 강조되는 것일 뿐, 이사회 안엔 엄연히 사내이사 또는 기타비상무이사가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기업을 위한 배려가 당장의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어떤 기업은 2024년 3분기 보고서가 생략된 그 기간 사내이사이자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바뀌었음에도 공시의무에 해당하지 않아 이를 별도로 기재하지 않았다. 선의로 출발한 제도를 따른 기업을 탓할 수 없는만큼 사명을 밝히진 않는다. 다만 투자자들이 적기에 CFO의 변동을 확인하지 못하게 된 건 사실이다.
미국은 기업의 작성기준일을 획일화하지 않는 대신 8-K(Current report) 즉 회사의 주요 현황이 변동될 때마다 관련 보고서를 제출한다. 국내와 달리 회계연도 결산월이 기업마다 제각각이라 공시 시기를 통일하기보단 각자의 자율에 맡겼다. 그 대신 '보고서를 제출하는 의무와 횟수'를 늘렸다.
이해관계가 복잡해진 현대사회에서 일방통행식 배려는 몰이해, 다른 말로 '꼰대'의 행보다. 적어도 알기 원하는 투자자들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의무 장치는 있어야 배려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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