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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로 환위험 관리하기

원충희 THE CFO부 차장  2024-06-17 07:54:49
LG전자 한국본사는 미국법인(LG Electronics USA) 등에서 4000억원의 외화자금을 빌려 쓰고 있다. 장부에서 쉽게 찾기 어려운 내용이다. 모자회사 간 거래라 별도재무제표에만 보이기 때문이다. 목적은 환위험 관리라고 했다. 그러자 이와 다르지만 비슷한 자금흐름이 떠올랐다.

현대자동차의 단기차입금 항목에는 뱅커스 유산스(Banker's Usance)라는 게 1분기 말 기준 3400억원 정도 있다. 유전스라 읽는 게 맞지만 업계 사람들에겐 유산스란 일본식 발음이 더 자연스럽다.

국제무역거래 결제방식 중 하나로 수입업자가 해외로부터 물품을 수입할 때 수출업자가 은행의 보장을 받아 대금결제를 일정기간 유예해주는 제도다. 약정기간은 30일, 60일, 90일, 120일 단위인데 그동안 은행의 신용공여를 받기 때문에 외화대출이나 다름 없다. 기아의 경우 유전스 외에 738억원의 무역금융도 쓰고 있다.

연결기준 현금성자산이 100조원에 육박하는 삼성전자도 대출을 쓴다. 1분기 말 연결기준 단기차입금 항목에서 9조3230억원의 매출채권담보대출(매담대)이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인 8조5553억원은 국내 본사에서 쓴다.

이처럼 삼성, 현대차, LG 등 국내 대표회사들이 쓰는 대출은 유형이 조금씩 다르지만 목적은 거의 비슷하다. 단기유동성 확보와 더불어 핵심은 환 헷지(Hedge)다. 외화매출채권 등을 팔거나 담보로 삼아 적용되는 환율을 고정, 외환가치 변동으로 생기는 환차손 위험을 방지하는 수단이다.

이들은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한국 굴지의 수출대기업이다. 환리스크 노출은 필연적이다. 환헷지는 주로 네 가지 방식을 쓴다. 외화자금 유입과 유출의 규모 및 만기를 일치시킴으로써 환노출 규모를 최소화하는 게 첫 번째다.

주요 영업활동으로 발생하는 매출채권 및 지급채무는 네고(NEGO) 등의 무역금융 상품을 활용, 환노출 기간을 축소하고 있다. LG전자가 미국법인 등에 외화차입을 한 것, 현대차와 기아가 외화대출이나 다름 없는 뱅커스 유전스를 쓰는 것, 삼성전자가 매담대를 쓰는 것 모두 이런 활동의 일환이다.

최대 12개월 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현금흐름에 대해선 선물환(통화선도)과 통화옵션 등의 파생상품을 활용한다. 12개월을 초과하는 외화차입금의 경우 통화스왑 등의 파생상품을 구매해 만기일까지 보유한다.

환리스크 관리는 수출입 업체들의 경영 안정성을 좌우하는 일이다. 이들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중심으로 수시적인 시장동향 파악과 함께 전사 차원의 대응전략 수립을 세우며 움직인다. 앞서 얘기한 네 가지 환위험 관리법은 무역협회 등에서도 가르치는 정석이라고 한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숫자 하나하나에 위험관리를 위한 정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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