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신세계그룹은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를 거느린 범삼성가 계열 기업집단으로 2023년 자산 기준으로 재계 서열 11위다. 순수 유통그룹으로는 유일한 10위권 재벌그룹이다.
신세계그룹의 모태는 1930년 미쓰코시(三越) 백화점 경성점을 모태로 한다. 광복 후 1945년 12월 정부관리 기업체인 '동화백화점'으로 상호를 변경했으나 1950년 6.25 전쟁 이후 1955년에 동화백화점으로 세워졌다. 1962년 9월부터 동방생명을 거쳐 1963년 7월 동방생명이 삼성그룹에 인수될 때 같이 인수됨에 따라 신세계백화점이란 현재 상호를 갖게 됐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막내(다섯째)딸로 남편은 군사정권 당시 관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상희 삼호방직 회장의 차남인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이다. 슬하에 아들 정용진과 정유경을 두고 있다.
1961년 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생활미술학을 전공했다. 25세 결혼해 12년간 전업주부로 살았던 그가 경영인으로 나선 것은 아버지 이병철 창업주의 "백화점 사업부를 맡아보라"고 권고 때문이었다. 1979년 영업담당 이사로 신세계에 입사한 그는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더불어 현재 이부진, 이서현 등으로 이어지는 삼성가(家) 여성 경영인의 시초다.
1997년 신세계그룹이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1998년부터 남편 정재은 명예회장으로부터 신세계 회장직을 넘겨받아 현재까지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전형적인 은둔형 경영자 스타일로 회사 운영도 본인이 직접적으로 챙기기보다는 전문경영인이 주로 회사를 챙기고 본인은 큰 흐름만 제시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점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과도 비슷하다.
여성 경영인으로 나서 신세계를 대한민국 굴지의 유통기업으로 성장시키게 된다. 2003년부터 2014년까지 대한민국 여성 부호 1위 자리를 지켰다.
신세계그룹이 삼성으로부터 독립경영 기류를 보인 것은 1989년 삼성그룹 공통 로고를 버리고 자신만의 로고로 바꿀 때부터였다. 1991년에 공정거래법상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1994년에는 한일그룹으로부터 신라상호신용금고와 한일투자금융을 인수했다. 1995년에는 신세계푸드, 1996년에는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자회사들을 설립했다.
1997년 완전한 계열분리가 이뤄졌으며 이후 스타벅스코리아, 신세계I&C 등 계열사를 연이어 설립했다. 2002년 그린시티, 훼미리푸드, 신세계의정부역사, 2005년 신세계첼시와 신세계SVN을 세웠다.
2000년대에 들어선 센트럴시티의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개점을 필두로 경기, 천안, 부산, 마산 등에 지점을 냈다. 자회사인 신세계사이먼을 동원해 여주, 파주, 부산 기장군, 시흥에 프리미엄 아울렛까지 지었다. 게다가 또 다른 자회사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통해 해외 의류 브랜드를 직접 수입해서 백화점에 공급하고 있다.
2021년 1월 KBO 리그 구단인 SK와이번스 인수를 선언하며 프로야구에 뛰어들었다. 야구 매니아인 정용진 회장의 의중이 있었다고 한다. 여러 팀을 물색하던 중 야구단을 내놓은 SK와 조건이 맞았다. 새 팀명은 SSG 랜더스다.
2023년 들어 신세계그룹은 재무상태 불안을 겪는다. G마켓과 옥션 인수, 스타벅스의 매출 악화, 오너 리스크로 인한 여러 차례의 불매운동, 신세계건설을 향한 거액 투자, 신세계백화점의 실적 악화 등이 겹친 원인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산업이 급상승하면서 이커머스 시장이 대폭 확장됐다. 대표적인 수혜자는 쿠팡이었다. 기존 유통 강자들도 이에 대항해 비대면 라인을 키우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마트의 경우 인터넷 거래를 늘리겠다는 목표로 G마켓과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를 3조4300억원에 인수했다.
