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생명은 지난해 경영성과가 전년 대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순이익은 소폭 늘었으나 지급여력비율은 눈에 띄게 낮아졌으며 보험계약마진(CSM)도 감소세를 보였다. 이에 임기 만료를 앞둔 여승주 대표이사 부회장(사진)의 거취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여 부회장을 향한 업계의 평가는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한화생명의 성장세가 수치상으로는 정체된 모습이지만 이는 부정적 경영환경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히려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경영 안정화를 위해 여 부회장의 연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경영환경 악화 속 빛난 지표 방어
한화생명에 따르면 여 부회장은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를 끝으로 대표이사 임기가 만료된다. 여 부회장의 연임 여부는 정기주주총회에 앞선 소집공고를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 추가 임기가 주어진다면 2019년 3월 처음 한화생명 대표이사에 오른 뒤 3번째 연임이 된다.
한화생명은 2024년 1~3분기 누적 순이익 5846억원을 거둬 전년 동기보다 1.2% 늘었다. 그러나 보험사 기대수익 지표인 CSM은 작년 3분기 말 9조1298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1.2% 줄었다. 같은 기간 자본적정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K-ICS비율, 킥스비율)은 164.1%로 19.7%p(포인트) 하락했다.
단순 숫자만 놓고 보면 지난해 한화생명의 경영성과가 딱히 긍정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를 여 부회장의 성과 부진이라기보다는 경영환경 변화에 따른 불가항력적 요인 탓이 크다고 본다.
지난해 생명보험업계는 연초부터 미보고발생손해액(IBNR) 준비금 적립기준 변경에 따른 일회성 손실을 안았다. 한화생명의 경우 1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62.7% 급감한 1755억원을 기록했다. 이를 2~3분기에 걸쳐 만회한 성과를 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CSM이 소폭 줄기는 했으나 이는 경쟁 심화로 인한 업계 차원의 신계약 CSM 전환효율 악화 때문으로 파악된다. 삼성생명·교보생명·한화생명 등 생보 '빅3' 가운데 2023년 말 대비 2024년 3분기 말의 CSM 잔액이 늘어난 곳은 삼성생명뿐이다. 같은 기간 교보생명은 3.2%가 줄어 한화생명보다 감소폭이 컸다.
이는 한화생명이 CSM 확보에 유리한 보장성보험의 영업에 교보생명보다 더 집중한 덕분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1~3분기 한화생명은 일반계정 수입보험료 중 보장성보험의 비중이 57.1%로 집계됐다. 이 기간 교보생명은 보장성 비중이 55.3%를 기록했다.
킥스비율의 하락 역시 금리 하락과 보험부채 할인율 인하조치 등 환경 영향의 탓이 크다. 국내 22개 생보사의 경과조치 전 기준 킥스비율 평균은 2023년 말 208.7%에서 지난해 3분기 말 191.2%까지 17.5%p 낮아졌으며 한화생명의 낙폭은 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작년 한화생명은 수치상의 성과가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았으나 이를 여 부회장만의 책임으로 볼 수는 없다"며 "보장성보험 중심의 포트폴리오 전략을 통해 순이익과 CSM을 방어하는 등 더 큰 지표 악화를 방어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보험업 불확실성 대응·오너 경영승계 지원…여 부회장 '역할론'
올해 보험업계는 지난해보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무·저해지보험의 해지율 가정 변경으로 이외 상품의 영업경쟁이 더욱 심화할 공산이 크다. 금리는 하락 기조가 완연한 가운데 보험부채의 최종관찰만기가 20년에서 23년으로 연장되는 등 할인율 인하조치가 더욱 강력해진다.
게다가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에 이은 정국 혼란으로 환율 등 지표의 변동 역시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처럼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한화생명이 베테랑 경영인인 여 부회장의 연임을 통해 경영 안정화를 도모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시선이 나온다.
실적과 별개로 여 부회장은 지난해 3월 인도네시아 손보사 리포손보 지분 인수, 4월 인도네시아 노부은행 지분 인수, 11월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 지분 인수 등 해외 금융사 지분투자를 통해 한화생명의 글로벌 진출을 가속화한 성과도 있다.
한화생명의 글로벌 진출은 오너 3세 김동원 한화생명 최고글로벌책임자(CGO) 사장의 금융계열사 경영권 승계와도 맞닿아 있는 중대사안이다. 업계에서는 여 부회장이 김 사장의 '지원자' 역할을 수행 중인 만큼 단기적인 실적 정체만을 이유로 물러나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는 시선도 힘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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