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사태를 계기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스(PF) 부실우려가 커지면서 여타 건설사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공사비 급등이 맞물려 건설사들의 유동성 확보가 중요해진 가운데 일부 업체는 조달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사별로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이 중요해진 만큼 이들 앞에 놓인 당면과제를 살펴봤다.
DL이앤씨가 현금창출력이 떨어지면서 단기채무 상환능력이 약화했다. 다만 재무안정성에는 큰 이상이 없다.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 모두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 차입금을 모두 상환해도 5000억원 가량의 현금이 남는다. 다음 달 발표 예정인 주주환원 정책에 대해 시장이 기대하는 배경이다.
DL그룹에서 토목과 주택, 플랜트 사업을 책임지는 DL이앤씨는 지난해 3분기 누계(별도기준) 영업활동현금흐름으로 마이너스(-)868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 같은 기간에 현금 3201억원이 유입(+)된 것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영업활동에서 대규모 현금을 유출시킨 원인으로는 계약자산 증가가 꼽힌다. 계약자산은 일종의 미청구미수다. 공사를 진행했음에도 시행사에 지급을 요청하지 못한 공사대금을 가리킨다. DL이앤씨는 지난해 3분기까지 계약자산 증가로 1744억원의 현금이 유출됐다. 회사는 일단 그만큼을 보유 현금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DL이앤씨 사업장 가운데 계약자산 규모가 가장 큰 곳(지난해 3분기 말 기준)은 'e편한세상 거제유로스카이'다. 공사가 85.8% 진행했음에도 926억원의 공사대금을 아직 청구하지 못했다. 그 다음으로 큰 곳은 'GTX-A6공구'다. 공사 진행률은 66.33%이지만 448억원의 공사대금을 청구하지 못한 상태다.
DL이앤씨 입장에서 다행인 점은 두 사업장을 포함해 전체 사업장의 질이 우수하다는 점이다. 일례로 'e편한세상 거제유로스카이'는 일찌감치 상가 분양도 완료되는 등 공사대금 회수에 어려움이 크지 않을 것으로 알려진다. 전체 계약자산(미청구미수)의 손실충당금 설정률은 0.2%로 낮다.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공사대금이 0.2%에 불과하다.
공사대금 회수가 안정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DL이앤씨는 부족한 운영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하기보다는 내부에서 충당했다. 굳이 채무를 늘리면서 재무안정성을 헤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현금 유출 대비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현금이 많다는 판단이기도 했다.
보유 현금을 사용하면서 DL이앤씨 현금및현금성자산은 지난해 3분기 말 8161억원으로 연초 대비 17%(1635억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유동비율도 146%에서 131%로 떨어졌다. 1년 내 상환해야 할 부채보다 1년 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이 1.46배에서 1.31배로 감소했다. 단기채무 상환능력은 다소 약화했다.
하지만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않은 덕분에 재무안정성은 높은 수준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난해 3분기 말 부채비율은 75%로 연초 대비 3%포인트(p) 하락했고, 차입금의존도는 10%대를 유지했다. 현재 워크아웃을 밟는 태영건설의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가 각각 400%와 30%를 상회한 점을 고려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건실한 재무구조는 향후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올 필요성이 클 때 조달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준다. 민간 주택사업을 주로 하는 DL건설과 해외 플랜트 사업체를 자회사로 둔 DL이앤씨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현금을 저렴하게 조달할 수 있는 재무구조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민간 주택사업과 해외 플랜트사업은 우발채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DL이앤씨의 높은 재무안정성에 주목하며 내달 발표 예정인 주주환원 정책에 기대감을 갖는 분위기다. 회사는 2021년에 2023년까지 연간 지배주주 순익의 15%를 현금배당(10%)과 자기주식 취득(5%)으로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이 올해 마무리되는 만큼 새로운 주주환원 정책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시장 관계자는 "DL이앤씨는 부동산PF 우려에도 보수적인 리스크 관리와 안정성이 돋보인다"며 "(높은) 재무안정성을 바탕으로 2월 발표 예정인 주주환원 정책은 현 수준 대비 강화될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3분기 말 DL이앤씨의 순현금은 5304억원이다. 단기금융상품을 합한 보유 현금으로 모든 채무를 갚아도 5000억원 넘는 현금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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