다만 인수 후 거래량은 획기적으로 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쿠팡에 밀리고 2024년에는 알리와 테무 등 중국계 이커머스의 한국시장 진출로 시장 지위가 더 약화됐다. 이런 가운데 신세계건설은 기존 이마트 매점공사 등에서 벗어나 아파트 브랜드 '빌리브(Villiv)'를 내세워 주택사업을 확장했다가 2022년 레고랜드 사태로 미분양 리스크에 직면했다. 적자율이 951%를 찍으면서 사장이 교체가 됐다.
스타벅스는 이마트가 지분 50%를 보유하다가 2021년 9월 17.5%를 4859억원에 추가 매입했다. 이후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마트 색채가 짙어졌는데 종이빨대에 대한 불평과 커피값 인사 등으로 조금씩 매출이 떨어지는 상황이 됐다.
설상가상 2022~2023년 이마트마저 매출이 저하된 데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백화점 매출이 감소세를 보였다. 전국 매출 1위인 신세계 강남점도 매출이 꺾였으며 여기에 2위인 롯데백화점이 맹추격, 현대백화점은 '더현대'를 앞세워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신세계백화점 위상이 하락했다.
그간 자녀들에게 경영을 맡기고 후선에 있던 이명희 회장이 다시 나섰다. 2023년 9월 단행된 정기인사에서 정용진 이마트 부회장의 측근인 강희석 이마트 대표이사와 정유경 부회장의 뒤를 받쳐주던 손영식 신세계 대표를 동시 경질했다. 한채양 이마트 대표가 경영 고삐를 쥐고 일부 점포 폐점 등 구조조정을 하며 이마트 매출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다만 이명희 회장의 심폐소생만으로는 위기를 완전히 타개하기 어려웠던 터라 SSG닷컴, 이마트, G마켓 등 몇몇 그룹 계열사들이 희망퇴직을 받았다. 신세계건설은 구조조정을 위해 2024년 9월 30일 자진 상장폐지가 결정됐다.
이 일을 계기로 시장 일각에서는 이명희 회장이 정용진, 정유경 남매의 경영 능력을 신뢰하지 못해서 다시 경영에 복귀했다는 시각이 나왔다.
2016년 남매의 지분 맞교환을 거치며 지배구도가 명확해졌다. 당시 정용진 회장은 신세계 주식 72만203주를 정유경 회장에게, 정유경 회장은 이마트 주식 70만1203주를 정용진 회장에게 넘겼다. 지분 교환으로 정용진 회장의 신세계 지분율은 0%, 정유경 회장의 이마트 지분율도 제로가 됐다. 이후 두 남매는 각각 ㈜이마트와 ㈜신세계 주식 장내매수를 통해 각자 지배력을 강화했다.
2019년 백화점부문과 이마트부문을 신설해 확실한 분리경영이 이뤄졌다. 2020년 9월 또 한 번 전환점을 맞았는데 이명희 총괄회장이 이마트 지분 8.22%를 정용진 회장에게, 신세계 지분 8.22%를 정유경 회장에게 각각 증여했다. 증여공시가 이뤄진 날 종가기준으로 보면 이마트(14만1500원) 3240억원, ㈜신세계(20만8500원) 1680억원 상당이다. 동시에 정용진 회장의 이마트 지분율은 10.33%에서 18.55%로, 정유경 회장의 신세계 지분은 10.34%에서 18.56%로 올라갔다. 이마트와 신세계의 최대주주가 바뀌었다.
