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은 최근 몇 년 사이 재계에서 가장 바삐 움직이고 있다. 올해는 한동안 두문불출하던 김승연 회장 역시 그간의 침묵을 깨고 공식석상에 자주 등판했다. 결론은 승계로 모인다. 한화생명을 중심에 둔 한화그룹의 금융 계열사 역시 이같은 흐름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화그룹 금융 계열사의 움직임과 그 함의, 향후 전망 등을 짚어봤다.
잊을 만하면 이어진 한화그룹의 사업구조 재편만큼이나 계열사 대표이사 교체 역시 잦았다. 올해만 해도 7월 계열사 3곳, 8월 계열사 7곳의 대표가 교체됐다. 이 중에선 대표에 오른 지 1년 만에 자리에 물러난 인물도 있다.
이런 와중에도 '무풍지대'는 있었다. 바로 한화생명이다. 다른 계열사들이 김동관 체제에 맞춰 젊은 리더십으로 바꾸는 과정을 요란하게 겪었다면 한화생명만큼은 여승주 부회장의 1인 대표 체제가 굳건히 이어지고 있다.
여 부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지만 임기 만료 날짜는 사실상 의미가 없는 것으로 그룹 안팎에선 보고 있다. 결국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의 '홀로서기' 가능성에 따라 여 부회장의 거취가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멘토' 적절히 활용하는 한화그룹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아버지 김종희 창업주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29살의 이른 나이에 총수에 올랐다. 경영수업을 제대로 받을 기회가 없었다. 준비 없이 올라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승계 과정에서는 '연착륙'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가정 교육, 조기 유학, 군복무, 빠른 입사에 이은 고속 승진까지 촘촘한 후계자 플랜이 짜여진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김동원 사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역시 유학과 군복무를 마치고 2014년 당시 20대 후반의 나이로 한화그룹에 입사했다. 승진도 빨랐다. 입사 2년 만에 상무에 올랐다. 현재 직급은 사장이다.
특히 김승연 회장은 '멘토'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한화그룹에는 시대에 따라 지근거리에서 김 회장을 보좌해온 전문경영인들이 있다. 2015년 그룹을 떠난 김연배 전 한화생명 부회장과 올해 고문으로 물러난 금춘수 전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김승연 회장은 회장 취임 초반에는 그룹에 눈에 띄는 2인자를 두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회장으로서 입지가 공고해지고 또 본의 아니게 자리를 장기간 비우게 되면서 자신이 부재한 사이 그룹을 지킨 전문경영인 전반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높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경영수업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김동관 부회장에겐 현재 한화오션 대표를 맡고 있는 김희철 사장이, 김동원 사장에겐 여승주 부회장이 각각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김 사장은 여 부회장이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전략팀장으로 일하던 2014년 한화그룹에 입사해 같은 곳에서 근무했다. 이후 잠시 떨어져있다가 2017년 한화생명에서 재회해 지금까지 한솥밥을 먹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해 여 부회장이 승진하기 전까진 한화생명에 단 2명밖에 없는 사장이었다. 회사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머리를 맞댈 수밖에 없는 위치다. 부회장에 오른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일한 '대표이사' 부회장, 연임 여부는
여 부회장은 2019년 3월부터 한화생명을 이끌고 있다. 올해로 벌써 6년을 꽉 채웠다. 서류상 임기는 내년 초까지다. 다만 과거 전례를 살펴보면 한화생명에서 임기 만료 날짜는 크게 의미가 없다. 실적도 마찬가지로 CEO의 거취에 별다른 영향을 주고 있지 않다.
한화생명에선 실적에 크게 좌지우지하지 않고 적임자가 있으면 믿고 오랫동안 맡기는 인사 기조가 자리잡혀있다. 실제 여 부회장의 전임인 차남규 전 부회장은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한화생명 대표를 지냈다.
결국 여 부회장의 연임 여부는 김동원 사장에게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은 현재 한화생명에서 유일한 사장이다. 김 사장이 사내이사에 오르거나 혹은 여 부회장과 함께 대표를 맡는 연착륙 기간을 거친 뒤, 여 부회장이 자연스럽게 물러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화생명은 이전에도 전임자와 후임자가 일시적으로 함께 대표를 맡는 방식으로 리더십 교체기를 준비해왔다. 여 부회장 역시 2019년 초엔 차남규 전 부회장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았으나 2019년 말부턴 단독대표를 맡고 있다.
여 부회장은 현재 한화그룹에 3명밖에 없는 부회장 가운데 한 명이다. 나머지 2명은 오너일가인 김동관 부회장과 현재 그룹 경영지원실장을 맡고 있는 김창범 부회장이다. 김창범 부회장은 2019년 한화솔루션 대표, 2021년 한화솔루션 이사회 의장에서 내려오며 경영일선에선 한발 물러났다. 현재는 그룹 경영지원실장을 맡아 김승연 회장을 보좌하고 있다. 여 부회장이 유일하게 현직 계열사 대표인 부회장인 셈이다.
그는 가장 최근 부회장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여 부회장보다 넉달가량 먼저 부회장에 오른 권혁웅 전 한화오션 대표이사 부회장은 최근 대표에서 내려오면서 고문으로 위촉됐다.
그룹 내 사례를 보면 부회장에 오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사례를 볼 수 있지만 부회장에 오른 뒤에도 상당한 기간 현직에 머문 사례 역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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