각자경영에도 이마트와 신세계 간 고리가 완전히 끊어지진 않았다. 이마트를 필두로 스타필드, 호텔, 푸드 등은 이마트부문이 백화점과 면세점, 패션·뷰티 등은 백화점부문으로 철저하게 구분됐지만 중간에 엉켜있는 게 '온라인' 비즈니스다. 대표적으로 'SSG닷컴(쓱닷컴)'이 있다. 신세계그룹은 2019년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의 온라인 사업을 각각 떼어 내 온라인 신설법인 SSG닷컴을 공식 출범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1997년 일찌감치 백화점 온라인몰 '신세계몰', 2000년에는 대형마트 온라인몰인 '이마트몰'을 각각 설립했다. 이후 온라인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자 2014년 두 사이트를 묶어 운영했지만 법인은 통합 없이 운영해 왔다. 그러나 사업 주체가 달라 결합 시너지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한계에 마주쳐 2019년 통합법인을 출범한 것이다.
이마트와 신세계가 SSG닷컴 지분을 나눠서 보유하고 있는 게 핵심이다. 2023년 말 기준 SSG닷컴 주주구성을 보면 이마트와 ㈜신세계가 각각 지분을 45.58%, 24.42%씩 보유하고 있다. 향후 신세계가 이마트에 SSG닷컴 지분을 완전히 넘거나 SSG닷컴을 다시 인적분할로 쪼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추후 양사가 지분 스왑 등을 통해 자체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는 개념이다.
브랜드 로열티 정리도 관심선상에 올랐다. 이마트와 신세계가 계열을 분리한 뒤에도 상표권 사용료를 무상 제공할 경우 총수일가 간 부당지원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 신세계그룹은 백화점, 이마트, 기업형 슈퍼마켓(SSM), 창고형 할인점 등 유통사업에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조선호텔, 신세계건설 등 53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이마트 계열에서 '신세계' 브랜드를 사명으로 사용하는 법인이 많다. 신세계 브랜드 상표권 권리는 정유경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신세계가 갖고 있다. 지분 정리가 이뤄진 후 이마트와 신세계 브랜드를 사용하려면 로열티 계약을 별도로 체결해야 한다. 이마트가 신세계에 상당한 금액의 로열티를 지급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세계그룹이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계열 분리 계획을 공식화했지만 실질적인 분리는 시간이 걸린다. 공정거래법상 친족독립경영 요건 충족을 위해서는 이명희 총괄회장의 이마트·신세계 보유지분을 10%에서 3% 미만으로 낮춰야하기 때문이다. 지분 정리와 증여세 등 문제가 얽혀 있다.
실제로 정용진 회장은 2024년 3월 그룹 회장으로 승진했지만 두 달 뒤 공정위는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하며 이명희 총괄회장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했다. 실질적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은 이 총괄회장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이 회장이 이마트와 신세계 양쪽 지분을 가지고 있고 의사결정에도 관여하기 때문에 그 권한이 다 이양됐다고 볼 수 없었다.
계열분리 이후 정용진 회장과 정유경 회장 이후 4세 경영에도 눈길이 쏠린다. 신세계그룹의 계열분리는 단순히 백화점부문과 이마트부문의 각자경영을 넘어 후대로의 경영승계도 완전히 분리되어 이뤄진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스레 정용진 회장과 정유경 회장의 자녀들에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정용진 회장 슬하에는 2남 2녀가 있다. 전처인 배우 고현정과의 사이에서 1남 1녀, 2011년 플루티스트 한지희 씨와 결혼해 이란성 쌍둥이(1남 1녀)를 낳았다. 이 가운데 경영참여 가능성이 높은 건 장남 정해찬 씨다. 이미 그룹에서 근무경력과 국내외 굴지 기업을 경험하며 부친의 행보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1998년생인 해찬 씨는 고(故) 이병철→이명희→정용진→정해찬으로 이어지는 오너 4세다.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2018년 신세계그룹 계열인 웨스틴 조선 서울에서 인턴으로 활동해 큰 관심을 받았다. 2021년 대한민국 육군 현역으로 입대한 후 2023년 제대했다. 군 생활 종료와 함께 삼정KPMG에서 인턴십을 수행하기도 했다.
2024년 초부터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스포츠·피트니스 산업 관련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해 6월에는 미국 굴지의 금융회사에서 인턴활동을 하는 등 활발하게 움직였다.
정용진 회장은 일찌감치 이명희 총괄회장의 뒤를 잇는 총수로 두각을 나타내 왔다. 20대중반 삼성물산 경영지원실에서 근무한 후 1995년 신세계그룹 전략실로 입사하며 1990년대부터 이미 차기 총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1997년에는 20대 후반 나이로 상무로 승진했다. 이듬해인 1998년에는 이 총괄회장이 보유하던 ㈜신세계 지분 중 50만주를 받는 등 지배력을 차근차근 키워왔다. 정용진 회장 선례에 비춰보면 해찬 씨의 경영참여가 머지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유경 회장도 경영참여가 이른 축에 속한다. 1996년 20대 중반에 조선호텔 상무로 신세계그룹에 발을 들였다. 이후 2009년 부사장, 2015년 사장, 올해 정기인사를 기점으로 부회장을 뛰어넘고 회장으로 직행했다.
다만 이마트부문과는 다르게 백화점부문은 정유경 회장 이후 오너4세 체제에 대해 아직 불명확한 면이 있다. 정유경 회장의 장녀는 2002년생 문서윤 씨, 차녀는 2004년생 문서진 씨다. 문서윤 씨의 경우 회사 경영에는 큰 뜻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NS 10만 팔로워를 거느린 그는 '테디 걸그룹'으로 알려진 더블랙레이블에서 데뷔하는 새 걸그룹 멤버로 거론되기도 했다. 신세계에 입사하기보다 인플루언서로서 화장품을 론칭하거나 패션브랜드를 운영하는 등 독자 길을 걸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차녀인 서진 씨는 미국 대학교 재학 중이라는 사실 외에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언니인 서윤 씨와 비슷하게 SNS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외향적인 성격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백화점부문의 경우 4세 경영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입할 가능성을 있다는 시각이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지분 이양이다. 물론 정용진 회장과 정유경 회장이 아직 건재하고 자녀들도 20대로 어리지만 지분 이양은 세금 이슈로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만큼 마냥 먼 나라 얘기는 아니다.
2024년 반기 말 기준 정용진 회장의 이마트 지분율은 18.55%, 정유경 회의 ㈜신세계 지분은 18.56%다. 핵심 키는 이명희 총괄회장이 보유한 잔여 지분이다. 이명희 총괄회장은 이마트 10%, 신세계 10%을 보유한다. 이 총괄회장이 80대 고령에 접어든 만큼 주식을 자녀(정용진·정유경) 및 손자·손녀에게 일부 증여(상속)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해찬 씨는 아직 이마트 지분율이 제로다. 서윤·서진 씨도 ㈜신세계 지분이 없다.
[1] 재계 서열 10위 안에 있는 포스코와 농협의 경우 규모는 크지만 소유분산기업 또는 조합 형태이므로 재벌에 통념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10대 재벌 안에 들어간다
[2] 경쟁사 롯데는 재계 5위권 내 들지만 유통보다 식품 사업으로 출발한 기업이고 현재는 롯데케미칼이 그룹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다. 유통업이 확실한 그룹의 기둥 업종인 신세계와는 이 점이 다르다.
[3] 아들 정용진, 딸 정유경에게 지분을 증여하며 줄었으며 이건희 삼성 회장 타계 후 조카들(이부진,이서현)이 삼성전자의 주식을 상속받으며 순위도 내려갔다.
[4] 서울 연고인 두산 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 측에 인수를 타진했으나 불발됐다. 두산은 그룹 오너 일가에서 야구단 매각을 결사 반대했고 키움은 구단 지분 분쟁 건이 있어서 인수가 쉽지 않았다.
[5] 롯데는 자체 온라인 몰 '롯데온'에 적극 투자했다. 다만 현대백화점그룹은 오히려 '더현대'를 내세운 프리미엄 전략으로 나갔다.
[6] 당시 채권시장에 큰 파장이 일면서 건설사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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